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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의 갓모닝] 470. 하나 된 마음
올해도 설을 맞아 고향으로 향하는 고속도로는 붐볐다. 장시간 운전하지만 고향이 가까워지면서 사람들의 얼굴은 마냥 즐겁기만 한 것 같다. 1958년 설날 어느 신문에 ‘이중과세를 하지 말라’는 내용의 칼럼이 있었다. 정부는 양력설을 권장했지만 국민들은 음력설을 더 선호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양력으로 설을 쇠도록 정했는데도 음력설에 재래시장은 물론이고 대형백화점 등도 일제히 문을 닫았다.
게다가 크리스마스, 양력설, 음력설을 모두 합쳐 삼중과세를 한다면서 어려운 나라살림에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냐며 강변했다. 1950년대 가난한 시기에도 왜 이중과세를 하게 된 것일까.
그 시작은 1895년 을미개혁으로 태양력을 받아들이면서부터이다. 친일내각은 일본의 설날인 양력 설날만을 정초로 인정했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은 1월 1일은 ‘일본명절’ ‘서양설’이라면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우리에게 설은 오직 음력설뿐이었다. 1985년 음력설을 ‘민속의 날’로, 1989년에는 ‘설날’이라는 정식명칭으로 공휴일이 되기까지 무려 90여년 가까이 음력설은 정부에게 홀대받았다.
게다가 일본은 자신들이 쇠는 양력설을 새해 시작이라 하여 ‘신정’이라 했고, 음력설은 일제강점기부터 ‘구정’이라고 깎아내렸다.
해방 후에도 ‘구정’이라는 명칭은 고쳐지지 않았다. 오히려 정부는 음력설을 폐지하고자 했다. 그러나 국민들의 음력설 사랑은 대단했다. 관공서 및 학교에서 ‘이중과세 철폐’라는 표어가 붙었지만 음력설에만 차례를 지내고 다 같이 윷놀이를 했던 것이다.
일부 공무원들은 국가 지침을 무시하고 몰래 휴가를 내고 차례를 지내다 시말서를 썼고 심지어 사표까지 쓰는 바람에 탄원서가 접수되기도 했다. 음력설을 쇠면 마치 죄지은 사람처럼 고향 갔다 왔다는 말도 제대로 꺼내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해프닝이 아닐 수 없다. 결국 국민들의 정서를 무시할 수 없고 우리 것을 찾으려는 하나 된 마음이 모여 음력설을 국가공휴일로 지정하기에 이르렀다. 1월 1일이 새해라지만 우리 국민들 마음 속의 새해는 음력 정월 초하루인 것이다.
설이 명절인 것은 떠나있던 가족이 모이기 때문일 것이다. 부모님을 뵙고 서로 한해 건강을 빌며 세배를 하고 덕담도 하고, 아이들은 세뱃돈도 두둑하니 받게 된다. 또 오고가는 덕담 속에 말로 짓는 복도 쌓게 되니 설날이야말로 추석과 함께 민족 최대의 명절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 민족이 꿋꿋하게 지켜온 명절. 병신년 한해는 어떤 해가 될 것인가, 어떤 해가 되어야 할까. 우리 전래의 가치관을 되찾고 도덕심을 되찾는, 마음이 하나 되는 그런 한해가 되었으면 한다. 또 비록 남과 북이 땅은 분단되어 있지만 하나 된 민족임을 알 수 있었으면 한다.
지금 남과 북은 또다시 두 마음이 되었다. 설 명절이 지나자마자 개성공단은 폐쇄되고 대화의 통로는 차단되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도 우리 설을 고수해왔듯이 한민족의 마음이 하나 되는 날이 그리 멀지 않으리라 믿는다.
(hooam.com/ 인터넷신문 whoi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