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의 장수 예능프로그램 해피투게더가 중대 기로에 서 있다. 김풍의 하차와 함께 인턴MC라고는 하지만 배우 엄현경의 투입으로 사실상 승부수를 던졌다고 볼 수 있다. 과연 이 승부수가 시청자들에게 통할 수 있을까.
2001년 신동엽과 이효리 MC체제로 첫 방송 이래 해피투게더의 코드는 ‘신선함’이었다. 1기의 주를 이뤘던 코너 ‘쟁반노래방’은 좁디좁은 초미니 세트에서 스타들이 한 소절씩 돌아가며 동요를 부르고 틀리면 쟁반을 맞아가며 결국 동요를 완성한다. 신동엽식의 깔끔한 진행과 게스트들을 하나로 묶는 이효리의 카리스마가 일품의 조화를 이뤄 다시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은 완벽한 코너였다.
2부는 조금 중구난방이었다. 가수 리치와 아유미의 퀴즈대결이 고정 포맷으로 굳어졌으며 이 코너에서 보여준 활약으로 이들은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이후 개편에서 드라마나 영화 속 장면을 완성해야 하는 ‘쟁반극장’은 특집 파일럿으로 기획되었으나 좋은 반응을 얻어 정규 코너로 채택됐다. 이후 개편으로 유재석과 김제동이 ‘해피투게더’ MC를 이어받았고 유재석은 시청자들의 좋은 호응 속에 지금까지도 해피투게더의 메인MC로 자리매김해 오고 있다.
사진 방송캡처
해피투게더 2기는 ‘해피투게더-프렌즈’라는 부제가 따라붙는다. 유재석-김아중-탁재훈 3인 MC체제로 변모하면서 스타들의 어린 시절 친구를 찾아내는 스튜디오 토크쇼로 바뀌었다. 스타들의 추억을 되새겨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어내겠다는 취지로 진행된 2기는 밝고 화사하면서도 시원시원한 느낌의 스튜디오와 아기자기한 무대 구성 등 시청자들에게 편안한 웃음을 선사했다. 어떻게 보면 자사 인기 프로그램이었던 ‘TV는 사랑을 싣고’에 예능적인 요소를 가미한 구성으로 큰 히트를 친 레전드편이 나오지는 않았어도 시청자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는 점에서는 성공한 포맷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런데 2기 때의 감동이 지나칠 정도로 컸던 것일까? 2007년 중반 3기 접어들면서 해피투게더는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일일이 언급하기도 힙든 코너들이 무수히 떴다가 사라졌고, 비로소 사우나에 자리를 잡게 된 이후에도 다양한 실험적 코너들이 등장했다가 사라지곤 했다. 한참이 지난 이후에야 시청자들의 기억 속에 남는 ‘사우나 토크’와 ‘야간매점’이 지금의 3기를 아우르는 가장 대표적인 코너로 머릿속에 남아있다.
사진 KBS 1기의 해피투게더는 ‘토크’보다는 ‘게임’에 더 치중해 있는 경향을 볼 수 있다. 이는 해피투게더뿐 아니라 2000년대 초반 당시 전체적인 예능의 흐름이 그러했다. 누가 나오느냐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방송국마다 어떤 신선한 게임을 만들어낼까 고민하던 시기였다. ‘천생연분’이나 ‘연애편지’, ‘동거동락’ 등은 이러한 방송 사조에 편승한 대표적인 게임 버라이어티의 좋은 예였다.
그런데 2기 ‘프렌즈’를 거쳐 3기로 접어들면서 해피투게더는 ‘게임’보다는 스타들의 입담이 주를 이루는 ‘토크’에 무게를 두기 시작했다. 이 역시 방송 흐름에 따른 변화에 해피투게더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야심만만’이나 ‘황금어장’으로 대표되는 이 시기 예능프로그램의 흐름은 누가 봐도 ‘토크쇼’였다. KBS는 여기서 토크쇼 프로그램을 신설하는 대신 주간예능의 장수 브랜드였던 ‘해피투게더’의 포맷을 대대적으로 손보는 선택을 하게 된다.
사진 KBS 이 선택이 옳았는지 틀렸는지를 논하는 것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1기와 2기 극심한 포맷 변경을 거치면서도 ‘신선함’을 주 무기로 삼아왔던 해피투게더가 이제는 그저 그런 ‘식상한’ 토크쇼 프로그램으로 전락해버린 지금의 현실에 있다.
물론 지금의 해피투게더 또한 신선함을 되찾기 위해 MC와 포맷에 대대적인 수선을 가했다. 신봉선, 박미선, 김신영이 하차하고 조세호, 김풍, 전현무가 영입됐다. 얘깃거리가 떨어진 스타들은 한 번도 방송에서 공개되지 않은 에피소드를 끌어내기 위해 집안살림까지 스튜디오로 끌고 나오는 수고를 해야 했다. 그마저도 반응이 좋지 않자 이제는 원탁을 차려놓고 MC들과 게스트를 앉혀놓은 집단 토크쇼의 포맷을 꾀했다. 새로운 느낌을 주기 위해 자막과 CG, 효과음 등 부가적인 효과까지 대폭 변경했다. 엄밀히 말해 해피투게더는 차별성 없는 4기를 맞은 것이다.
사진 KBS 이처럼 출연진과 포맷의 변화가 두드러지는데도 ‘해피투게더3’로 프로그램명을 유지하고 있는 까닭은 큰 틀, 그러니까 해피투게더가 골자로 하고 있는 ‘토크쇼’의 본질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방송가에서 토크쇼는 슬슬 종말을 맞고 있는 중이다. ‘힐링캠프’는 폐지의 수순을 밟았고 ‘라디오스타’는 게스트에 따라 시청률이 널뛰기를 하고 있다. ‘라디오스타’와 비슷한 포맷을 답습한 ‘해피투게더’ 역시 시청률 상승의 효과가 나타났지만 이는 순전히 그날 출연하는 게스트에 따른 시청자들의 기대 심리가 작용한 것일 뿐 별다른 특이점을 분석할 수는 없었다.
예수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는 명언을 남겼지만 결과적으로 새 부대도 아니었고, 새 술도 아니었다. 늘 보고 늘 듣던 ‘식상함’만이 시청자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됐다. 엄현경의 투입은 분명 예능에서 처음 맞는 캐릭터의 ‘신선함’이지만 이 신선도가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지는 걱정스럽다. 진정한 의미의 ‘신선한 해피투게더4’ 개편은 언제쯤 이뤄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