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이 '4세 경영시대'를 맞이한다.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61)이 큰 조카 박정원 두산 회장(54)에게 그룹 경영권을 넘긴다. 박정원 회장은 고 박두병 회장의 장남인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국내 주요 그룹에서 4세 경영시대를 연 것은 두산그룹이 처음이다.
박용만, 큰 조카에 그룹 경영권 넘겨
두산은 2일 이사회를 열고 두산건설 회장을 겸하고 있는 박정원 회장이 두산 이사회 의장을 맡는 안건을 오는 25일 주총 결의 안건으로 확정했다고 밝혔다.
두산에서는 그동안 지주사인 두산의 이사회 의장이 그룹회장직을 수행해왔다. 이에 따라 박정원 회장은 오는 25일 두산 정기주총에 이은 이사회에서 의장 선임절차를 거친 뒤 그룹회장에 정식 취임할 예정이다. 박정원 회장이 이사회 의장과 그룹 회장을 맡으면 두산그룹은 4세 경영 시대을 맞게 된다.
박용만 회장은 이날 이사회에서 "그룹회장직을 승계할 때가 됐다"며 차기 이사회 의장으로 박정원 두산 지주부문 회장을 천거했다.
박 회장은 "오래 전부터 그룹회장직 승계를 생각해 왔는데 이사 임기가 끝나는 올해가 적절하다고 판단했다"며 "이런 생각으로 지난 몇년 간 업무를 차근차근 이양해 왔다"고 말했다.
이로써 형제의 난까지 겪었던 두산그룹의 3세 경영은 막을 내리게 됐다. 형제의 난은 2005년 장남인 박용곤 명예회장이 차남인 박용오 회장에게 그룹 회장 자리를 삼남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에게 넘길 것을 요구하자 박용오 회장이 그룹의 편법 경영에 대한 진정서를 검찰에 제출하면서 시작됐다. 이 일로 박용오 회장은 4년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공동경영 원칙이 부활하면서 형제들이 돌아가며 경영을 했다.
박용만 회장은 박용현 두산연강재단 이사장의 뒤를 이어 2012년 4월부터 그룹 총수 자리에 올랐다. 단 박용만 회장의 동생 박용욱씨는 두산그룹과 별도로 이생그룹을 이끌고 있어 두산그룹 경영권 승계 과정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현 두산그룹 회장 박용만 회장
박용만 회장은 향후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으로서 두산인프라코어 턴어라운드에 힘을 보태고, 두산 인재양성 강화 등을 위해 설립된 DLI(두산 리더십 인스티튜트)의 회장으로 취임할 예정이다. 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으로서 소임을 다하는 데도 주력할 방침이다.
박정원 회장은 '승부사'
그룹 경영권을 이어받으며 두산그룹 4세 경영 신호탄을 쏜 박정원 회장은 30년 동안 두산에서 근무하며 그룹의 변화와 성장에 기여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 후 미국 보스턴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85년 두산산업(현 두산 글로넷BU)에 사원으로 입사해 뉴욕·도쿄지사를 거쳐 OB맥주의 전신이었던 동양맥주에서 이사로 승진했다. 이후 두산 관리본부에서 상무와 전무를 거친 뒤 두산건설 부회장, 두산모터스 대표이사 등을 역임했다.
박정원 회장은 결정적인 순간 '승부사 기질'을 발휘해 왔다. 특히 2007년 두산 부회장, 2012년 두산 지주부문 회장을 맡으면서 그룹의 주요 인수합병(M&A) 결정에 참여해왔다. 또 1999년 두산 부사장으로 상사BG를 맡은 뒤에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수익 사업 위주로 과감히 정리하기도 했다.
2012년부턴 두산 회장직을 맡으며 2014년 연료전지 사업, 지난해 면세점 사업 진출 등 그룹의 주요 결정 및 사업 추진에 핵심 역할을 했다. 두산 연료전지 사업의 경우 2년 만에 수주 5870여억원을 올리는 등 두산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와 함께 두산건설 회장, 두산베어스 구단주를 겸임하고 있다.
박정원 회장의 인재 중시 철학은 현재 구단주를 맡고 있는 두산베어스의 선수 육성 시스템에서 잘 나타났다. 역량있는 무명 선수를 발굴해 육성시키는, 이른바 화수분 야구로 유명한 두산베어스의 전통에는 인재 발굴과 육성을 중요시하는 박정원 회장의 경영철학이 반영됐다.
재계 관계자는 "현재 두산그룹은 두산인프라코어 재무개선, 밥캣 국내 상장, 두산중공업과 두산건설 등 계열사 재무관리를 비롯,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며 "신임 회장에 취임하는 박정원 회장이 돌파구를 마련할 지 여부가 시장의 관심사로 떠올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