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덧 유아인은 연기를 잘 하는 배우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어리지만 할 말 다하는 촌철살인은 유아인만이 할 수 있다. 대개 드러내지 않는 자신의 정치적 성향도 표현할 정도로 거침없다. 스스로를 '관종(관심 종자라는 뜻의 은어)'이라고 표현한다. "나는 관종으로서 기꺼이 세상의 시선을 받으며 살겠다. 연예계에 쿨한 배우 한 명 있으면 좋지 않겠냐. 쿨한 배우가 되겠다"고 했다.
유아인은 마라톤을 완주했다. 아역 연기를 제외한 SBS 월화극 '육룡이 나르샤' 40회 이상을 소화했다. 사실 이방원은 그동안 많은 사극에서 보여준 캐릭터. '용의 눈물' 속 유동근·'대왕세종' 김영철·'뿌리깊은 나무' 백윤식까지. 한 인물을 연기하지만 써내려가는 대본과 풀어내는 연출력에 따라 느낌은 다르다. 그래서 유아인만의 이방원도 탄생했다.
그는 "이방원 캐릭터는 그동안 많이 나왔다. '용의 눈물' 이방원을 연기한 유동근 선배가 가장 강렬하다. 어쩌면 선입견이 있는 캐릭터다. 철혈 군주·세종의 아버지 등 이미지가 있는데 그래서 이 캐릭터가 더 흥미로웠다"고 했다. 유아인은 결국 대중이 인식하고 있는 이방원이라는 이미지, 정치인으로서 이방원의 내면을 이끌어냈다.
인터뷰 자리에 앉은 유아인은 들뜬 모습이었다. 90분간 이어진 인터뷰가 지치지도 않는지 입을 쉬지 않았다. '육룡이 나르샤'를 끝낸 기분이 '시원함 98% 섭섭함 2%'라고 했지만 군입대로 그를 놓아 보내야하는 우리의 마음은 '섭섭함 98% 미안함 2%'다.-50부작이 끝났다. 기분이 남다를텐데. "종영 당일은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하루 지나니 이상하게 어딘가 뻥뚫린 기분이 든다. 직장생활을 하다가 그만두면 이런 기분일까 싶다. 직장생활하는 분들과 비교할 건 아니만 어쨌든 긴 호흡을 갖고 참여한 작품이라 허전함이 들더라."
-기존의 이방원과 달랐다. "이방원의 내면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내면을 보여준다고 해서 미화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아름답게 비치고 싶다기보다는 '어떤 심경이었을까' '어떤 흐름 속에서 그런 선택을 했을까'를 궁리했다. 그런 추측들을 하면서 인간적인 면모를 조금씩 발견했다. 악인은 아닌 것 같다."
-연기할 때 혼란스러웠다고 하던데. "어느 일터든 불합리함이 있다. 특히 드라마는 그 불합리함이 길어 힘들다. 조금만 나아가면 미화라고 하고 역사왜곡이라고 하더라. 그만큼 역사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 많아서 조심스럽게 다뤄야 했다. 내가 연기한 인물 중에 가장 입체적이었다. 이방원보다 매력적이고 힘이 있는 인물이 있을 수 있지만 다양한 연결고리를 만들어서 입체적인 인물을 표현할 수 있었다."
-'베테랑' '사도' '육룡이 나르샤'까지. 연달아 성공이다. "동시에 많은 작품이 보이게 돼 또 사랑받을 수 있어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좋은 평가를 받아서 기분 좋았다. 큰 성취감을 가질 수 있었다. 배우로서 꿈꿨던 시간이었는데 그만큼 숙제도 생겼다. 세 작품 속 캐릭터가 선이 굵다 보니 센 캐릭터만 좋아하는 것 아니냐고 오해를 하는데 절대 아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밀회' 이선재다."
-그래서 기대치가 높아졌다. 부담감은 없나. "큰 부담은 없다. 배우의 일이라는게 선입견을 만들고 부수는 과정의 반복이다. 선입견이 지속되는 걸 못 견딘다. '성균관스캔들'에서 여성에게 판타지를 주고 '론치 마이 라이프'로 깨지 않았냐. 큰 틀에서 자유롭게 노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특유의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나. "자신감이 없는 편이다. 자신감이 있어서 표현한 것은 아니다. 지금도 계속 떨지 않냐.(웃음) 남들 시선에 따라 행동하게 되는데 나는 별나 보일 수밖에 없다. 내가 하는 일이 멋있는 척 해야 하는 순간도 많지만 어떻게 창조적으로 접근할까 고민한다. 연기와 대중 예술가의 본질이다. 본질에 충실할 뿐이다."
-말 한 마디에 뼈가 있다. 그래서 정치적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정치적 발언을 한 지도 오래됐다.(웃음) 하지만 관심은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지금의 시대정신이다. 점점 사람들이 개인화되고 있지만 그래도 중요한 것은 정치 아닌가.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투표 해야 한다." -동료인 송혜교-송중기 출연의 '태양의 후예' 열풍이다. "얼마 전에 아시안필름어워즈를 다녀왔는데 10개 질문 중 8개가 '태양의 후예" 관련이었다. 질투도 났고 부럽기도 했다. 친한 누나와 형의 일이라 기분이 좋다. 우리는 어렵게 전국시청률 18%까지 찍었는데 '태양의 후예'는 몇 번 하더니 30% 나오더라."
-곧 입대를 앞뒀다. 아쉬운 점이 많을텐데. "화려하지 않고 초라한 시기에 가는 것보단 조금 나은 것 같다. 아직 정확한 시기가 결정된 게 아니라 덤덤하게 가려 기다리고 있다. 서른살 넘어 국방의 의무를 하는 게 부끄럽지만 어린 나이에 일을 시작했고 달려오다보니 군대를 늦게 가게 됐다."
-유아인은 어떤 사람인가. "한 명의 크레이터라고 생각한다. 배우로서 창조하고 작품을 완성하는데 이바지하는 인물이다. 내가 포착한 사람과 세상을 재창조하고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옷이 될 수 있고 그림이 될 수 있고 다양한 과정을 통해서 표현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중에 배우가 하나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