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에이전시 인스포코리아는 지난해 9월 경기 고양시 일산구에서 인천광역시 남동구로 사무실을 이전했다. 고양에서 잘 적응했고 회사도 커나가고 있어 인천으로 이사할 이유가 없었다. 계획에도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입주한 건물 월드타워 '건물주'의 특별한 요청을 뿌리칠 수 없었다.
건물주는 "사무실을 무료로 사용하세요"라고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또 "건물을 설계할 때부터 꼭대기 7층은 당신들을 위한 공간이었습니다"라고 했다. 요즘 같은 팍팍한 세상에서 좀처럼 나올 수 없는 따뜻한 이야기다.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건물주는 조용형(33·스자좡 융창)이다.
그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부동의 주전으로 활약하며 한국의 첫 원정 16강 신화를 쓰는 등 한국 축구 대표 중앙수비수다. 2005년 부천 SK(현 제주 유나이티드)에 프로 데뷔한 뒤 성남 일화(현 성남FC)와 알 라이안(카타르) 등을 거치며 '제2의 홍명보'라 불리기도 했다.
인스포코리아는 조용형의 에이전시다. 2003년 고려대 학생이었을 때 인연을 맺어 13년 동안 함께 했다. 이적과 연봉 협상 등 프로 선수로서 가장 중요한 일들을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 나갔다. '가족'과 다름없는 사이다.
월드타워 7층은 이들이 나눈 '우정의 상징'이다. 프로 선수로서 돈과 명예를 모두 가질 수 있게 옆에서 도와 준 또다른 가족을 위한 선물이었다. 설계 때부터 7층 사무실 계획을 세웠지만 조용형은 회사에 알리지 않았다. 지난해 8월 준공식을 가지면서 깜짝 발표를 했다. 인스포코리아 직원들은 새 사무실과 함께 뜨거운 감동을 선물 받았다.
조용형의 훈훈한 진심을 자세하게 듣고 싶어 5일 스자좡의 오후 훈련을 앞두고 전화 통화를 했다.
"별일도 아닌데 이 일이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아요. 기사로 나가는 것도 부끄럽습니다."
그가 내뱉은 첫 마디였다. 평소 조용하고 나서기 싫어하는 성격이 그대로 묻어 있었다. 멋쩍어 하는 그에게 이렇게 좋은 일은 더 많이 알려야 한다고 설득하자 그때서야 대답을 해줬다.
그는 "대학교 때 만나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다. 요즘 에이전트와 선수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서로 속이는 일이 많다. 하지만 나는 신뢰가 컸다. 정직함을 느꼈다"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덕분에 축구 선수로서 좋은 생활을 할 수 있었고 돈도 벌 수 있었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이어 "지금 이 자리에 올 수 있게 도와 준 이들에게 언젠가는 보답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받은 것을 어떻게 돌려줄까 고민하다 감사한 마음으로 내 건물의 한 층을 내어주게 됐다"며 진심을 드러냈다.
윤기영(48) 인스포코리아 대표는 "(조)용형이 같은 선수들이 많아져야 세상이 따뜻하고 아름다워질 수 있다. 요즘 이런 선수 찾기 힘들다. 용형이와 함께 한다는 것 자체로 기쁘다"며 "용형이의 배려에 감사하다. 앞으로 변함없이 함께 갈 것"이라고 미소 지었다.
조용형의 이런 고운 행동은 선수와 에이전트의 관계를 '고찰'하게 만든다. 인간과 인간으로 만났지만 돈으로 엮여있는 사이라 배신과 변절이 난무하고 있는 형국이다. 선수도 에이전트도 서로의 신의보다 더 많은 이익을 낼 수 있는 곳을 먼저 쳐다 본다. 의리와 우정이라는 말은 돈 앞에서 쉽게 무너지기 일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