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야구위원회(KBO)가 프로 원년인 1982년 채택했던 캐치 프레이즈의 첫 구절이다. 하지만 어떤 어린이들에게 야구는 그저 '꿈'만은 아니었다.
그때 어린이는 이제 장년 나이에 접어들었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다. 어린이는 나이가 들어 아버지나 어머니가 된다. 자녀, 혹은 ‘어린 사람’으로 어린이를 대상화한다. 어린 시절의 느낌과 감성은 기억 깊숙한 곳으로 가라앉는다.
부산을 연고로 하는 롯데 자이언츠의 팬 김중욱(30) 씨는 지난 15일 초등학교 시절의 일기장을 뒤적였다. 야구에 대한 글이 있었다. 6년 동안 쓴 일기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추억에 젖어들었다. 그리고 사진을 찍어 인터넷 커뮤니티 DC인사이드에 이미지 파일을 올렸다. 한 명, 또 한 명이 동참하기 시작했다. 일간스포츠는 초등학생 때 일기장 사진을 올린 이들로부터 게재 동의와 함께 파일을 받았다.
김씨의 1995년 4월 15일 일기 제목은 <개막전> 이다. 이해 롯데는 시범경기를 5승 1무로 마쳤다. 비뚤비뚤하게 쓴 “오늘 프로야구가 개막되었다. 나는 프로야구를 좋아한다”는 첫 문장은 이렇게 이어진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이해 말 발간된 <야구연감> 에는 에이스 주형광을 앞세운 롯데가 개막전에서 태평양에 1-7로 대패한 것으로 기재돼 있다. “내일은 이겨야 한다”고 쓴 소년은 “하지만 지더라도 3점 이상으로는 주지 않을 것이다”는 기대를 덧붙였다. 그리고 다음날 일기에 “4회까지 롯데는 2대1로 지고 있었다. 그런데 뉴스에서 롯데는 오늘 4대2로 또 졌다는 것이다”고 적어야 했다. 끝 문장은 이렇다. “정말 미치겠다. 꼭 이겨야 한다.”
어린이는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어느해인지 정확하지 않은 6월 11일. 소년은 신문 TV편성표에서 롯데 경기의 중계 예고를 읽었다. 전 경기 TV 중계가 없던 시절, 어린 롯데 팬에게 야구 중계는 소중했다.
하지만 방송사 사정으로 이날 중계는 취소됐다. “내가 속은 것이다. 할 거라고 99.9% 믿었으나 내 예상은 멀리 빗나갔다.” 머피의 법칙. “거기다가 롯데가 10대8로 재역전패를 당하였다.” 그리고 세상의 쓴맛을 알게 됐다. “분통터져! 어른들은 알쏭달쏭 같아 너무 믿기 어렵다. 참! 내, 어른이 뭔지, 으휴.”
[ 롯데 팬 김종욱씨의 어린시절 일기 中 일부 ]
또다른 팬은 1993년 이후 어느 해의 일기를 소개했다. '1993년 이후'인 이유는 “롯데 자이언트(츠)는 야구를 잘 못한다. 2회 우승이고 지금은 8위이기 때문이다”고 적혀져 있기 때문이다. 롯데의 두 번째이자 마지막 우승은 1992년의 일이다. 5살 때 야구 선수가 되기로 마음먹었다는 그는 일기를 쓸 때는 ‘축구 선수’로 장래 꿈이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야구로 울고 웃는 야구 팬이다.
‘달봉이’라는 닉네임의 팬이 쓴 1994년 4월 24일의 일기는 시니컬하다. 그는 이날 시즌 첫 야구장 방문을 했다. “따듯한 날에 올해는 처음으로 야구장에 갔다. (중략) 관중석에 사람이 다 차서 서서 보는 사람도 있었다. 너무 놀라웠다. 아직도 롯데를 사랑하고 있다니."
4월 23일까지 롯데는 5승 7패 1무로 그럭저럭 순항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린이 팬은 어른보다 인내심이 더 모자란다. ‘달봉이’는 이날 행복했다. "8회말 공필성이 홈런을 쳐서 다행히 3대2로 통쾌한 승리로 끝났다. 너무 기분이 좋은 날이었다."
하지만 어른, 혹은 롯데라는 팀을 너무 믿으면 안 된다. 이해 롯데는 56승 67패 3무로 8개 구단 중 6위에 그쳤다.
[ `달봉이` 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롯데팬의 어린시절 일기 中 일부 ]
프로스포츠는 역사와 전통이 중요하다. 어린이 팬에게도 좌절을 버틸 수 있는 버팀목은 제 기억에는 없지만, 부모님이나 손윗형제에게 들었을 과거의 영광일 것이다. ‘알...’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40대 중반의 팬은 1984년 10월 3일의 일기를 보내왔다. 롯데의 전설인 고(故) 최동원이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삼진 12개를 잡으며 시리즈 2승째를 따낸 날이다.
“오후에 프로야구를 보았다. 롯데와 삼성은 둘 다 1전 1패기 때문에 정말 흥미로왔다. 오늘은 또 최동원이 탈삼진을 13개를 잡아 코리안시리즈 신기록을 세웠다. 6회의 한 점은 김근석이(의) 파울이 심판 판정에 따라 페어로 되어 1점을 주었다. 매우 원통하였다. 홍문종이 친 타구에 김시진이 다리를 맞아(았)을 때에는 매우 통쾌하였다. 정말 기분좋다.”
일기에서 탈삼진 기록은 틀렸다. 하지만 그러면 어떠랴. 이 경기에서 삼성 선발 김시진은 타구에 맞은 왼 발목 통증으로 8회 권영호로 교체됐다. 오늘날 프로스포츠에선 선수의 안전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과격하고 때로 위험한 플레이는 관중에게 카타르시스를 준다.
‘순수한’ 어린이에게는 더욱 그럴지 모른다. ‘알...’씨는 아마 나이가 들어 사직구장에서 선수들의 나태한 플레이에 가차없이 야유를 보내는 '아재' 팬이 됐을 것이다.
[ `알...` 이란 닉네임을 사용하는 롯데팬의 어린시절 일기 中 일부 ]
야구장에선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난다. 차모 씨는 어느해 4월 3일 야구장에서 여러 일을 겪었다. “5회가 끝나고 외야로 갔는데, 김실이 공을 던져주는데 잡으려다가 놓쳐 다시 던지는데, 어떤 형님이 컵라면을 쏟아 옷을 버렸다.” 운수없는 날? 하지만 이렇게 이어진다. “번호 당첨에서 나는 글러브에 당첨되었다.” 어린이는 야구장에서 세상 일은 쉽지 않지만, 가끔 예기치 않은 행운이 닥친다는 걸 배웠을 것이다.
온라인의 롯데 팬은 자조적으로 스스로를 ‘꼴빠’로 호명한다. 승리보다는 패배를 더 자주 보여줬던 연고지 구단. 많은 이에게 인생 역시 성공보다는 아픈 실패가 더 많은 과정일 것이다. 하지만 야구의 미덕은 내일의 경기가 있고, 다음 시즌이 있다는 것이다. 메이저리그 시카고 컵스의 팬들은 100년 넘게 “내년에 보자(Wait Till Next Year)”를 외친다.
[ 롯데의 어린 팬들의 모습 ]
또다른 김모 씨는 초등학생이던 1992년 10월 14일 일기에 썼던 감격을 올해도 기대할 것이다.
“'92 프로야구가 막을 내렸다.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빙그레가 롯데에게 졌다. 나는 정말 기쁘다. 롯데가 4대2로 이겼으니. 8년 만에 정상을 차지하다니. 내 일도 아닌데 정말 기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