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배구를 대표하는 레전드 7명이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4일 서울 화곡동 88체육관에서 진행된 예능 프로그램 '우리동네 예체능'에 출연했다 .
'우리동네 배구단' 감독을 맡고 있는 김세진 감독의 요청으로 모임이 성사됐다. 각자 소속팀을 이끌고 있는 전설들은 배구 저변확대와 V리그 흥행을 위해 흔쾌히 출연을 결정했다. 한국 여자배구의 '작은 거인' 장윤희(MBC 해설위원)까지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한국 배구 르네상스 이끌다
한국 배구 전설들은 '옛이야기'를 풀기 시작했다. 이들이 현역 시절 활약한 1990년대는 한국 배구의 '르네상스' 시대였다. 실업과 대학팀이 어우러진 '슈퍼리그'는 구름 관중을 몰고 다니며 흥행 가도를 달렸다.
노련한 실업팀과 패기의 대학팀의 맞대결은 최고의 볼거리로 꼽혔다. 남자 국가대표팀은 세계 강호를 상대로 선전을 펼쳤다. 1996년 애틀란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잇따라 진출하면서 한국 배구를 세계에 알렸다.
1990년대 한국 배구의 중심에는 신영철 감독이 있다. 그는 대표팀 주전 세터로 1994년 세계배구선수권 8강, 1995년 월드리그 6강 진출을 이끌었다. 정확한 볼배급으로 '컴퓨터 세터'라는 별명을 얻었다. 대표팀 공격수들은 신 감독의 손 끝에서 나오는 공을 때렸다. 신 감독은 "내가 공을 잘 올린 것보다 후배들이 잘 때려줬기 때문에 주목을 받았다"며 겸손해했다.
신 감독이 현역에서 물러날 무렵 김세진·김상우·박희상·신진식 등 '젊은 피'가 무섭게 코트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실력과 외모를 겸비한 이들의 활약으로 한국 배구는 전성기를 맞았다.
한양대와 성균관대, 삼성화재와 현대자동차서비스(현 현대캐피탈)의 라이벌 구도는 배구의 재미를 더했다.
임도헌 감독은 "라이벌전이 열리는 날에는 배구장 열기가 정말 대단했다"며 "대학 배구의 인기도 정말 높았다. 대학시절 모교(성균관대) 경기에 많은 팬들이 와서 응원을 했다"고 회상했다.
1990년대 스타들은 여성 팬들의 우상이었다. 신 감독은 "김세진·김상우·신진식이 모이면 여성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면서 "얼굴이 잘 생긴 김상우 감독의 인기가 가장 높았다. 김세진 감독은 워낙 말을 잘해 인기를 끌었다.
신진식 코치는 처음에는 주목을 받지만 두 감독에게 밀려 3인자에 머물렀다"며 웃었다. 신진식 코치는 "두 감독에 비해 키가 작아서 그렇다"며 한숨을 쉬어 좌중을 폭소케 했다. 신진식 코치의 신장은 188cm다.
◇최고 명승부는 1996년 한일전
전설들이 추억하는 최고의 명승부는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아시아지역 예선 한일전이다. 1997년 대표팀에 데뷔한 최태웅 감독을 제외하고 6명이 태극마크를 달고 활약했다.
올림픽 지역예선은 한국에서 1차 리그가 열렸고, 2차 리그는 일본에서 개최됐다. 한국은 잠실에 열린 1차 리그에서 일본에게 0-3으로 완패를 당했다.
대표팀은 '배수의 진'을 치고 2차전이 열리는 일본으로 건너갔다. 중국에게 2연승을 거두면서 기사회생에 성공한 한국은 중국에게 패한 일본과 올림픽 진출권을 놓고 마지막 일전을 벌였다.
한국은 나카가이치 유이치(49)가 이끄는 일본 배구에 한 수 아래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대학생' 신진식의 깜짝 활약에 1~2세트를 앞서 나갔다. 신영철 감독은 "신진식 코치가 공을 올리는 족족 공격을 성공시켰다.
당황하던 일본 선수들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신진식 코치는 "당시 컨디션이 정말 좋았다. 신 감독님이 워낙 좋은 공을 올려줘서 좋은 공격을 할 수 있었다"고 했다.
한국은 일본에게 3세트를 내줬지만, 전열을 가다듬고 4세트에서 마침내 승부의 마침표를 찍었다. 마지막 포인트는 김세진 감독의 블로킹이었다. 김 감독은 "컨디션이 좋지 않아 교체로 나섰다. 마지막 1점을 남겨놓고 있었기 때문에 '반드시 막아내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경기가 끝나고 서로 얼싸 안으며 정말 기뻐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한국 배구가 최근 일본에게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기본기에서 차이가 난다. 해결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레전드, 20년 만에 코트에 모이다
전설들은 경기를 앞두고 준비를 단단히 했다. 신영철 감독은 "현역 시절에도 해보지 않았던 무릎 테이핑을 했다. 무릎이 버텨줄지 모르겠다"며 웃었다. 신진식 코치가 손가락을 감싸는 밴드를 꺼내자 너도 나도 손을 벌렸다.
김상우 감독은 "선수 생활을 하면서 부상을 많이 당했다. 발목은 더 다치면 안된다. 감독을 할 수 없을지 모른다"며 너스래를 떨었다. 후인정 코치는 "연습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5개월 동안 쉬어서 감각이 돌아올 지 모르겠다"며 걱정했다.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전설들은 시원한 스파이크를 연신 코트에 꽂았다. 세터를 맡은 신영철 감독은 변함없는 실력을 뽐내며 공을 고르게 분배했다. 라이트 공격수로 나선 후인정 코치는 '미사일' 같은 스파이크를 날렸다. 임도헌 감독과 신진식 감독은 공·수에서 변함없는 기량을 선보였다.
장윤희 위원은 가벼운 몸 놀림으로 코트를 누볐다. '막내' 최태웅 감독이 레전드팀 사령탑을 맡았다. 그는 "작전은 준비하지 않았다. 선배들이 말을 잘 듣지 않을 것 같다"며 웃었다.
전설들이 20년 만에 코트에 모인 이유는 하나 뿐이다. 배구 '발전'을 위해서다. 후인정 코치는 "김세진 감독께서 좋은 취지로 출연을 요청했다. 당연히 와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현역에서 물러나 지도자를 해보니 유소년 배구가 너무 취약하더라.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배구가 어렵지 않은 스포츠라는 걸 알리고 싶다. 프로그램을 통해 동호인(사회인) 배구팀이 많다는 걸 듣고 놀랐다. 배구 저변을 확대를 위해 배구인들이 더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