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첫 번째 보도자료의 내용은 이렇다. "두산은 10일 현역 은퇴 의사를 밝힌 투수 노경은(32)의 결정을 받아들여 KBO에 임의탈퇴 공시를 요청했다." 그러나 나흘 뒤인 14일에는 정반대였다. "두산은 지난 10일 은퇴 의사를 밝혔던 노경은이 그 뜻을 번복해 와 14일 KBO에 임의탈퇴 공시 철회를 요청했다."
전례 없는 해프닝이다. 정금조 KBO 육성운영부장조차 "그동안 수많은 임의탈퇴를 처리해 봤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 봤다"고 했다. 시속 150㎞를 던지는 30대 초반의 투수가 느닷없이 은퇴를 선언했다가 나흘 만에 번복했다. 그 과정에서 KBO와 두산 구단이 괜한 고생을 했다.
노경은은 17일 두산 2군 경기장인 경기도 이천 베어스파크에서 다시 훈련을 시작한다. 그러나 이미 상처가 남았다. 좋지 않은 선례도 생겼다.
구단이 노경은을 강제로 은퇴시키려 했던 것이 아니다. 노경은 스스로 "야구를 그만 하고 싶다"고 했다. 올 시즌 세 번의 선발 등판에서 9⅔이닝 동안 평균자책점 11.17을 기록한 뒤였다. 지난달 22일 2군행 통보와 함께 "열흘간 마음을 추스르면서 불펜 전환을 준비하라"는 얘기를 들었다. 바로 다음 날인 23일 구단 사무실을 찾아 "은퇴해야 할 것 같다"는 의사를 밝혔다.
구단 관계자들과 수석코치, 투수코치가 모두 나서 만류했다. 그러나 노경은이 뜻을 굽히지 않았다. 두산은 결국 지난 최종 면담을 마치고 KBO에 임의탈퇴 공시를 신청했다.
문제는 그 뒤였다. KBO가 최종 확인을 위해 노경은과 연락을 시도했지만 통화가 되지 않았다. 공시 절차가 계속 미뤄졌다. 노경은은 이틀 뒤인 12일에야 KBO의 연락을 받았다. "임의탈퇴 서류에 내가 사인을 한 것은 맞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구단과 다시 상의해야 할 부분이 남았다"며 임의탈퇴 승인 보류를 요청했다. KBO는 이를 두산에 전달했다. 선수 인생이 걸린 문제라 KBO도 사인 만으로 처리를 할 수 없었다. 노경은은 이튿날인 13일 다시 구단 사무실을 찾았다. "임의탈퇴 신청을 철회해달라"고 했다. 구단도 "심사숙고해서 최대한 빨리 입장을 정하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두산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복귀를 막고 선수 한 명의 야구 인생을 끊어버리기엔 부담이 너무 컸다. 두산이 원치 않은 칼자루를 넘겨 준 인물은 노경은 자신이었다. 결국 예견된 결론이 나왔다. 두산은 KBO에 임의탈퇴 공시 철회를 요청했다. KBO도 받아들였다.
노경은은 일단 잔류군에 합류한다. 올 시즌 남은 연봉 1억4000만원도 다시 받는다. 그러나 모든 게 원점으로 돌아간 건 아니다. 특정팀과의 트레이드설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두산과 노경은은 KBO에 임의탈퇴를 신청하기 전 이미 한 차례 트레이드에 대한 교감을 나눴다. 카드가 맞지 않아 실패했을 뿐이다. 앞으로 또 다른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충분하다.
노경은을 둘러싼 팀 내 공기도 아직은 불편하다. 김태형 두산 감독은 "선수 보직은 시즌을 치르다 보면 팀 상황에 따라 변할 수도 있는 것"이라며 "솔직히 답답했다. 감독이 선수에게 여러 상황에 대해 직접 일일이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했다. 일단은 노경은을 감쌌다. "나이도 있고 3년째 야구가 잘 안 되는 상황이었으니 생각이 많았을 것 같다"며 "나는 지나간 일을 곱씹어 생각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지금부터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