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진은 좀 더 특별한 ‘아웃’이다. 스트라이크아웃낫아웃을 제외하면 야수의 도움 없이 잡아내는 아웃이기 때문이다. 투수의 스터프, 혹은 구위는 탈삼진률로, 컨트롤은 볼넷비율로 파악한다면 큰 무리가 없다.
그래서 “삼진과 볼넷 비율을 안다면 투수의 반은 이해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이 있다. 평균자책점이나 피안타율, 이닝당출루허용률(WHIP) 등 지표는 수비력, 구장 형태 등의 영향을 받는다. 반면 삼진과 볼넷은 투수의 능력과 책임으로 볼 수 있다.
또다른 이점이 있다. ‘수치의 안정화’가 빠르다. 즉 선수의 ‘능력’을 파악할 수 있는 샘플의 수가 적다. 러셀 카튼(베이스볼프로스펙터스 필자)의 연구에 따르면 피홈런 비율이 안정화되는 데는 타자 1320명을 상대해야 한다. 하지만 삼진률은 그 1/20인 70타자 정도만 상대하면 된다고 한다.
9이닝당 삼진률(K/9)과 타석당 삼진률(K%)는 자주 쓰이는 삼진 관련 통계다. 각각 삼진 수를 ‘이닝수*9’, ‘타석수’로 나눈다. 구하기 쉽고, 직관적이다. 팬그래프닷컴에 따르면 한 메이저리그 시즌의 K/9과 K%의 상관관계는 0.983이다.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물론 늘 일치하는 건 이니다. 샘플이 적을수록 그렇다. 투수 A는 3연속 볼넷 뒤 삼진 세 개를 잡았고, 투수 B는 삼진 세 개로 퍼펙트 이닝을 했다. 두 투수 모두 K/9은 27이지만 K%는 A가 50%, B가 100%다. 당연히 B가 더 이상적인 투수다.
K%는 K/9에 비해 투수에게 삼진을 잡을 ‘기회’가 몇 번 있었는지에 집중하는 수치다.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나가보자.
C 투수는 스트라이크(S)–S-파울(F)–볼(B)-F-B 뒤 헛스윙을 유도해 삼진을 잡아냈다. D 투수는 S-S-S로 타자를 더그아웃으로 보냈다. ‘공’을 기준으로 A는 삼진을 잡을 기회를 다섯 번 받고서야 성공(20%)했다. B는 한 번에 바로 잡아냈다(100%).
삼진에는 ‘효율성’도 중요하다. 투구수를 줄이고 많은 이닝을 던지는 게 투수의 덕목이다. 그래서 ‘기회당 삼진률(이하 K/O)’이라는 지표를 고안할 수 있다. 삼진 수를 ‘2S 상황에서 던진 투구 수’로 나눈 값이다.
두 번째 스트라이크가 기록되면 투수와 타자 모두 마음가짐을 달리 한다. 투수는 삼진을 잡기 위해 구종 선택에 변화를 준다. 타자는 1S나 2S와는 달리 헛스윙 한 번으로 바로 아웃이므로, 장타보다는 정확한 타격을 하려 할 것이다. 투수와 타자에게 2S 이전 이후는 아예 다른 종류의 경기라고도 할 수 있다.
2013~15년 메이저리그 데이터를 이용해 K/O을 구했다. 2S 상황에서 타자가 삼진을 당할 확률은 18.59%였다. 해가 지날수록 다소 높아졌지만 대동소이했다(2013년 18.31%, 2014년 18.69%, 2015년 18.76%). K%의 증가와 궤를 같이 했다.
뉴욕 양키스의 새 마무리 아롤디스 채프먼이 무지막지한 비율로 삼진을 잡아낸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채프먼은 2015년 크레이그 킴브럴이 보유한 K% 기록을 경신했다. 기회당 삼진은 어땠을까? 최소 300투수 이상을 기준으로 하면 순위는 다음과 같다.
[ 아롤디스 채프먼 / 뉴욕 양키스 ]
◇순위 투수 현 소속팀 기회당 삼진률(K/O)
1 앤드류 밀러 뉴욕 양키스 31.69% 2 카슨 스미스 보스턴 레드삭스 31.19% 3 브렛 세실 토론토 블루제이스 30.99% 4 아롤디스 채프먼 뉴욕 양키스 30.87% 5 델린 베탄시스 뉴욕 양키스 30.73% 6 그렉 홀랜드 캔자스시티 로얄스 30.14% 7 페드로 스트롭 시카고 컵스 29.14% 8 크렉 킴브럴 보스턴 레드삭스 28.48% 9 윌 스미스 밀워키 브루어스 28.28% 10 다르빗슈 유 텍사스 레인저스 27.24%
양키스의 슈퍼 불펜진 베탄시스–밀러–채프먼은 각각 5위, 1위, 4위로, 명성을 재확인했다. 그런데, 4위 채프먼과 7위 스트롭을 비교해 보자. 채프먼의 K%는 45.3%에 이른다. 반면 스트롭은 훌륭한 불펜요원이지만 채프먼만큼 삼진을 잡아내지는 못한다(K%=29.1%). 둘은 2013년 ~ 2015년에 각각 184이닝, 186⅓이닝을 던졌다.
이닝 차이는 근소하지만 채프먼이 스트롭에 비해 주자를 덜 내보냈기 때문에, 타석 수도 적었을 것이다. 더 적은 타자를 상대하면서 K/O도 큰 차이가 없었는데, 어떻게 채프먼이 훨씬 많은 삼진을 잡을 수 있었을까.
바로 타자를 투 스트라이크까지 유도하는 경우가 채프먼이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채프먼 1082번, 스트롭이 748번이다. 타자들이 스트롭에게 적극적인 타격을 했을 수도 있고, 시속 100마일이 넘는 채프먼의 공이 파울을 많이 만들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2스트라이크인 경우를 한정하면, 스트롭은 주무기인 날카로운 슬라이더로 채프먼만큼 효율적으로 삼진을 잡아낸 투수였음을 알 수 있다.
K%는 구원투수가 선발보다 3%포인트 정도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K/O도 비슷하다. 위의 표에서 다르빗슈 유를 제외한 모든 투수가 더그아웃이 아닌 불펜을 집으로 삼는다. 또, 기회당 삼진률은 하위타선을 상대할 확률이 높은 2회에 약간 올라가고, 한 투수가 같은 타선을 같은 경기에서 연거푸 상대할수록 떨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앞서 언급했듯, 2스트라이크 상황에서 투수들은 구종 선택에 변화를 준다. 2013~15년 메이저리그 투수들은 62.16% 비율로 빠른공을 던졌다. 2S 상황에선 54.64%로 떨어진다. 삼진을 잡기 위한 유인구를 더 많이 던졌다는 뜻이다. 실제 변화구는 삼진에 더 유용했다. 구종별 기회당 삼진률은 슬라이더가 22.38%, 커브는 21.21%(너클커브 23.64%)였다. 패스트볼은 17%에도 미치지 못했다.
LA 다저스 에이스인 클레이튼 커쇼는 0S, 1S에서는 브레이킹볼 구사율이 33%였다. 반면 2S에선 60% 가까이 브레이킹볼을 던졌다. 저스틴 벌랜더, 댈러스 카이클, 크리스 아처 등 에이스급 선발들도 마찬가지 경향을 보였다.
[ 커쇼 / LA 다저스 ] 이들 모두 직구보다는 브레이킹볼을 던졌을 때 월등히 높은 높은 K/O를 보였다. 특히 카슨 스미스(보스턴)는 2S에서 브레이킹볼 구사율이 무려 77%였다. 브레이킹볼의 K/O(37.15%)을 그 외 구종(10.81%)과 비교하면 당연한 결과다.
반면 제임스 실즈, 제프 사마자는 2S에서 오프스피드 피치의 빈도를 높여 재미를 봤다. 구원 투수 둥에선 잭 푸트넘, 마이크 모린 등이 비슷했다.
2S에서 역으로 패스트볼 계열 구종을 자주 선택하는 투수도 있다. 시애틀의 ‘킹’ 펠릭스 에르난데스는 스트라이크 카운트를 두 개 채운 뒤엔 빠른공 비율을 높였다. K/O는 낮다. 스트라이크존을 벗어나는 높은 공을 보여준 뒤 그 다음 공으로 타자를 잡아내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른바 ‘셋업 피치’다. 탬파베이 마무리 투수 브래드 박스버거도 2S에서 빠른공을 많이 던졌다. 빠른공의 K/O가 더 높은 희귀한 케이스였다.
워싱턴의 맥스 슈어저는 2S에서 브레이킹볼과 오프스피드 피치 구사율을 모두 높였다. 그는 지난 12일 친정 디트로이트를 상대로 9이닝 20탈삼진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브레이킹볼과 체인지업으로 모두 삼진을 잡을 수 있는 능력이 도움이 됐을 것이다.
홍기훈(비즈볼프로젝트) MIT와 조지아텍 대학원을 거쳐 스포츠통계업체 트랙맨베이스볼 분석 및 운영 파트에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