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태용(46) 올림픽대표팀 감독의 희망사항이 물거품이 됐다. 신 감독은 지난 3월 손흥민(24·토트넘)을 와일드카드로 확정 발표하면서 오는 6월 올림픽팀에 손흥민이 합류할 것으로 기대했다. 당시 상황을 종합하면 '(손흥민이) 합류할 수 있게 해달라'는 간곡한 간청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울리 슈틸리케(62) 감독은 결국 이를 외면했다. 국가대표팀의 유럽 원정 친선전이 더 우선이라는 논리에서다. 손흥민은 A대표팀과 유럽으로 간다.
A대표팀은 오는 29일 유럽으로 떠나 다음 달 스페인(1일), 체코(5일)와 2연전을 치른다. 2014년 말 슈틸리케팀이 출항한 뒤 가장 강한 상대와 격돌한다. 슈틸리케 감독은 최정예 멤버를 꾸려 상대한다는 계획이다.
올림픽팀도 갈길이 바쁘다. 다음 달 초 국내에서 열리는 '올림픽대표팀 4개국 초청 대회'에 나서야 한다. 나이지리아(2일), 온두라스(4일), 덴마크(6일)와의 일전이 기다리고 있다. 앞으로의 일정을 고려했을 때 손흥민이 더욱 필요한 쪽은 올림픽팀이다.
그들은 오는 8월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본선에 참가한다. 올해 한국 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대회다. 특히 이번 4개국 대회가 올림픽팀으로서는 올림픽 본선으로 가기 전 마지막 소집이라는 점이다.
두 팀 모두에 속해 있는 손흥민은 어디로 가야 할까.
손흥민이 빠진 A대표팀을 최정예라 할 수 없다. 그런 측면에서는 유럽 원정을 떠나는 것이 맞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그런데 올림픽팀이 마지막 소집에서 와일드카드 손흥민과 미리 발을 맞추고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것은 뼈아프다. 신태용팀이 슬픈 이유다.
과연 올림픽팀 와일드카드가 A대표팀으로 가는 것이 옳은 선택인가.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있다. 전문가들도, 축구팬들도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쟁점은 '우선순위'다. 유럽 강호와의 첫 대결을 앞둔 A대표팀의 경쟁력 평가가 우선인가. 올림픽을 목전에 둔 올림픽팀의 경쟁력 상승이 먼저인가. 일간스포츠가 축구전문가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손흥민은 A대표팀으로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올림픽팀을 배려하는 마음이 크다.
올림픽팀의 성장과 리우 올림픽에서의 성과를 항상 바라왔다. 손흥민을 리우 올림픽에 와일드카드로 차출하기 위해 토트넘을 설득하는 과정에서도 슈틸리케 감독은 큰 힘이 됐다. 슈틸리케 감독은 분명 A대표팀과 올림픽팀의 동반 성장을 꿈꾸고 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올림픽팀에 양보할 수 없었다.
슈틸리케 감독이 한국 대표팀에 부임한 뒤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항상 꼬리표처럼 따라붙은 말이 있었다. '강팀과 경기를 해보지 않았다.' 압도적 승률에도 일부 사람들은 약팀과의 대결에서 얻은 결과라며 평가절하하기도 했다.
그래서 슈틸리케 감독은 강팀과의 평가전을 추진했고 이번에 드디어 성사됐다. 유럽의 강호 스페인과 체코다. 슈틸리케 감독은 "강팀과의 대결에서 우리 팀의 객관적인 경쟁력을 평가 받고 싶다"며 "최정예 멤버를 꾸려 유럽으로 가고 싶다"고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대한축구협회 한 관계자는 "슈틸리케 감독님의 의지가 워낙 강하다. 최정예를 데려가 유럽 강호들과 제대로 붙고 싶다는 생각이다. 손흥민도 그래서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구자철(27·아우크스부르크)이 부상으로 대표팀에 합류하지 못하고 유럽파 대부분이 주전 경쟁에서 밀려 경기에 뛰지 못한 상황이라 손흥민이 더욱 절실했다.
축구인 A는 슈틸리케 감독의 이런 의지를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슈틸리케 감독의 의지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이해될만한 상황이다. 손꼽아 기다리던 강호와의 만남에서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며 "게다가 자주 오는 기회도 아니다. 이런 기회에 A대표팀의 확실한 경쟁력을 보여주고 싶을 것"이라고 말했다.
축구인 B는 "최정예 멤버에서 손흥민이 빠지면 의미가 없다. 구자철도 없는 상황에서 손흥민마저 없다면 A대표팀의 무게감이 확 떨어진다"며 "평가전이기는 하지만 유럽 강호를 상대로 새로운 선수를 실험하는 것도 우습다. 손흥민의 올림픽팀 적응은 와일드카드가 다 정해지고 나서 해도 늦지 않다"고 해석했다.
◇손흥민은 올림픽팀으로
우선순위 차원에서 아쉬움이 든다는 의견도 많다. 손흥민이 우선 필요한 쪽은 올림픽팀이라는 것이다.
올림픽은 8월 시작하고 7월 초 최종엔트리가 소집된다. 이번 4개국 대회가 올림픽 전 마음껏 평가하고 실험하는 마지막 기회인 셈이다. 이번 대회가 평가전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의미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올림픽팀과 손흥민은 발을 맞추지 못했다. 신 감독도 이번 기회를 노렸다. 본선을 앞두고 손흥민 효과를 경험하고 손흥민의 능력을 극대화 시키는 전술도 구상할 수 있다. 기존 선수들과의 호흡과 조화를 위해서도 시간이 필요하다.
또 경기력 외적인 부분에서도 중요한 시기다. 함께 식사를 하고 숙소를 쓰며 나누는 소통의 시간은 경기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이 기회가 사라졌다.
축구인 C는 슈틸리케 감독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면서도 아쉽다는 반응을 드러냈다.
그는 "물론 슈틸리케 감독의 의지도 공감이 간다"고 말한 뒤 "와일드카드를 미리 뽑아놨으면 활용할 줄도 알아야 한다. 토트넘 차출 문제로 미리 발표를 했다지만 이름이 밝혀진 이상 올림픽팀과 발을 맞출 수 있는 이런 좋은 기회를 놓쳐서야 되겠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아쉬운 결정이다. 올림픽팀에 양보를 했어야 맞다고 생각을 한다"며 "우선순위를 따져야 한다. 지금 당장 가장 중요한 것은 올림픽이다. 메달을 따야 하는 대회다. 전폭적으로 밀어줘야 하는 시기다. 월드컵 최종예선은 장기전이다"고 설명했다.
축구인 D는 "전술, 경기력뿐만 아니라 올림픽팀 선수들과 손흥민이 함께 있는 시간을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이 소통에 큰 부분을 차지한다"며 "손흥민이 처음 보는 선수들도 많을 것이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소통의 시간을 늘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스페인과 체코 등 강호와의 평가전은 A대표팀에 쉽게 오지 않는 기회다. 하지만 4개국 대회는 올림픽팀에 마지막 기회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