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년간 본 예능 장면중에 가장 극적이었다. 큰 사고를 친 길이 자숙을 끝내고 '쇼미더머니5'로 방송에 복귀하는 자리. 그 떨리는 순간에, 친형같은 선배 정준하는 참가자로 랩에 도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준하를 '쇼미5'로 이끈 하하는 먼 발치에서 길의 복귀와 정준하의 도전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봤다. 길은 머리속으로 수차례나 그 장면을 그려봤다. '내가 형 심사를 하게 되면 어쩌지' '눈물은 절대 흘리지 말아야지.'
다행히 심사는 피해갔다. 하지만 정준하의 랩 차례가 돌아오자, 온 신경이 그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잠시 본인의 심사를 멈추고, 한참을 걸어 정준하에게 다가섰다. 형이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1초도 걸리지 않았다. 현장에 있던 '무한도전' 스태프 들도 울고, 하하도 울고, 정준하도 울었다. 가뜩이나 덩치가 큰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를 꼭 끌어안고 아이처럼 울었다. 각본없이 '우연'이 만들어낸 결과이기에 감동은 더 했다.
그렇게 길은 '첫 번째 고향'인 힙합신에 극적으로 복귀했다. '힙합 대부'라는 말에는 손사래를 치지만, 힙합을 사랑하고 방송에 복귀를 해야한다면 '쇼미'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쇼미' 출연을 추천한게 '무한도전' 멤버들이었다. "올해는 꼭 '쇼미'에 나갔으면 좋겠다"며 용기를 줬다.
길은 지난 2년간 민폐라며 '무도' 얘기를 피했다. 심지어는 멤버들도 만나지 않고 살았다. 하지만 길과 '무도'는 그렇게 촘촘한 운명의 사슬처럼 얽혀있었다. 그래서 '무도'는 길에게 '두 번째 고향'이다. 피해주기 싫다며 '무도' 얘기는 꺼내기 싫어했지만, 조심스럽게 묻고 싶었다. "길에게 무도는 어떤 의미입니까"
오후 2시에 시작된 취충토크는 오후 6시가 훌쩍 지나서야 끝났다. 둘이 소주 5병을 나눠 마셨고 음악 얘기로 시작해, '무도' 얘기로 맺었다. 등산한 뒤 인터뷰를 할 계획이었지만, 비가 와 산에 오르는데는 실패했다. 대신 홍대의 캠핑바에서 분위기를 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났고, 아침에 눈을 뜨니 길에게 문자메시지가 와 있었다. '무도 이야기는 다시 생각해도 참 어렵네요. 되도록 안 나가는게 좋지 않을까요'라고.
▶'쇼미더머니' 이야기
-첫 등장 신에서 영화 '대부'의 곡이 깔렸어요. "매드클라운이랑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그 곡이 걸린거예요. 원래는 '갱스타스 파라다이스'도 생각했었거든요. 제가 힙합 대부다라는 얘기는 절대 아니고 뭔가 슬픈 힙합 새드송에 웅장한 관현악기도 들어가있는걸 찾다가 그 곡이 떠오른거죠. 근데 거기에 '힙합 대부'라는 자막을 넣은거예요. 내가 무슨 대부냐 빼달라고 했죠. 근데 진표도 그렇게 가는게 재미있겠다고 해서, 그냥 갔어요. 도끼가 계속 '형이 골랐죠''형이 대부는 맞는데, 스스로 대부로 생각하는건 좀 웃기지 않아요'라고 놀리더라고요. 하하."
-힙합 프로듀서 길이라고 소개받는데, 길의 음악이 힙합인가요. "블랙 뮤직의 테두리안에 들어가 있다고 보죠. 더 디테일하게는 붐뱁 안에 들어가 있는거고요. 장르를 얘기할때 유식하게는 '다 재즈에서 시작한거다' 뭐 그럴수 있는데 요즘 뮤지션들은 유치하게 뭘 붙이는걸 싫어해요. 제가 좋아하는 음악, 내 얘기를 담을수 있는 음악, 그런걸 한다고 하죠."
-'쇼미더머니'를 선택한 이유는요. "사실 얘기는 5년전부터 있었죠. 근데 여건이 맞지 않았었어요. 의구심도 들었고요. 과연 내가 나가서 뭘 할수 있을까. 내가 재미있을까라는 생각도 했고요. 근데 주위에서 올해부터는 무조건 방송을 하자고 한 거예요. '쇼미'는 무도 멤버들이 추천했죠. 하하가 준하 형에게 간신 짓을 하기 한참 전이에요. 멤버들이 추천을 해주니 마음을 먹었죠. 근데 예능신이 도와주셨는지 갑자기 하하가 준하형을 낚으면서 이런 그림까지 나온거죠."
-정준하씨의 심사를 할 뻔도 했어요. "심사는 복불복이죠. 근데 쌈디랑 맞은거죠. 저도 시뮬은 해봤죠. '절대 울지 말아야지'하고요. 근데 당일에는 기분이 이상해지더라고요. '무도'가 방영될 때 전 미국에 있었어요. 자려고 하는데, 계속 전화와 문자가 오더라고요. 다 '무도' 얘기였어요. 엄청 울었다고요. 너무 슬프고 짠하다고요. 결국 와이파이 터지는데서 매니저와 함께 찾아봤죠. 그 때도 둘다 울었어요."
-정준하 씨는 쭉 만나고 있지 않았나요. "준하형은 한 1년 정도는 보지 않았어요. 그래도 집으로 육개장 칼국수도 한박스 보내주시고 죄송하게도 신경 많이 써주셨죠. 홍철이 사건이 터지고는 안봤어요. 그냥 모든게 다 저 때문인거 같고, 나때문에 좋아하는 사람들이 마음이 다쳤다는거에 대한 미안함이 생기고, 그러니까 볼수가 없더라고요. 자주 안보게 되니까 혼나죠. 명수 형한테 제일 많이 혼나고요. 집 앞에 사는데 밥먹으로 오라고, 술한잔 하자고 연락이 오는데 나가질 않으니까요. 근데 이상하게 그게 잘 안되더라고요. 너무 부끄러운거죠. 제가 이렇게 말도 안되는 잘못을 저질렀고 막내까지 그랬으니까요. 홍철이는 자기 잘못이라고 하는데, 형으로서 동생 볼 면목이 없었어요. "
-정준하씨와 포옹하고 눈물을 쏟았는데 어떤 기분이던가요. "정말 부끄러웠어요. 사람들 진짜 많고 카메라도 많았는데 다들 그 상황만 주목하고 있잖아요. 근데 저쪽에서 큰 소리가 나는거에요. 저도 심사를 보는 중이라 가서 보면 안되니까 PD에게 물어만 본거죠. 가서 봐도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가지 않았어요. 근데 이번엔 심사 받는 분들이 가서 보고 오라는 거예요. 한참을 걸어서 갔는데 얼굴 딱 보니까 갑자기 눈물이 막 나는거예요. 말로 설명할 수가 없었어요. 노랫말로도 쓸수가 없고. 되게 보고 싶었나봐요. 또 그 자리에 있던게 다 '무도' 스태프들이었어요. 한 3년 만에 만난거거든요. 사진 찍는 친구, 조명·음향·조연출·작가 다 한팀이거든요. 아는 작가들이 눈물 흘리면서 카메라 피해 도망가는 것도 보이고. 울컥했죠."
-예능을 다시 하는 이유는요. "예능이라기 보다는 '쇼미'는 꼭 하고 싶었어요. '쇼미'는요, 우리나라에서 힙합하는 사람들에게는 엄청 좋은 프로그램이에요. 악마의 편집이다 뭐다 하는데 재야의 고수들이 발굴되고 알려지고 그들이 음악을 더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그런것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무도'가 제2의 고향이라면 원래 고향은 힙합인데, 그 고향에서 다시 시작한다는 건 저한테도 의미가 있고요. 솔직히 재미있고요. 영건들과 작업을 하고 만들어 간다는게 재미있어요."
-녹화는 종반을 향해가고 있을텐데, 잘한 선택이라는 생각이나요. "200퍼센트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엄청 재미있어요. 이렇게 프로듀서들끼리 친한적도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매드클라운이랑 하는 것도 재미있어요. 둘 사이의 연결고리가 개그맨 김기리더라고요. 기리가 매드랑 친하다는 얘기를 듣고, 기리한테 나 매드랑 '쇼미'하는데 자리를 한 번 만들어달라해서 집에 초대했어요. 웃겼어요. 계란 말이 해주고, 밥먹고 술 마시고 그랬죠."
-심사 중에 모조 총을 들고나온 참가자에게 저격당하기도 했어요. "엄청 기분 나빴죠. 인성을 좀 얘기해줘야 하나. 이건 아니지라고 했죠. 저격만 하면 괜찮은데 마지막엔 총까지 쏴버리니까요. 총 겨눴을때 차라리 '제발 랩 잘해라'라고 했어요."
-재탕 삼탕 얘기도 있고, '쇼미' 고시라는 말도 나왔어요. "재야의 래퍼들이 부각이 됐으면 하는데, 우리 나라 전체 그림을 봐야죠. 비와이·씨잼·샵건같은 친구들 유명하다고 하는데, 잘 모르시잖아요. 오버그라운드에 있는 친구들을 왜 출전시키냐고 하는데, 저는 그 친구들이 잘하니까 나와야 된다고 생각해요. 업그레이드되어서 나온다면요."
-심사를 여러번 봐서 문제가 된 적도 있어요. "저는요. 씨잼 심사만 4번을 봤어요. 그건 프로듀서 스타일이에요. 쌈디도 준하형한테 물어봤잖아요. 또 할수 있는거 있냐고요. 저랑 더콰이엇이 제일 많이 떨어뜨렸거든요. 두번 세번 물어봐서 그래요. 기술이 어느 정도 있는지는 알아야죠. 한번 듣고 어떻게 알아요. 그래서 처음건 잘했는데 두번째걸 못해서 떨어진 친구들도 많아요."
-더콰이엇은 5초만 들으면 안다던데요. "그 말도 맞아요. 5초만 들으면 알 수도 있어요. 막말로 '요' 이거면 알아요. 잘하는구나, 자세 잡혔는데 라고요. 첫 가사 몇글자 듣고 라임타는거 들으면 알아요. 전 혹시나 점검이죠. 준하형도 한 번 더 해서 다른걸 했다면 결과는 몰랐을 거예요. 근데 저도 똑같았겠죠. '또 있어요? 없어요? 탈락' 이렇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