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리 슈틸리케(62) 감독이 한국 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출항을 알린 2014년 10월 이후 한국 축구는 희망을 향해 순항했다. 27경기에서 21승3무3패라는 훌륭한 성적을 냈다. 특히 지난해에는 17승3무1패의 압도적 결실을 맺었다.
실점률이 0.2골로 국제축구연맹(FIFA) 가맹국 중 1위를 차지했다. 최근에는 A매치 8경기 연속 무실점 승리라는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이런 흐름은 축구팬들의 머릿속에 '슈틸리케팀이 경기를 하면 항상 승리한다'라는 인식을 강하게 심어줬다. 승리는 이제 일상이 됐다.
그런데 슈틸리케팀이 '지는 법'을 배울 시기가 왔다. 슈틸리케팀 역사상 가장 강한 적을 만나기 때문이다. '무적함대' 스페인이다. 한국은 1일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레드불아레나에서 스페인과 격돌한다.
스페인은 FIFA 랭킹 6위의 세계적 강호다. 한국의 54위와 차이가 크다. 한국은 A대표팀(5전 2무3패), 올림픽대표팀(2전 2패), U-20 대표팀(2전 1무1패), U-17 대표팀(3전 1무2패) 등 전 연령대 대표팀을 통틀어 한 번도 스페인을 꺾지 못했다.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으로 인해 레알 마드리드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선수 7명이 한국전에 출전할 수 없다. 하지만 안드레스 이니에스타(32), 헤라르드 피케(29), 세르히오 부스케츠(28·이상 바르셀로나) 등 바르셀로나 선수들이 중심을 잡는다.
여기에 세스크 파브레가스(29·첼시), 다비드 실바(30·맨체스터 시티), 알바로 모라타(24·유벤투스) 등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힘을 더한다. 유로 2016에서 대회 3연패를 노리는 그들의 절대적인 힘이다.
냉정하게 말해 한국은 스페인을 이길 수 없다. 물론 축구공은 둥글다. 하지만 현재의 격차라면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한국이 승리할 가능성은 낮다. 또 원정 경기, 장거리 비행, 시차 등 환경적 요인도 한국에 불리하다.
그렇기에 스페인전 목표는 승리가 아니다. 한국이 얻어야할 것은 '슈틸리케답게 지는 법'이다. 슈틸리케 감독이기에 지는 법도 달라야 한다. 스페인에 졌다고 해서 비난을 할 팬들은 없다. 하지만 '어떻게 지느냐'는 중요하다.
무기력한 패배는 절망이다. 지더라도 경쟁력을 선보이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현재 한국 축구의 높은 수준, 월드컵에서의 비전 등을 제시해야 한다. 축구에서 분명 아름다운 패배는 존재한다.
아름다움 속에는 희망이 있다. 세계적 강호를 상대로 물러서지 않는 뚝심, 그들을 괴롭힐 수 있는 전술과 전략, 그리고 쉽게 무너지지 않는 투지까지, 희망을 찾을 수 있는 요소들이 많다. 이런 것들을 추구하다보면 꿈은 커진다. 그리고 기적과 같은 승리가 찾아올 수도 있다.
'슈틸리케답게 지는 법'은 이미 한 번 경험했다.
2014년 10월 열린 코스타리카와의 평가전이다. 당시 1-3으로 완패를 당했지만 박수를 받았다. 2014 브라질월드컵 8강에 오른 FIFA 랭킹 25위 강호 코스타리카를 상대로 물러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졌지만 당당하게 싸웠다. 패배 속에서도 한국 축구의 밝은 미래를 볼 수 있었던 경기였다.
슈틸리케 감독은 "스페인은 세계적인 강팀이다. 하지만 적어도 경기장 위에서는 경기력 차이가 느껴지지 않도록 잘 준비할 것"이라며 "한국 축구의 철학과 정신력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경기 전부터 우리가 위축될 필요는 없다"고 '슈틸리케다운' 출사표를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