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골탈태다. 넥센 투수 김세현(29)은 올해 많이 달라졌다. 이름(개명 전 김영민)만 바꾼 게 아니다. 더 달라진 건 마운드에 서 있는 그의 모습이다.
넥센 소방수 자리를 맡았다. 7일까지 벌써 15세이브를 쌓았다. 이 부문 2위다. 23이닝을 던지는 동안 4사구가 하나도 없다. 공은 빠르지만 늘 제구력을 지적받았던 투수 '김영민'은 이제 사라졌다. 팀은 그가 "천직을 찾았다"고 말한다.
지난해 그는 큰 시련을 겪었다. 복통 때문에 병원을 찾았다가 만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9월 말에 황망히 시즌을 접고 항암 치료에 전념했다. 다행히 무사히 야구장에 돌아왔다. 그것도 이전보다 더 위력적인 모습으로 나타났다.
20대의 활력을 당연하게만 여겼던 젊은 투수. 이제 건강이 얼마나 큰 선물인지 누구보다 절실하게 깨달았다. 8일 마산구장에서 만난 김세현은 "내가 할 수 있는 게 야구밖에 없더라. 앞으로 더 강한 모습으로 다른 인생을 펼쳐가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마무리 투수 첫 해다. 출발이 성공적이다.
"멋진 보직인 것 같다. 다른 시즌과 준비는 똑같이 했는데도 '마무리'라고 생각하니 마음가짐부터 달라졌다. 이제 나이도 있고 책임감도 생겨서 신경을 많이 썼다."
-어떤 부분을 가장 신경 썼나.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되는 자리다. 안타를 맞아 위기에 몰리거나 수비 실책이 나와도 내색 안 하려고 했다. 사실 첫 경기(4월 2일 고척 롯데전)에선 스스로 조금 붕 떠 있었다. 그때 부진(1이닝 2실점)해서 오히려 약이 된 것 같다. 경기를 준비할 때 좀 더 긴장감이 생긴다."
-몸은 어떤가. 병은 완전히 나았나.
"완치가 없는 병이라고 한다. 계속 치료를 받고 있다. 두 달에 한 번 정도 병원에 가고, 매일 오후 3~4시 쯤 정해진 시간대에 약을 먹는다. 그 시간대에서 3시간이 초과되면 소용이 없어서 잘 챙겨 먹어야 한다. 중간중간 몸에 열이 나면 바로 응급실에 간다."
-응급실이라니.
"열이 느껴지는 순간 무조건 가야 한다. 안 그러면 위험하다. 올 시즌에도 숙소에 있다가 열이 38도까지 올라서 병원 응급실로 달려간 적이 있다. 약도 마찬가지다. 하루 정도 거른다고 큰 이상은 없지만, 그게 반복되면 급성으로 번질 위험이 있다. 급성은 사람들이 흔히 아는 바로 그 백혈병이다. 그래서 약 먹는 게 더 중요하다. 언제까지 먹어야 할지 기한도 없다."
-비용과 노력 모두 만만치 않겠다.
"그런 면에선 한국에서 태어나 다행이다. 약값이 3개월 분에 800만~900만원 정도다. 외국에는 국가 지원을 못 받아서 병을 방치하다 죽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다행히 나는 국가에서 상당 부분을 보험으로 지원받고 있다. 행운이다. 감사하고 있다."
-그런 상태로 좋은 피칭을 하는 게 대단하다.
"할 수 있는 게 야구밖에 없지 않나. 지금 내가 몸을 움직일 수 있고 운동할 수 있는 상태만 된다면, 끝까지 열심히 야구를 하는 게 내 길이라고 생각한다. 아프고 나니 야구가 더 절박해졌다. 언제 건강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더 그렇다."
-올 시즌 내내 군인처럼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고 있다.
"야구 외에 다른 것은 신경 쓰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사실 아파서 머리카락에 신경을 쓸 수도 없다. 아주 독한 치료제를 먹고 있기 때문에 (화학 제품을 사용하는) 펌이나 염색을 아예 할 수가 없다. 어차피 이 헤어스타일 외에 다른 방법도 없다."
-큰 고비를 넘긴 것 같다. 체력적으로는 힘들지 않나.
"물론 힘들긴 하다. 골수 검사는 정말 안 받아본 사람은 모른다. 정말 아프다. 또 연투를 하고 나면 확실히 이전보다 몸이 더 힘들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도 지금 이 시기가 행복하다. 팀에서 내 역할을 하고 있고, 무엇보다 야구를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좋다."
-첫째도, 둘째도 몸 관리가 가장 중요하겠다.
"생활 습관 자체가 많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솔직히 내 몸을 내가 혹사했다. 젊고 건강해서 몸이 소중하다는 것을 잘 몰랐다. 아파봐야 아는 것 같다(웃음).
지금은 일찍 자고, 좋은 것을 먹으면서 잘 관리한다. 건강이 정말 최고다. (이때 대장암을 극복하고 복귀한 NC 원종현이 염경엽 감독에게 인사하러 넥센 더그아웃을 찾았다.) 종현이도 정말 멋지다. 돌아온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멋지다. 암을 이겨낸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이제 야구로 더 잘 될 일만 남았다.
"사실 조심스럽게 품고 있는 꿈이 있다. 내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국가대표에 도전하고 싶다. 그렇게 되면 정말 내 야구 인생이 정말 활짝 필 것 같다. 그게 바로 진짜 인생 역전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