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마산구장 NC전 7회말, 한화 주장 정근우(34)는 수비에 들어가기 전 투수 송은범의 등을 두들기며 이렇게 말했다. 무엇을 하지 말라는 것일까. 답은 명확했다. NC 타자들을 향해 '빈볼'을 던지지 말라는 뜻이었다. 자신이 상대의 보복성 투구에 몸을 맞은 뒤였다. 그라운드에서 감정 대립과 물리적 충돌이 일어나지 않기를 희망했다.
NC와 한화 선수단은 6회 충돌했다. 6회말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NC 박석민이 타석에 들어섰다. 한화 선발 송은범이 초구를 던지려고 할 때 박석민이 타석을 벗어났다. 특유의 타격 준비 루틴을 마무리하지 못하자 타석에서 발을 뺐다.
타임 요청은 없었다. 투구 동작에 들어간 송은범은 느린 공을 던졌다. 공은 볼이 됐다. 투수 입장에선 균형이 갑자기 무너져 부상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다음 2구째에 송은범은 빠른공이 박석민의 등 뒤를 지나갔다. 박석민은 송은범을 응시하더니 마운드를 향해 걸어나갔다. 고의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항의를 했다. 송은범은 두 팔을 올리며, '문제가 없다'는 뜻을 나타냈다. 박석민은 마운드로 걸어올라갔고, 두 팀 더그아웃에서 선수들이 쏟아져 나왔다. 큰 충돌은 없었지만 경기는 한 동안 지연됐다.
벤치클리어링은 종료됐지만, 신경전은 여전했다. 7회말 1사, NC 불펜 투수 최금강이 초구 직구를 던져 정근우의 몸에 공을 맞혔다. 한화 선수단은 일제히 벌떡 일어나 뛰어나갈 태세를 갖췄다. 그런데 이때 정근우가 더그아웃을 향해 손을 들며 '괜찮다'는 의사를 밝혔다. 아픔을 참고 1루로 걸어나갔다. 더이상의 충돌은 원하지 않는 듯 했다.
정근우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7회 수비에 들어가면서 투수 송은범을 자제시켰다.
동료가 맞으면 보복을 하는 게 야구장의 관습이다. 하지만 주장답게 팀과 구장 분위기를 진정시켰다. 정근우는 '빈볼'이 아닌 실력으로 응수했다. 그는 이날 1회 선두 타자 홈런 포함 4타수 2안타·1타점·2득점으로 활약했다. 캡틴의 활약을 앞세운 한화는 8-2로 승리하고 NC의 16연승을 저지했다.
같은 시각 인천에서는 LG 류제국과 SK 김강민이 빈볼 시비를 벌인 끝에 벤치클리어링이 발생했다. 이유야 있었겠지만, 류제국과 김강민은 모두 주장이었다. 그래서 정근우의 "하지마"에는 더 울림이 있다. 그라운드에서 '캡틴의 품격'을 제대로 보여줬다.
정근우는 이날 경기 뒤 "(빈볼은) 그라운드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라며 "송은범에게 당부한 건 상황을 정리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프로 선수 아닌가. 야구로 보여주면 된다. 팀이 어려운 상대를 만났는데, 선수단 모두 집중력을 발휘해서 승리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김경문 NC 감독은 22일 우천 취소된 한화전을 앞두고 "참고 나가는 정근우가 멋있더라. 동업자 정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