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전 화장품 회사의 깨끗한 얼굴 선발대회로 연예계 발을 디딘 채정안은 배우와 가수 활동을 오갔다. 무대에서는 샛노란 머리칼을 흔들며 테크노를 추다가도 드라마에서는 첫사랑의 아련한 여자로도 변신한다. 이 모든 건 채정안이 흥이 많아 가능한 일이었다.
"괜히 '흥언니(흥이 많은 언니)라고 부르는게 아니죠. 그냥 좋게 좋게 생각하면 기분 좋아지잖아요. 그렇다고 생각 없이 산다는 건 아니지만 즐겨야죠. 궁금한게 많아요. 그래서 저에게 맞는 게 뭔지 시도해보며 시행착오를 겪는 거죠."
지난달 엔터테인먼트계를 다룬 SBS 드라마 '딴따라'를 끝낸 채정안은 할 말이 많았다. 실제 자신이 걸어온 길이 곧 드라마가 됐기 때문이다. "느끼는게 많았죠. 그때의 저는 그냥 못 하는 애였어요. 특히 가수 활동 때는 지금 절대 못 볼 영상도 많죠. 노래도 못 했고 많이 떨고. 지금 친구들은 정말 영리해요. 저는 그렇게 못 했어요."
채정안하면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은 '커피프린스 1호점'이다. 가벼운 메이크업에 흩날리는 머릿결, 조근조근 내뱉는 말까지 남자 못지 않게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아직도 채정안을 보면 '커프' 한유주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헤어진 여자친구의 정석이라 불릴만큼 아직도 회자된다. "우연한 기회로 출연하게 됐는데 이렇게 오랫동안 대중의 사랑을 받을 줄은 몰랐죠. 그때부터 현장의 즐거움을 깨달았어요. 채정안을 새로운 세계로 안내한 작품이죠."
배우와 가수의 성공을 본 채정안이 이번에는 예능에 도전한다. 온스타일 '더바디쇼4' 메인 MC로 올 여름을 뜨겁게 달군다. 170㎝이 넘는 늘씬한 키에 데뷔 후 지금껏 '후덕'과는 거리가 멀 만큼 철저한 자기 관리를 보여왔다.
첫인상은 차갑지만 몇 마디 나누다보면 드는 생각은 '이런 누나·언니 있으면 참 좋겠다'였다. 그래서 현실적인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결혼은 가능한 늦게 해요"라고.
[채정안 취중토크②]에서 이어집니다.
-어찌보면 만능 엔터테이너의 원조에요.
"아니에요. 더 위로 올라가면 홍서범 선배도 있고 (엄)정화 언니·(임)창정 오빠도 있죠. 엄밀히 따지면 전 CF로 데뷔했으니 '원조 CF스타' 정도요.(웃음)" -'서브여주'라는 말을 직접해 화제였어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죠. 지금 드라마계에서는 어린 친구들을 주인공으로 많이 원하니깐요. 제가 혜리 역할을 할 순 없잖아요. 한때는 주인공을 해봤고 지금은 그 자리가 내것이 아님을 알고 있어요. 씁쓸하지만 받아들일건 받아들여야죠."
-생각보다 의연하네요.
"'서브여주'라 불리는 배우들에겐 뭔가 모르게 통하는 느낌이 있어요. 그게 뭔지 알 거 같고요. 나이가 들수록 후배들 입장에서 생각해보게 돼요. 젊고 예쁜 배우들이 남자주인공의 사랑을 받고 저는 또 다른 걸 보여주고요."
-데뷔한 지 20년이 넘었어요.
"다른 사람들 데뷔 20주년 기념 행사 하는 걸 보면 대단하다 싶었는데 막상 내가 그렇게 오래된 줄 모르고 살았어요. 지금도 체감은 7~8년이에요. 일을 제대로 알고 즐긴게 그리 오래되지 않아서 그래요. 지금도 신인배우랑 인터뷰한다고 생각해주세요."
-그 긴 시간 중 제일 치열했던 시기가 언제인가요.
"2013년이요. 드라마 '남자가 사랑할 때'를 할 때 였는데 지금의 매니저와 처음 만난 후 하게 된 작품이에요. 둥지를 옮겼으니 마음 가짐이 달라졌죠. 긴장도 되고 잘해야겠다는 부담감도 컸고 데뷔 때보다 더 떨렸어요."
-과거에는 신비주의를 고집했어요.
"지금와서 하는 말이지만 신비한 '척' 했죠 뭐. 본 모습은 이런데 왜 그렇게 숨기고 살았나 싶어요."
-왜 숨기고 살았나요.
"어릴 때부터 늘 그랬어요. 여배우들은 숨기고 살아야한다고. 혼자 있어도 안 됐고 늘 옆에 누군가 있어야했어요. 그렇게 길들여졌고 언젠가부터 '이건 아니다' 싶어서 스스로 만든 이미지를 없애려고 노력했죠."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기까지 쉽진 않았을 거에요.
"예전에는 누군가 예쁘다고 말하면 감사하다고 하면 될 걸 말 못하는 사람도 아닌데 부끄러워서 숨었어요. 그런 게 반복되다보니 성격이 중성적으로 변하더라고요. 그러던 중 예능 출연이 본모습을 보여주는 계기가 됐죠. 그후로 자유로워졌고 남의 눈치를 덜 보게 됐어요. 마음이 그전보다 훨씬 홀가뿐해요."
-그래도 그때로 돌아가고 싶나요.
"분명 치열하게 살았고 도전도 많이 했지만 너무 보호받고 자랐어요. 세상을 다시 바라보게 된 것도 얼마 안 됐고요. 젊다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니잖아요. 그때로 돌아가고 싶진 않아요."
-몸매 관리는 꾸준히 하나요.
"원래 마른 체질이기도 해요. 소음인이에요. 또 성격상 잠시도 가만히 못 있어요. 집에 있어도 하루종일 '돌돌이'들고 다니면서 먼지 제거해요. 주변 사람들이 '제발 가만히 앉아있어'라고 할 만큼요. 그러니 살 찔 겨를이 없죠."
-축복받은 체질이네요.
"부모님도 길쭉길쭉해요. 가수 활동할 땐 더 말랐어요. 지나가면 사람들이 다 '뼈만 있어'라고 했으니깐요. 지금은 그때보다 쪘어요."
-연애도 해야죠.
"하면 좋겠죠. '썸남썸녀'에 함께 나왔던 사람들은 연애 많이 하던데 정작 짝이 없네요. 아직 좋은 남자를 만나지 못 했어요."
-실제 연하와 연애를 꿈꾸기도 하나요.
"전혀요. 연하는 남자로 안 보여요. 옛날 사람이라 그런지 연하와 연애는 썩 용기 나지 않아요. 그래서 지금까지 연하는 만난 적 없어요. 상황상 굳이 결혼을 목표로 만날 필요는 없으니 이제 마음을 열어야 하나 싶어요."
-고민은 뭔가요.
"30대 중반을 넘어선 여배우들 모두 고민이 많을 거에요. 다행인 건 나이가 드는 만큼 세상도 변하고 있어요. '워킹맘' '싱글맘' 등 다양한 여성상이 많이 생기잖아요. 김희애·김성령 선배 같은 분들이 이끌어주니까 우리가 또 힘이 나고요."
-올해 남은 목표가 있나요.
"다작(多作) 하고 싶어요. 두 개 정도만 더 하면 딱 좋겠어요. 한남동 사는데 집과 궁합이 좋지 않아요. 그럼 밖으로 나가야죠. 곧 좋은 작품에서 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