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관련 일을 하는 사람이라 시즌 중에는 주중도 주말도 없긴 하다. 하지만 이번 주말엔 박병호의 경기를 보러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에서 안타깝게도 1할대 타율과 30%가 넘는 삼진율로 고전하다 트리플A로 강등됐다. 그가 소속된 로체스터 레드윙스는 지난 주말, 펜실베니아 주의 리하이밸리에서 원정 경기를 치렀다. 필라델피아 필리스 산하 트리플A의 홈구장이 있는 리하이밸리는 BIS(Baseball Info Solutions)라는 야구통계회사가 있는 곳과도 가깝다.
BIS는 수비를 평가하는 새로운 통계인 DRS(Defensive Runs Saved)를 고안한 회사다. 세이버메트릭스의 대부 빌 제임스가 고문으로 있다. 2년 전 여름엔 필자가 인턴생활을 하기도 했다. 리하이밸리는 철강산업이 발전한 도시다. 구단 애칭인 아이언피그스는 철강업에 쓰이는 피그아이언(선철)에서 따왔다. 팀 이름을 직역하면 '철돼지가' 된다. 때문에 돼지와 관련된 물건이 눈에 많이 띈다. 아무리 미국 사람들이 기름진 음식을 좋아한다지만, ‘베이컨튀김’은 너무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이너리그지만 아이언피그스는 관중이 많게는 만 명 가까이 들어오는 인기구단이다. 야구장도 굉장히 예쁘다.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2012년 마이너리그 구단 가치를 평가한 적이 있다. 가장 가치가 높았던 구단은 새크라멘토 리버 캐츠(오클랜드 산하). 그 다음이 아이언피그스였다. 현재 이 팀에 소속된 유망주로는 J.P. 크로포드가 있다. 메이저리그 공식사이트의 유망주 순위 3위에 올라있는 유격수다.
첫 날 경기에서 박병호는 4타수 2안타를 기록했다. 첫 타석 중전안타에 이어 2-2로 팽팽하게 맞선 8회초에는 상대투수의 시속 95마일 직구를 밀어쳐 우월 솔로 홈런을 날렸다. 타구는 굉장히 잘 맞았다. 마치 레이저처럼 쭉 날아갔다. 박병호의 홈런에 힘입어 원정 팀 레드윙스는 3-2로 신승을 거뒀다.
박병호는 메이저리그에서 시즌을 시작한 선수다. 트리플A에서 홈런 개수는 많지 않다. 그러나 타석당 홈런수는 인터내셔널 리그에서 누구에 못지 않는다. 인터내셔널리그에서 홈런 10개 이상을 기록한 타자들은 박병호의 두 배에 가까운, 혹은 그 이상으로 많은 타석에 들어섰음을 알 수 있다. 마이너리그 전체를 통틀어서도 박병호처럼 높은 빈도로 홈런을 때려내는 선수는 없다.
둘째날 경기에서 박병호는 4타수 무안타에 그쳤다. 상대 투수 애덤 모건이 워낙 잘 던졌다. 8⅔이닝 동안 3피안타 2실점이었고, 삼진은 무려 11개를 잡아냈다. 삼진도 두 개나 당했다. 트리플A 타석당 삼진률은 26.1%까지 높아졌다. 인터내셔널리그에서 30위 안에 드는 수치다. 박병호는 한국에서도 삼진을 많이 당하는 선수였다. 컨택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빅리그에서의 성공은 쉽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틀 동안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박병호의 홈런도, 삼진도 아니었다. 그의 성실성이었다. 대기 타석에서 상대 투수의 타이밍을 재는 건 어느 타자나 하는 일이다. 하지만 두 경기에서의 박병호처럼 대기 타석에서 일구일구 모든 투구에 스윙 연습을 하는 타자는 미국에서 본 적이 없다. 그런 노력이 있었기에 그는 한국 최고의 타자로 거듭날 수 있었을 것이다.
팬 서비스도 기억에 남았다. 둘째날 경기는 비로 30분 가량 시작이 지연됐다. 박병호는 경기를 기다리는 어린이들에게 친절하게 사인을 해줬다. 그 옆에 있던 필자도 박병호의 사인을 받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비구름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언제 비가 왔냐는 듯한 맑은 날씨에서 경기는 시작됐다. 비바람은 언젠가 그친다. 마이너리그에서 보내는 시간은 지금 박병호에게 나쁜 날씨와 같은 것이다. 그 경험이 쓴 약이 돼 빅리그에서 홈런을 펑펑 터뜨리는 맑은 날이 다시 오길 기원해본다.
홍기훈(비즈볼프로젝트) MIT와 조지아텍 대학원을 거쳐 스포츠통계업체 트랙맨베이스볼 분석 및 운영 파트에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