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2013년 겨울. 텍사스 레인저스의 프런트는 분주했다. 가능성을 보여준 메이저리그 최고의 유망주 쥬릭슨 프로파의 자리를 만들어야 하는 임무가 있었다.
텍사스의 해답은 5년간 6700만 달러 계약이 남아 있던 주전 2루수 이안 킨슬러의 트레이드였다. 매년 3.0 이상의 WAR(승리기여도)이 가능한 킨슬러의 가치는 상당했다.
토론토 블루제이스가 가장 먼저 미끼를 물었다. 아메리칸리그를 대표하는 거포인 호세 바티스타 혹은 에드윈 엔카나시온을 줄 수 있다는 조선을 제시했다. 텍사스는 이 제안을 수락했지만, 킨슬러가 트레이드 거부권을 행사해 딜은 무산된다. 텍사스는 다른 트레이드 상대를 찾았고, 결국 킨슬러는 디트로이트의 1루수 프린스 필더와 유니폼을 바꿔입게 된다.
지난 3년간(14-16) 타자 WAR 순위 (팬그래프 기준) 1. 마이크 트라웃 : 23.7 2. 조쉬 도날드슨 : 21.5 3. 호세 알투베 : 15.4 4. 앤서니 리조 : 15.3 5. 폴 골드슈미트 : 14.9 6. 버스터 포지 : 14.8 7. 매니 마차도 : 14.6 8. 이안 킨슬러 : 13.7 9. 브라이스 하퍼 : 13.7 10. 애드리언 벨트레 : 13.5
디트로이트로 건너간 킨슬러는 오히려 예전보다 더 맹활약을 펼친다. 3년 간 WAR은 13.7로 메이저리그 전체 타자 중 8위였다. 킨슬러 영입에 실패한 토론토는 2014년 마땅한 주전 2루수 없이, 가와사키 무네노리, 스티브 톨레슨, 라이언 고인스 등으로 자리를 메꾸는 데 급급해야했다.
하지만 반전이 일어났다. 디트로이트 팜에서 무럭무럭 크고 있던 2루수 데본 트래비스의 앞길이 막혀버린 것. 디트로이트는 당시 팀내 1위 유망주였던 트래비스의 쓰임새를 찾기 위해 중견수로도 기용해보지만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결국 시즌이 끝난 뒤 토론토 중견수 앤서니 고즈와 맞트레이드시킨다. 마이너리그 통산 0.317의 타율을 기록한 타자이지만, 키가 작고(174cm), 드래프트 지명 순서가 늦으며(13라운드 424번), 나이(14년 24살의 나이로 더블 A소속)가 많았다. 그의 성공 가능성을 높지 않다고 봤다.
하지만 토론토로 건너온 트래비스는 곧 두각을 나타낸다. 2015년 스프링캠프에서 안타 23개를 치며 0.357의 타율을 기록한다. 팀내에서 가장 많은 안타와 높은 타율이었다. 이에 팀은 화답한다. 트리플A 출장 경험조차 없던 그를 메이저리그 주전으로 낙점하고 뉴욕 양키스와의 개막전 9번 타자로 출전시킨 것이다. 그는 이 경기에서 2타수 1안타 2볼넷을 얻어내며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룬다.
이후에도 순항은 이어졌다. 4월을 0.325/0.393/0.625로 마감하며 이달의 아메리칸리그 신인상을 수상했다. 언론에서는 그를 가장 유력한 신인왕 후보로 꼽기 시작했다. 주루 과정에서 입은 어깨 부상으로 62경기만에 시즌을 마감한 것은 옥의 티. 신인상 역시 여름에 데뷔한 카를로스 코레아에게 돌아가고 말았다. 트래비스의 부상 이후 그의 자리를 대신했던 라이언 고인스는 플레이오프에서 0.139/0.162/0.250의 빈타를 기록하며 팀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기에 더욱 아쉬움이 컸다.
지난해 받은 어깨 수술의 재활로 올해 다소 늦게 시즌을 시작했지만, 그의 활약은 여전하다. 지난 2년 간 그는 0.305/0.352/0.498의 비율 스탯과 함께 WAR 4.7을 기록했다. 한시즌에 해당되는 600타석으로 환산하면 5.8승이다. 현재 양대 리그의 MVP경쟁을 벌이고 있는 호세 알투베와 다니엘 머피, 그의 앞길을 가로막은 이안 킨슬러보다 높은 수치다. 지난 2년간 400타석 이상 뛴 2루수 46명 중 단연 최고다. 야구에 만약이 없다지만, 그가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온전한 한시즌을 건강하게 보낸다면 어느 정도의 선수일지 추정을 해볼 수 있는 수치다.
<그림> 데본 트래비스의 타구 분포도(by 팬그래프) 그림>
상대 투수 유형도 가리지 않는다. 위 그림에서 볼 수 있듯 필드 전역으로 타구를 보낸다. 직구,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등 모든 공들을 평균 이상의 능력으로 공략하고 있다. 기복이 있는 삼진 많은 거포형 타자들이 즐비한 토론토 타선에는 누구보다 꼭 필요한 유형의 선수다. 토론토는 5월 24일까지 22승 25패로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최하위로 처져 있었다. 이후 69경기에선 43승 26패로 치고 올라가며 직수 우승 경쟁에 뛰어들었다. 비밀의 열쇠는 5월 25일이라는 날짜다. 데본 트래비스가 부상자 명단에서 돌아온 날이다. 지난해 토론토는 20년만의 월드시리즈 정상에 설 기회를 목전에서 놓쳤다. 올해는 건강한 트래비스가 있다.
임선규(비즈볼프로젝트)
지속적인 스포츠 콘텐트 생산을 목표로 하는 젊은 스포츠 연구자들의 모임. 일간스포츠와는 2014년부터 협력 관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