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이육사는 일제 강점기 혹독한 현실 속에서도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을 목놓아 기다렸다. 넥센이 기다리던 초인이 등장했다. 돌아온 외국인 투수 앤디 밴헤켄(37)이다.
염경엽 넥센 감독은 23일 대전 한화전을 앞두고 "밴헤켄의 복귀가 큰 힘이 되고 있다"며 "일본에서 많이 던지지 않아 어깨 상태가 좋다. 직구 구속은 줄어들었지만 공 끝이 살아있다. 무엇보다 포크볼이 더 좋아졌다. 상대 타자가 밴헤켄의 포크볼에 말도 안되는 스윙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전반기 신재영이 깜짝 활약을 해줬다. 하지만 후반기 동력이 없었다. 그런데 마침 밴헤켄이 나타났다. 우리 팀 약점은 기둥이 없는 것인데, 기둥이 생겼다"고 덧붙였다.
KBO리그 20승 투수 밴해켄은 올해 일본 프로야구 세이브로 이적했다. 그러나 초라한 성적을 남기고 퇴출됐다. 10경기에 등판해 1승도 얻지 못하고, 4패 평균자책점 6.31로 부진했다. 염경엽 감독은 "밴헤켄의 구위는 문제가 없었다. 적응의 문제라고 본다. 바깥쪽 스트라이크를 잡아주지 않으면서 흔들렸다. 심적으로 부담을 느낀 것 같다"고 분석했다.
밴헤켄의 퇴단을 예상한 넥센은 그의 복귀를 추진했다. 피어밴드를 웨이버공시하고, 곧바로 밴헤켄을 데려왔다. 일본 무대에서 실패한 밴헤켄의 재영입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그러나 밴헤켄은 2014년 20승 투수로 군림하던 모습을 재연하고 있다. 복귀전(고척 두산)을 포함해 등판한 5경기에서 4승을 따냈다. 유일하게 승리가 없었던 지난 4일 부산 롯데전에서 6이닝 2실점으로 역할을 다했다. 5경기 평균자책점은 0.84로 맹위를 떨치고 있다.
밴헤켄의 합류와 동시에 넥센은 상승세를 탔다. 밴헤켄이 복귀전을 치른 7월28일부터 19경기에서 11승8패를 기록했다. LG(16승7패, 승률 0.696)에 이어 승률 2위(0.579)에 오르며 후반기를 순항하고 있다. 팀 평균자책점은 3.82로 가장 좋다. '에이스'의 복귀가 마운드의 안정으로 이어진 모습이다. 야금야금 격차를 줄여 2위 NC와 승차는 3.5경기에 불과하다.
염경엽 감독은 "밴헤켄의 합류 시기가 절묘했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시즌 내내 큰 기복없이 순위를 유지했다. 올라가고 내려갔지만, 그 폭이 크지 않았다. 그러나 마음 속에 고민은 있었다. 7월 중순이 넘어가면 팀 페이스가 크게 한 번 떨어질 것 같았다. 7월말로 예상했다. 외국인 투수 교체로 대안을 마련하고 싶었다. 그러나 마땅한 투수가 없었다. 그런데 마침 밴헤켄이 세이부에서 풀린다는 소식이 들렸다. 곧바로 구단에 요청했다. 엄청난 지원군이 왔다"고 설명했다.
밴헤켄의 합류는 팀 전체에 안정감으로 이어지고 있다. 염 감독은 "확실한 에이스 투수가 있다는 건 전력에 큰 보탬이 된다"며 "개인 성적도 중요하지만, 팀 전체에 퍼지는 안정감이 더 큰 영향을 주고 있다. 가을야구를 하게 된다면 밴헤켄이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밴헤켄이 흡사 '백마를 타고 온 초인' 같다고 하자 염 감독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