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봉서는 대한민국의 코미디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역이었다. 희극배우로서 400여 편의 영화, 980여 편의 라디오에 출연하며 크게 활약한 구봉서. 코미디언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고군분투한 그의 노력이 빛을 발했다.
30일 오후 방송된 MBC 희극인 구봉서 추모 특집 '울고 웃은 60년, 한국의 찰리 채플린 구봉서'에는 27일 숙환으로 별세한 구봉서의 이야기가 그려졌다.
구봉서는 코미디언들이 입모아 말하는 '코미디계 아버지'다. 고단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코미디로 휴식처를 제공했고 1970년대에는 '웃으면 복이 와요'를 통해 당대 최고의 인기를 끌며 코미디언의 인기를 상승시켰다.
'웃으면 복이 와요' 김재화 전 작가는 "도둑이 들어와서 '웃으면 복이 와요'를 가족들과 같이 보다가 끝나고 나서 물건을 훔치고 나갈 정도로 인기였다. 지금의 시청률로 보면 70~80%를 육박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구봉서는 코미디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유행어를 탄생시킨 주인공이기도 하다. '김 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 치치카포…' 자식의 장수 상징으로 지은 72자의 이름은 '최장길이' 유행어로 지금까지도 자리 잡고 있다.
환상의 콤비 구봉서와 배삼룡. 최고의 콤비이자 영혼의 단짝이었다. 하지만 코미디 스타일이 달랐다. 몸으로 쓰는 코미디를 많이 했던 배삼룡과 달리 구봉서는 메시지가 있는 극적인 코미디를 많이 시도했다. 한 평론가는 구봉서에 대해 "웃기고 눈물이 나지만 뒤돌아서면 슬픔 인생의 일깨움을 주는 코미디를 많이 했다. 사회를 풍자하는 진실이 담긴 코미디를 추구했다"고 전했다.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끼친다는 비난 여론으로 코미디 프로그램이 전면 폐지 위기를 맞았던 상황. 정면돌파 해서 해결한 사람은 구봉서였다. 그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을 직접 만나 "택시 하나가 사고를 냈다고 모든 택시를 없애면 어떻게 하느냐"면서 방송사 1개당 코미디 프로그램 1개로 타협점을 찾았다.
영화배우로도 활동을 꾸준히 했다. 이는 코미디언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 꾸준히 쌓아온 연기력을 바탕으로 했기에 가능했던 구봉서의 연기생활. 후배 한무는 "구봉서 선배님은 '말로만 웃기지 마. 진짜 연기를 해'라고 하셨다. 그런 가르침이 많았다"고 회상하며 구봉서를 추억했다.
돈만 아는 세상에 대한 풍자로 시청자들을 울고 웃겼던 구봉서. 그는 떠났지만 '코미디계 살아있는 전설'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