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풋풋했던 로맨틱 왕자님이 30대 피도 눈물도 없는 지옥의 불구덩이 한 복판에 떨어졌다. 변화는 새롭고 변신은 즐겁다. 영화 '아수라'(김성수 감독)에 '막둥이 악인'으로 합류한 주지훈(34)은 생애 첫 남자 영화에서 태어나 처음 보는 대선배들과 살 떨리는 호흡을 맞췄다. 애교 넘치는 막내 역할은 옵션이다.
데뷔작 드라마 '궁'에서 선보였던 캐릭터가 자신과 가장 잘 맞는다며 "아직 꽃미남 이미지를 버리지 않았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뻔뻔함은 여유롭다. 하지만 "먹고 살기 힘들다. 살아 남으려면 어쩔 수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그에게서 성장하는 30대 배우의 고뇌를 엿볼 수 있었다.
※인터뷰 ②에서 이어집니다.
-배우들은 '현장에서 잠만 자는 막내'라고 놀렸지만 밤새 대본을 독파하고 현장에 간다고.
"난 현장에서 대본을 보는 스타일이 아니다. 무조건 미리 보고 가야 한다. 카메라 앞에서 약간 굳는다고 해야 하나? 그럴 수 있을까봐 최대한 현장에서는 릴렉스 하려고 한다. 그게 내 방식이다."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달라지는 부분도 있지 않나.
"그 정도 센스는 있어야지. 여기서 안 없어지고 먹고 사는 사람들은 다 그만한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모두에게 주어진 핸디캡은 핸디캡이 아니니까. 그것조차 못하면 먹고 살 수 없다."
-문선모 캐릭터는 이해가 가던가.
"귀엽다. 선모 귀엽지 않냐. 형들 잘 따르고 자기 일 충실히 하고. 이번에 연기하면서 느낀 것인데 사람은 참 재미있는 것 같다. 악인도 직업이 있고 자기가 마음을 정해서 '저 사람을 상사로 모셔야겠다' 생각하면 그가 어떤 인물이건 잘 보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신기하다. 악인이든 선인이든 책임감이 있고 참 열심히 산다."
-'아수라' 팀 막내로는 얼마나 열심히 살았나.
"기라면 기고, 노래하라면 하고, 술 마시라면 마시고 복종했다.(웃음) 형들 중 누구도 '아수라' 이전에 본 적이 없었다. 모두 처음 뵙는 분들이었다. 지금은 시간이 좀 지나서 편해진 것이겠지만 요즘 '형들이 많았는데 어렵지 않았냐'는 질문을 많이 받다 보니까 처음 만났을 때 생각이 나더라. 솔직히 무서웠다.
-포스가 남달랐나?
"그들이 갖고 있는 커리어와, 후배로서 바라보는 선배의 모습이 있지 않냐. 사람이 무서울 때는 때리고 욕할 때가 아니다. 그 아우라가 느껴질 때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선배님들이어서 후배 입장인 나로서는 살 떨리더라. 그걸 잠깐 잊고 살았다."
-그래도 김성수 감독을 비롯해 다들 '지훈이 연기 잘하지 않았냐'며 엄청 칭찬하던데.
"'지훈이 욕먹으면 어떡하지?'라는 마음에 걱정해 주시는 것 같다. 자기들은 알아서 자기 밥그릇이 다 있으니까!(웃음) 솔직히 감사하고 고맙다. 언제 또 예쁨을 받겠냐. 행복했고 행복하다."
-김성수 감독은 어떤 스타일이던가.
"동네 큰 형 같은 느낌이 있다. 동네 큰 형인데 나랑 친해. 그래서 어깨가 우쭐해 지는 느낌? 감독님은 정말 디테일하고 어려운 주문을 하시는데 따라가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감독님이 저 앞에서 걸어가면 달려가서 쫄래쫄래 뒤따르고 싶다. 이 정도 친하면 진작 형이라 불렀을텐데 너무 우리 아버지와 한 살 밖에 나이 차이가 안 나서. 형이라고 하면 패륜이 될 것 같다.(웃음)"
-형들의 장·단점을 꼽아달라.
"우성이 형은 너무 착하다. 그냥 착한 것이 아니라 착함을 넘어서게 착하다. 선함을 그냥 타고난 사람이다. 잘해주고 안 잘해 주고를 떠나서 사람 자체가 선하게 태어난 것 같다. 내가 되게 힘든 시기에 우성이 형이 내 앞에 딱 나타나준 것이라 너무 감사하고 고맙다.
한동안 내 일로만 따진다면 '아이 뭐 현장 좀 늦게 가면 어때. 내가 피곤한데 내가 우선이지'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누가 짜증나게 하면 화도 내고 그랬다. 그러던 찰나에 형이 나타났다. 그리고 결국 선이 승리했다. 우성이 형을 보면서 많이 배웠지만 형을 따라가기는 쉽지 않다. 난 그렇게 선한 사람은 아니다.
만식이 형은 굳이 꼬집자면 덜 재미있다. 개그가 한 단계 떨어진다. 도원이 형은 술 마시고 잘 운다. 그리고 웃음소리가 너무 크다. 발성이 남다르다. 달팽이관이 터질 것 같다. 내 달팽이가 힘들어 한다. 정민이 형은 연기할 때 가끔 무섭다. 눈 돌아가는 것 보고 있으면 대사를 순간적으로 까먹을 때가 있다. 사람을 그냥 홀려 버린다.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겠다. 할 줄 알면 나도 따라 하겠는데."
-외모는? 황정민 아내 분이 황정민에게 '정우성 주지훈 사이에서 있으니까 오징어 같아'라는 말을 했다고 하더라.
"에이, 형님은 이미 멋지다. 다 갖추셨다. 많은 캐릭터를 넘다들면서 외모까지 캐릭터에 맞게 바꾸셔서 그렇지 솔직히 정말 잘생기셨다. 양조위 같다. 팔, 다리도 엄청 길다. 피치컬이 어마어마하다. 정민이 형 스스로 부끄러워 해서 그런 것이지 아마 멋지다는 걸 다들 아시지 않을까 싶다.
도원이, 만식이 형은 모두 아시겠지만 정말 귀엽다. 만식이 형은 외국 배우같고 도원이 형은 부엉이 같다."
-정우성은 굳이 언급하지 않는 것인가?
"내가 볼 때 우성이 형도 이제 지겨울 것 같다. 이미 질림과 지겨움을 넘어서서 받아 들이신게 아닌가 싶다. 손사레 치기도 힘드신 것 같다. 난 감독님이 표현한 우성이 형이 딱 맞는 것 같다. 다들 잘생겼다고 하는데 우리 감독님은 꼭 근사하다고 하신다. 형은 정말 근사하다."
-본인은 어떤가.
"형들 사이에서 난 찌그러져야지.(웃음) 그리고 난 재미있는 것이 더 좋다. 물론 그 마음이 약간 커서 문제다.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도 재미있냐, 재미없냐로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