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④] 주지훈 "꽃미남 이미지? 아직 안 버려…'궁' 제일 잘맞았다"

20대 풋풋했던 로맨틱 왕자님이 30대 피도 눈물도 없는 지옥의 불구덩이 한 복판에 떨어졌다. 변화는 새롭고 변신은 즐겁다. 영화 '아수라'(김성수 감독)에 '막둥이 악인'으로 합류한 주지훈(34)은 생애 첫 남자 영화에서 태어나 처음 보는 대선배들과 살 떨리는 호흡을 맞췄다. 애교 넘치는 막내 역할은 옵션이다.

데뷔작 드라마 '궁'에서 선보였던 캐릭터가 자신과 가장 잘 맞는다며 "아직 꽃미남 이미지를 버리지 않았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뻔뻔함은 여유롭다. 하지만 "먹고 살기 힘들다. 살아 남으려면 어쩔 수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그에게서 성장하는 30대 배우의 고뇌를 엿볼 수 있었다.

※인터뷰 ③에서 이어집니다.

 

-극중 정우성에 대한 의리가 남다르다. 실제로도 가능할까?

"힘든 정도가 어느 정도냐에 다라 다를 것 같다. 지금 내 친구들은 이제 결혼하고 애도 있다. 내가 지켜야 하는 것들이 많은 상황에서, 대한민국 청년들 연봉은 뻔한데 친구라도 쉽게 누군가를 도와주고 그러기 쉽지는 않을 것 같다. 그 어려운 것을 해줬을 때 아름다운 것 아닐까 싶다. 나 늙고 있나봐.

그리고 결혼한 입장에서 친구는 도와주려 해도 와이프 입장에서는 또 섭섭할 수 있다. '그 돈이면 내 새끼 옷 한벌 더 사주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을테지만 경우의 수라는 것이 굉장히 많지 않냐. 평소 말하는 것, 상상하는 것 이상의 노력과 행동이 있어야 겨우 지켜낼 수 있는 것이 의리인 것 같다."

-데뷔 초에는 잘생긴 꽃미남 이미지가 강했다. 지금은 상남자 분위기가 풍긴다.

"아닌데? 지금도 꽃미남 이미지 있다. 아직 버리지 않았다.(웃음) 둘 중 뭐가 맞는지에 대해 내가 말하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을 것 같다. 나를 봐주는 대중들의 몫인 것 같다. 내가 이렇게 원해도 결국 그들이 원하는대로 흘러가기 되니까. 다만 나이가 들면서 작품의 폭이 넓어지는 것은 좋다.

-앞으로 더 갖고 싶은 이미지가 있다면?

"불가능할 것 같은데 하얀 느낌. 난 태어날 때부터 까매서 하얀 사람들이 부럽다. 남자들은 까만 피부를 부럽다고 하는데 하얀 친구들은 태닝이라는 선택권이 있지 않나. 난 동남아를 가도 나보다 까만 사람이 별로 없다.

어렸을 때 게임에 미쳐 밖에 안 나가고 집에만 있었을땐 '너 좀 하얘졌다?'라는 말을 들었던 적도 있다. 근데 낮에 20분 저도 산책했더니 사람들이 다 '피서갔다 왔냐'고 했다. 내가 오토바이를 타는데 민소매를 입고 타도 전신이 똑같이 까매진다. 너무 신기하다. 그래서 딸을 낳게 되면 딸은 하얀 피부였으면 좋겠다."

 

-'아수라'를 촬영하면서 버킷리스트 몇 개를 한꺼번에 이룬 것 같다고 했다. 남은 버킷리스트에 적혀 있는 배우들은 누구인가.

"이건 말 할 수 없다. 혹시 까먹고 말 안 했다가 다음에 만나면 안 되니까. 그리고 지금 누군가를 말하면 '아수라' 형들이 삐친다.(웃음) 개인적으로는 동생들도 좋지만 형들이 좋다. 동생들이랑 하면 내가 챙겨줘야 하고 욕 할까봐 무섭다.

에피소드를 하나 털자면 지난해 부산에서 우성이 형과 정민이 형이 밥값 때문에 싸우는 것을 봤다. 서로 내겠다고 몸을 끌어 당기면서 '내가 내겠다, 아니 내가 내겠다' 하시더라. 나는 '와, 보기 좋다~'하면서 그냥 계속 먹었다. 아마 그 땐 결국 정민이 형이 냈을 것이다.

근데 따지고 보면 막상막하다. 무슨 스파이 작전을 펼치는 것처럼 몰래 밥값 내고 술값 내고 장난 아니다. 나는 내고 싶어도 낼 틈이 없다. 진짜다. 술잔이나 안주 모자란 것 챙기면서 수발 들기도 정신 없다. 그러다 보면 누군가 술값을 먼저 냈다. 참 아름다운 광경이다."

-친한 후배들은 누가 있나.

"그들도 나를 친하다 생각해 줄지는 모르겠지만 재욱이, 덕환이, 창욱이. 그리고 광수는 내가 예뻐하는데 광수가 나를 예뻐하지 않는다. 민호도 있다. 다들 너무 착하다. 그리고 너무 잘한다. 깜짝 깜짝 놀란다. 착하니까 안 예뻐할 수가 없지."

-여배우들과는 친분이 두텁지 않은 것 같다.

"일 할 때는 잘 챙긴다. 하지만 현실적인 불편함이 더 많다. 촬영이 다 끝나고 나서 연락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해도 곧잘 끊긴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웃음)"

 

-평소 주량은 어느 정도인가.

"형님들이 얼마나 무섭냐에 따라 달라진다. 무제한은 아니고 주량은 보통을 따지는 것이니까 마시고 내가 괜찮다 싶은 정도는 소주 한 두 병. 3일 정도 앓아 누울 때는 소주 5~6병 정도도 마실 수는 있다. 엄청 많이 최고치로 마셨을 때."

-지금까지 했던 작품 중 본인과 제일 잘 어울렸던 캐릭터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궁'? 하하하. '좋은 친구들'도 비슷하다. 영화 자체가 리얼톤으로 흘러가 일상적으로 친구들을 만나고 편한 사람들과 편하게 노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다. 근데 말하다 보니 말이 안 되는 대답인 것 같기는 하다. 리얼톤의 영화니까 당연히 나랑 제일 비슷하겠지."

-나이가 들면서 변화하는 부분이 있다면.

"자기 확신이 줄었다. 예전에는 그냥 있는 그대로 믿었는데 '나도 누군가에게 저러겠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니까 판단력이 좀 흐려진다. 나 도한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더 그런 것 같다. 그런다고 바뀌는 것도 없는데 인정하자니 바보같고.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 하루 하루 보내고 있다.

-차기작은 차태현 하정우와 함께 하는 '신과함께'다. 또 새로운 도전이 될텐데.

"지금 열심히 찍고 있는데 불과 3일 전에도 칼싸움을 하면서 정우형과 '난감하다. 이거 엄청 난감하다'는 이야기를 했다.(웃음) 정우 형도 정말 재미있는 분이다. 처음엔 머리 싸매고 고민했는데 '하다 보면 된다'는 형님들의 노하우를 전수받고 있다. 확실히 형들은 여유롭다. '아수라'에 이어 기분 좋은 고민 중이다."

조연경 기자 [e-mail]
사진= CJ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