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감독도 가끔 그럴 때가 있다. 김기태 KIA 감독도 면도를 안 할 때가 있다. 팀이 연승을 달릴 때다. 반대로 양 감독은 팀이 부진하거나, 중요한 시기라고 판단할 때 수염을 깎지 않는다. 포스트시즌 진출을 확정지은 3일 대구 삼성전을 앞두고도 양 감독의 입 주변은 거뭇거뭇했다.
지난달 30일 열린 잠실 SK전만 해도 양 감독의 얼굴은 비교적 깔끔했다. 이날 LG는 6이 SK에 3-5로 졌고, 다음날은 0-5로 완봉패했다. 그리고 양 감독은 면도를 하지 않았다. 남은 4경기에서 1승만 더하면 포스트시즌 진출이 가능했다. 하지만 긴장을 풀 수 없었다. 3일 경기 전 양 감독은 "일단 5위부터 확보한 뒤, 다음 단계에 대해 고민하겠다"고 신중하게 말했다.
3일 LG는 삼성을 10-3으로 대파하고 와일드카드 결정전 진출을 확정지었다. 최소 5위다. 5위 KIA와 1.5게임 차이도 유지했다. 1승만 더하면 와일드카드 결정전 어드밴티지를 쥔 4위가 확정된다. 방송 인터뷰를 마치고 더그아웃으로 돌아온 양 감독은 수염에 대해 "오늘 이기고 깎으려했다"며 엷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자랑스러워 했고, 선수들에게 공을 돌렸다. 양 감독은 "시즌 전 하위권으로 분류됐다. 선수들이 정말 잘 해준 덕분에 외부에서 받은 평가보다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다. 정말 대견스럽다"며 말했다. LG의 올시즌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리빌딩'. KBO리그는 메이저리그와는 달리 리빌딩이 쉬운 구조가 아니다. 비싼 선수와 유망주를 맞바꾸는 트레이드는 거의 일어나 본 적이 없다. 여기에 프랜차이스 스타의 이적과 출장 제한에 대해 팬들은 예민하다.
LG의 '리빌딩'이 장기적으로 얼마나 성과를 낼지는 아직 미지수다. 하지만 올해 포스트시즌 진출은 작심하고 리빌딩을 위해 기용한 선수들의 힘으로 가능했다. 3일 경기에서도 그랬다. 양석환과 문선재 그리고 이형종 등 '세대 교체' 주역들이 돋보이는 활약을 했다. 양 감독은 "2군에서 올라온 선수가 활약하면 선·후배들이 더 축하를 해 주는 게 보인다. 그렇게 팀이 더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지난 2월 오키나와 2차 스프링캠프에서 만난 양 감독은 쫓기지 않는 모습이다. 자리 보존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했다. 당시 "LG가 장기적으로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할 수 있도록 기틀을 마련하고 싶다"고 했다. 팀의 미래를 당장의 성적보다 우선했다. 방향 설정보다 더 어려운 건 한 시즌을 치르며 이를 뚝심있게 관철시키느냐이다.
개인적으로 아픈 경험도 있다. 2004년 롯데 감독으로 부임해 2년 동안 이대호, 강민호, 김주찬, 장원준 등 젊은 선수 위주로 팀 체질을 바꾸려 했다. 성적도 종전보다 나쁘지 않았지만, 포스트시즌 진출이라는 성과를 우선한 구단은 그를 해고했다. 단기 계약직 감독이 '팀의 미래'를 우선할 때 정작 자기자신에게는 손해가 될 수 있다는 역설이 발생한다.
양 감독은 4일 아침에 일어나 깨끗하게 면도를 했다. "시즌 중 리빌딩 방침에 대해 흔들린 적은 없었나"는 질문에 "왜 없었겠나"라고 말했다. 하지만 "구단이 내게 무엇을 원하는지가 명확했다. 그렇다면 계약 기간 안에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도 명확하다"고 덧붙엿다.
구단과 감독의 방향이 어떻든, 결국 야구는 선수가 한다. LG 선수들은 사령탑이 추구하고 밀어부친 방향으로 팀을 기대 이상으로 이끌었다. 1군 경력이 적은 타자들도 자신있게 스윙을 했고, 베테랑들은 격려를 했다. 롤모델이 될 만한 선배들도 있었다. 양 감독은 순위 싸움이 치열한 시즌 후반에도 무리한 기용을 하지 않고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줬다. 구단주 차원에서 격려도 있었지만, 그가 중심을 잡으려 한 힘은 선수들에 대한 존중과 고마움 아니었을까.
양 감독은 전날 포스트시즌 진출을 확정지은 뒤 "더 좋은 팀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다들 강하다. 나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