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여왕' 박세리(39·하나금융그룹)가 6000여 명의 팬과 갤러리가 운집한 가운데 정든 필드와 눈물로 작별했다.
그는 종일 눈물로 하루를 보냈다. 이미 그 눈물은 은퇴식을 하루 앞둔 12일 저녁 인천공항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2016 KEB하나은행 챔피언십 갈라 디너 패션쇼부터 흘러내렸다.
13일 인천 영종도 스카이72골프장에서 개막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KEB하나은행 챔피언십 1라운드. 티잉그라운드 주변에 갤러리들이 몰려들었다. 골프선수 박세리의 마지막 티샷을 보기 위해였다. 오전 10시35분 박세리가 등장했고 박수와 환호가 이어졌다.
박세리는 오전 9시쯤 대회장에 도착해 드라이빙 레인지에서 몸을 푼 뒤 연습그린에서 퍼트를 하며 마지막 라운드를 준비했다.
박세리는 경기에 앞서 소감을 묻자 "마지막 라운드를 앞두고 많은 생각이 나 잠을 설쳤다"면서 "18번홀을 마친 뒤 울지 않아야 하는데 걱정이 앞선다"고 태연하게 웃었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뿐이었다.
1번홀부터 눈물이 나왔고, 18번홀의 티샷을 마치고 그린으로 걸어올 때는 내내 울었다. 박세리는 이날 경기를 마치고 18번홀 그린에서 열린 은퇴식을 끝으로 지난 25년간의 골프 인생에 마침표를 찍었다.
은퇴식장은 눈물바다였다. 박세리는 본인은 물론이고 '영원한 스승'이자 아버지 박준철씨, 그리고 '세리 키즈'의 후배와 팬들까지 모두 눈시울을 붉혔다.
박세리는 경기를 마친 뒤 팬이었던 임시캐디와 먼저 포옹한 뒤 오랜 시간 아버지를 안고 눈물을 쏟았다. 가수 손승연이 '상록수'를 헌창하면서 LED 전광판에 '1998년 US여자오픈 당시 맨발의 해저드 샷 장면'이 나오자 박세리의 얼굴은 눈물범벅이 됐다.
그는 "오늘 아침 드라이빙레인지에서 연습을 하고 1번홀로 이동할 때까지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티잉 그라운드에 올라서니 느낌이 달랐다. '아, 오늘은 정말 다르구나.' 응원하는 팬들을 보면서 그때서야 느껴졌다"며 "마지막 18번홀에서는 티샷을 못할 정도로 감정이 북받쳤다. 이렇게 많은 감정이 들 줄 몰랐다"고 했다.
그는 이어 "우승을 했을 때보다 오늘 더 기뻤다. 이렇게 큰 축복을 받고 떠나게 돼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오늘은 정말 최고의 순간이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또 아버지에 대해 "긴 포옹을 하면서 아빠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잘 알 수 있었다. 아버지는 내 심장 같은 분이다. 말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내 마음과 똑같이 울고 계셨다"며 "덕분에 내가 이렇게 잘 성장했고, 친구이자 애인 같은 역할을 해 줬다"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은퇴식에는 첫날 경기를 마친 후배 동료 선수들을 비롯해 손가락 부상으로 시즌을 접은 박인비(28·KB금융그룹), 야구선수 출신 선동렬(53)과 박찬호(43) 등이 자리를 함께했다. 이미 은퇴한 뒤 내년 2월 둘째 출산을 앞둔 박지은(37)도 참석했다.
지난 7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열린 US여자오픈 이후 석 달 만에 클럽을 잡은 박세리는 1라운드에서 버디 1개와 보기 9개로 8오버파(80타)를 기록했다.
그의 마지막 18번홀에서 퍼팅은 파퍼트였다. 출전 선수 78명 가운데 최하위인 공동 76위로 경기를 마친 박세리는 기권했다.
그래도 팬들은 "나는 당신의 영원한 팬이에요"라고 응원했다. 팬들은 '사랑해요 Se Ri'라는 글귀가 적힌 빨간 수건을 흔들었다.
한편 재미 동포 앨리슨 리(21)가 7언더파로 단독 선두에 나섰다. 첫날 동반 라운드를 한 박성현(23·넵스)과 전인지(22·하이트)는 나란히 이븐파 공동 30위에 자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