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상문 LG 감독은 지난 12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준플레이오프(PO) 미디어데이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가 "입겠다"고 한 옷은 LG 가을 야구의 상징이 된 '유광 점퍼'다.
넥센과 LG의 준PO 1·2차전은 돔구장에서 열렸다. 고척돔 실내 온도는 유독 더웠던 올여름에도 섭씨 25도 정도로 쾌적하게 유지됐다. 습도도 조절된다. 굳이 점퍼를 입지 않아도 되지만 양 감독은 "LG에 유광 점퍼가 갖는 의미는 특별하다"고 했다. 대표 선수로 참가한 김용의와 임정우도 같은 생각을 전했다. 실제로 선수단은 대부분도 유광 점퍼를 착용했다.
팬들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LG의 포스트시즌 진출이 확정된 3일 대구 삼성전. 10월이었지만, 습도가 높았고 후덥지근한 날씨였다. 그럼에도 원정 응원 온 LG 팬 일부는 유광 점퍼를 꺼내 입었다. 2년 만인 가을 축제 참가를 자축했다. 보통명사인 '유광 점퍼'는 LG에선 고유명사나 다름없다. 팬과 선수단을 하나로 묶는 연결 고리기도 하다. 한국 프로스포츠에서 이렇게 많은 염원과 의지가 담긴 구단 상품은 LG의 유광 점퍼가 유일하다.
◇ 유광 점퍼, 언제 태어났나
현재 LG 선수들이 입고 있는 디자인의 유광 점퍼는 2006년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전까진 LG 선수들도 하이포라 원단으로 제작된 점퍼를 입었다. 몇몇 구단이 같은 재질을 사용한 봄, 가을용 점퍼를 입었다. LG그룹 차원에서 '고급화' 를 제시했다. 선수단의 품위와 컨디션 향상을 위해서였다. 당시 그룹 계열사이자 구단 스폰서였던 LG패션에서 전문 디자이너들을 투입했다. 구단 상징색인 검은색과 빨간색이 어우러진 역동적인 디자인이 그렇게 탄생됐다.
빛나는 '유광' 재질도 고민의 산물이었다. 당시 일본에서 유행하던 유광 섬유를 원단으로 활용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완제품 수입은 비용이 너무 많이 들었다. 국내 제작사인 ' 새시대스포츠'와 협력하기로 했다. 담당자였던 이종전새시대스포츠 전무는 "구단에서 선수들에게 좋은 옷을 입히려는 의지가 강했다. 원단뿐 아니라 부속품 섬유까지도 고급 재질을 쓰길 원했다"고 돌아봤다. 이후 적정 가격을 정하는 과정을 거쳤다. 제조 원가가 너무 비쌌고, 재고 관리가 어려웠지만, '빛나는 점퍼' 컨셉트는 유지했다. 이후 폴리에스테르 섬유에 폴리우레탄이라는 합성 비닐을 압착한 형태로 점퍼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원단이나 안감의 질에는 차이가 있었지만 '빛나는 점퍼'는 LG뿐 아니라 다른 구단에서도 유행을 탔다. 성적이 좋았던 현대 유니콘스의 유광 점퍼가 한때 더 많은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유행은 지난다. 다른 구단들은 기능성을 강조하며 노선을 갈아 탔다. 유광 점퍼가 지금 LG의 상징이 된 데는 이런 이유도 있다.
◇ 프렌차이즈 스타가 만든 '상징성'
유광 점퍼가 LG의 가을 야구 진출을 상징하게 된 건 불과 몇 해 전이다. 팀 프렌차이즈 스타 박용택이 2011시즌 개막을 앞두고 열린 미디어데이에서 "올해는 반드시 LG 팬들에게 유광 점퍼를 입게 해 드리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광 점퍼'는 영광과 환희가 아닌 아픈 기억, 슬픈 단어로 남았다.
LG는 2010년까지 8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2011년 역시 4강 전력으로 평가되지 않았다. 그해 LG는 59승2무72패를 기록하며 6위에 머물렀다. 박용택의 발언은 비웃음의 대상이 됐다. 이듬해는 7위에 그치며 간신히 최하위를 면했다. 선수단 사이에서 유광 점퍼는 ' 금기어' 로 통했다.
2013년, 비로소 LG 팬들이 자부심을 갖고 유광 점퍼를 입었다. LG 가을 야구 상징이 된 지 3시즌 만에 쾌거를 이뤘다. 유광 점퍼를 입은 팬들은 '10번 타자'가 돼 LG의 가을 야구를 지원했다. 이듬해인 2014년엔 전반기 승패 차이 '-16'에서 후반기 무서운 상승세로 4위에 올랐다. 다시 한 번 잠실벌을 유광 점퍼로 물들였다. 그리고 올 시즌 선수단과 혼연일체가 되려는 팬들의 염원이 2년 만에 이뤄졌다.
◇ 상품 다각화 추세에도 '독보적 존재감'
선수단이 입는 유광 점퍼를 팬들에게 판매하기 시작한 건 2010년부터다. 구단 관계자는 "선수단과 팬이 더욱 긴밀해지도록 팬 서비스 일환으로 (유광 점퍼) 판매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당시엔 팀 성적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상품 판매량와 비교해 두드러지지 않았다. 연간 400벌 정도 판매됐다. 2012년까지 이 정도 수준이 유지됐다.
2013년 봄에도 예년과 다르지 않았다. 구단은 시즌이 다가오는 봄에 1차 상품 발주를 한다. 추가 물량이 필요한 경우 8월 말에야 재발주를 한다. 하지만 LG가 시즌 중반이 지나서도 상위권을 유지하자 포스트시즌 진출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다. 여름부터 유광 점퍼를 찾는 팬들이 많아졌다. 구단은 '돈벌이' 를 목적으로 춘추복을 판매할 순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의류 주기에 맞춰 상품을 내놓았다. 팬들의 기다림이 조바심으로 바뀌었다. 오프라인 판매 첫날부터 '품귀 현상'을 예고했다. LG 상품 담당자는 "예년보다 3배 물량을 준비했는데 첫날 모두 소진됐다. 이후 온라인에서도 예상 수량의 20배가 넘는 주문이 들어왔다"고 전했다.
가격은 10만원 수준이다. 싸지 않다. 하지만 2013년, 유광 점퍼는 만 벌 이상 판매됐다. 상품 매출 비중이 5% 미만에서 14%까지 수직 상승했다. 포스트시즌 기간 동안 매출은 전체 상품 매출의 40% 수준에 이른다. 모든 구단이 상품 다각화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유니폼의 매출 비율은 점차 줄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LG는 유광 점퍼가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올 시즌 역시 5강 경쟁이 치열해질 무렵부터 판매량이 늘었다. 9월 중순 이미 2500벌이 판매됐다. 구단 관계자는 "올해는 전년 대비 30% 신장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특히 온라인 매출 비율이 높다. 일반 상품들은 40% 미만이다. 유광 점퍼는 60% 이상이다. 구단 상품 중 유일하게 온라인 매출 비중이 오프라인보다 높다고 한다. 소비자들은 매장에서 실제 상품을 보고 구매 의사를 결정한다. 그래서 오프라인 매출 비율이 높다. 유광 점퍼만이 다른 이유는, 이미 LG 팬이라면 한 벌 정도는 갖고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생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