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는 12일(한국시간) 영국 런던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스코틀랜드와 2018 러시아월드컵 유럽 예선 F조 조별리그 4차전을 치렀다.
잉글랜드는 다니엘 스터리지, 아담 랄라나(이상 리버풀), 개리 케이힐(첼시)의 연속골에 힘입어 3-0 완승을 거뒀다. 4경기 무패(승점 10·3승1무)의 잉글랜드는 슬로베니아(승점 8)를 제치고 조 1위를 달렸다.
하지만 잉글랜드 축구계는 웃지 못하고 있다. 국제축구연맹과 벌이고 있는 '양귀비 전쟁' 때문이다.
영국을 포함한 영연방 국가들은 매년 11월 11일을 붉은 양귀비꽃을 추모하는 '포피(Poppy·양귀비꽃) 데이'로 지낸다.
이날은 제1차 세계대전 휴전일인데 영연방 국가에선 전몰장병들을 추모하기 위해 양귀비꽃 배지를 옷에 단다. 잉글랜드 프로축구도 마찬가지다. 축구 선수들은 11일을 전후로 유니폼에 양귀비꽃 스티커를 새기거나 팔에 양귀비꽃이 그려진 검은 완장을 찬다. 포피 데이는 세계대전 당시 격전지였던 프랑스 북부 지역에 무수히 피어난 양귀비꽃을 보고 존 매크리어 캐나다군 대령이 쓴 시에서 비롯됐다.
그런데 영연방에 속하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하필 포피 데이에 맞대결을 펼친 것이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반대했다. FIFA 규정 4조에는 선수들의 착용하는 장비(유니폼 포함)에는 종교적, 정치적, 개인적 문구나 이미지를 담을 수 없도록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축구협회는 물러서지 않았다. FIFA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양국 선수들은 양귀비가 그려진 검은 완장을 차고 A매치를 치렀다. FIFA의 징계가 불가피해진 상황이다.
공교롭게도 이번 사건의 '키'는 영연방 소속의 웨일즈인이 쥐고 있다.
13일 영국 일간지 미러에 따르면 잉글랜드-스코틀랜드전에서 매치커미셔너를 맡았던 데이비드 그리피츠 웨일즈축구협회장이 'FIFA에 어떻게 보고하느냐'에 따라 징계 수위가 정해진다. 이 매체는 "그리피츠 회장의 결정에 따라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벌금형, 최악의 경우 승점 삭감 징계까지 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웨일즈 선수들은 같은 날 웨일즈의 카디프 스타디움에서 열린 세르비아전에서 양귀비꽃 엠블럼이 그려진 완장 대신 검은 완장을 차고 나왔다. 웨일즈축구협회가 FIFA의 규정 4조를 따랐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크리스 콜만 웨일즈 감독은 자국 축구협회의 결정에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다.
하지만 FIFA가 모든 정치적 이슈에 징계를 내리진 않는다.
2014년 일본이 군국주의의 상징인 욱일승천기를 형상화한 유니폼을 발표해 한국을 비롯해 중국 등의 축구협회가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난 3월 아일랜드 대표팀도 마찬가지다. 당시 스위스와 평가전을 치른 아일랜드는 1916년 부활절 봉기를 추모하기 위해 유니폼에 숫자 '1916'를 그려넣었지만 문제가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