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매치에는 각 팀당 3장의 교체카드가 주어진다. 경기가 흘러가는 양상을 보고, 또 선수들의 컨디션과 분위기를 보고 얼마나 적절한 시간에 적절한 선수를 투입하는가는 감독이 가져야 할 중요한 역량과 덕목 중 하나다. 물론 교체카드를 따로 고민할 필요 없이 선발로 압도해버리면 보는 쪽도 마음이 편하고 뛰는 쪽도 행복하겠지만 공은 둥글고, 그런 압도적인 경기가 나오기는 쉽지 않다. 특히 월드컵 최종예선처럼 비슷한 팀들이 비슷한 절박함을 가지고 치르는 경기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교체카드는 참 중요하다. 1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A조 5차전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의 경기에서도 교체카드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절감했다. 이날 경기서 한국은 이정협(울산 현대) 원톱에 손흥민(토트넘)-남태희(레퀴야)-구자철-지동원(이상 아우크스부르크)로 꾸려진 호화로운 공격 진영을 구축했다. 기성용(스완지 시티)이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에서 때로는 공격 진영까지 올라오며 부단히 뛰어다녔고, 포백에는 박주호(도르트문트) 김기희(상하이 선화) 장현수(광저우 푸리) 김창수(전북 현대)가 섰다. 골키퍼 장갑은 김승규(빗셀 고베)가 꼈다.
선발 명단을 보고 많은 이들은 '닥공'을 예상했다. 4-1-4-1이라는 형태나 공격 2선의 무게감을 생각하면 전반에 골이 터질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하지만 감독이 바뀐 뒤 처음 만난 우즈베키스탄의 수비는 생각 이상으로 촘촘하고 견고했고, 한국 공격진은 좀처럼 상대 박스 안쪽에서 번뜩임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종종 올라가는 크로스도 어딘지 미흡했고 세트피스에서도 우위를 잡지 못해 공세 속에서도 이렇다 할 득점 기회가 만들어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러던 차에 수비 실수로 선제골을 내줬으니 조바심이 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후반 시작 후에도 무게추가 옮겨오는 기색이 없자 슈틸리케 감독은 교체카드를 꺼내들었다. 전반 17분, 지동원 대신 이재성(전북 현대)이 그라운드를 밟았고 3분 뒤에는 이정협이 나오고 그 자리를 김신욱(전북 현대)이 메웠다. 그리고 두 장의 교체카드가 끌려가던 흐름을 바꾸는 기회가 됐다.
가벼운 부상으로 캐나다전에서 휴식을 취한 이재성은 시원한 몸놀림으로 우즈베키스탄 수비들 사이를 파고 들었다. 김신욱은 투입되자마자 골문 앞을 지키고 서서 상대 수비수들의 시선을 자신에게 묶어 놨다. 아시아 무대에서도 유명한 장신의 김신욱이다. 김신욱이 들어간 지 1분 만에 맞은 기회, 박주호가 골문 앞으로 공을 올려주자 우즈베키스탄 수비들은 더 타이트하게 그에게 붙어섰다. 공은 상대 수비수의 머리를 스치며 각도가 살짝 솟았고, 골문 앞을 지키던 수비수들의 시선도 날아오는 공과 함께 김신욱을 향했다. 그 사이를 놓치지 않고 남태희는 머리를 밀어넣어 헤딩으로 동점골을 뽑아냈다. 기가 막히게 좋은 박주호의 크로스와 상대 수비를 분산시키는 김신욱의 존재감, 그리고 남태희의 타이밍이 어우러진 골이었다. 그리고 그 골의 기점에는 이재성의 패스가 있었다.
결국 경기는 후반 종료 직전 터진 구자철의 역전골로 한국이 2-1 역전승을 거두며 끝났다. 그리고 역전승을 만든 그 분위기는 교체로 투입된 이재성과 김신욱, 두 장의 카드로 바뀌었다. 잘 쓴 교체카드가 경기를 바꾼 좋은 예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처음부터 그들이 선발로 나왔다면 어땠을까가 궁금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역사가 그렇듯이, 끝나버린 축구에도 만약이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