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아섭은 지난해 부상과 아버지의 작고, 그리고 메이저리그 도전 실패를 겪었다. 올 시즌 전엔 옆구리 부상으로 인해 전지 훈련 합류도 늦었다. 우려의 시선이 컸다. 하지만 보란 듯이 재도약했다. 타율 0.323·81타점·118득점·42도루를 기록했다.
하지만 늘 그렇듯 손아섭은 만족을 모른다. 오히려 "한계를 확인한 시즌이다"고 했다.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고, 긴 기간 타격 슬럼프에 빠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리그 전반적으로 타자들의 기량이 향상되는 속에 자신은 제자리걸음을 했다고 봤다.
손아섭은 내년 시즌 이전과 다른 야구를 보여줄 전망이다. 스스로 "그동안 단순했다"고 규정했다. '내 것'만 고수하던 고집을 버리고 많은 이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있다. 손아섭은 "올 겨울 해야할 게 정말 많다"며 다부진 각오를 드러냈다.
- 올 시즌 가장 아쉬운 점은.
"당연히 포스트시즌에 나가지 못한 것이다. 좋은 투수들이 팀에 합류했고, 겨우내 동료 모두가 준비를 많이 했다. 팀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바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프로는 결과가 모든 걸 말해준다. 변명할 수가 없다. 그저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크다. 롯데팬들에게도 송구하다."
- 개인 성적은 좋았다. 득점과 도루는 리그 2위, 최다 안타는 4위에 올랐다.
"기록만 좋았다. 전반기엔 아쉬움이 크다. 특히 5, 6월 부진에서 많은 교훈을 얻었다. 슬럼프는 누구에게나 온다. 나도 매년 최소 세 번은 겪는다. 중요한 건 기간이다. 빨리 벗어나서 정상 궤도에 올라야한다. 지난해까지는 잘 이겨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잘해야 한다'는 압박이 컸다. 당연히 오는 슬럼프를 받아들이지 못해 당황했고 조바심을 냈다."
- 장종훈 타격 코치는 장타력 증가에 대한 압박이 커보인다고 했다.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장타를 생산할 수 있으면 팀이 보다 쉽게 득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욕심을 낸 게 사실이다. 타격 밸런스도 함께 무너졌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콘택트까지 안 좋은 영향을 미쳤다."
- 4, 5월 2달 동안 타율 0.267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후 70경기에서 0.358를 기록했다. 어떻게 극복했나.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부분을 잊고 있었다. 감독, 타격 코치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며 잊고 있던 부분을 회복하는 데 주력했다. '남은 시즌은 처음으로 돌아가서 재시작하자'고 마음을 먹었다. 강점 강화에 매진했다. 이전엔 심리 관리를 위해 좋은 문구나 책을 가까이 뒀다. 잘 안 풀릴 때는 그조차도 잊었다. 늦었지만 조금씩 찾아보기 시작하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 어깨와 손목이 안 좋은데도 개인 최다 도루 기록을 세웠다.
"선수라면 몸이 안 좋아도 막상 경기에 나가면 부상을 염려할 겨를이 없다. 몸 걱정은 안 했다. 올 시즌 도루가 크게 늘어난 건 최만호 주루 코치님 덕분이다. 감사 인사를 하고 싶다. 이전에는 그저 주력만 믿고 뛰었다. 하지만 코치님이 투수의 습관이나 변화구 던지는 타이밍을 분석하는 데 도움을 주셨다. 생각을 하고 뛰었다고 할까. 확률이 높은 상황을 노렸다(손아섭은 도루성공률 91%를 기록했다. 20개 이상 기록한 선수 중 가장 높다).
- 한화 김태균과 함께 전경기 선발 출장한 리그 유이한 선수다. 지난 2시즌은 부상에 시달렸다.
"개인적으로 가장 큰 의미를 부여하는 기록이다. 지난 2년 동안은 팀에 미안하고 내 자신에게 화가났다. 이제 부상과 체력 관리는 물론 144경기를 치르면서 어떤 훈련 루틴을 설정해야 하는지 배웠다. 트레이닝 관리 파트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 어느 해보다 많은 대화를 나눴다."
- 유독 배움이 많던 시즌 같다.
"이전까지 내 야구는 단순했다. 타석에 들어가면 '공보고 공치기', 주자로 나가면 그저 뛸 생각만 했고, 수비를 할 때는 잡으면 던졌다. 하지만 생각하는 법을 배웠다. 경험이 쌓이다 보니 내 플레이에 대해 한 템포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 같다."
- 야구는 '단순하게 생각해야 잘한다'는 속설도 있다. 오히려 혼란이 오진 않을까.
"그 말은 나도 알고 있다.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보다는 단순해지는 게 더 낫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내 말은, 이전보다 세밀하고 신중한 야구를 할 수 있게 됐다는 의미다. 각 파트 코치님들과 많은 얘기를 나눴기 때문에 가능했다."
- 팀 동료 황재균이 다시 한 번 메이저리그 도전을 하고 있다.
"황재균 선배는 꿈을 이루기 위해 그 누구보다 많은 준비와 노력을 해왔다. 옆에서 지켜봤기 때문에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길 바란다.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응원 메시지도 보낸다. 잘 될 것이다."
- 지난 두 시즌엔 '최고 우익수'라는 평가는 받기 힘들었다.
"나는 아직 타격왕에 오른 적이 없다. MVP를 수상한 적도 없다. 팀을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지도 못했다. 나는 탑 클래스 선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더 큰 문제는 정체돼 있다는 것이다. 해마다 좋은 타자들이 나온다. 정상급 기량을 갖춘 기존 타자들도 계속 발전했다. 나는 그동안 '내 것'만 고집하다가 성장하지 못했다. 올 시즌 유독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 손아섭은 근성의 아이콘 아닌가. 극복 계획이 있을 것 같다.
"그동안 시행착오를 돌아보고, 손아섭이라는 야구 선수에게 가장 적합한 야구를 정립하는 데 겨울을 투자하겠다. 올 시즌처럼 시즌 중간에 변화를 주지 않고 개막 전에 해내겠다. 숙제가 많다. 그리고 팀과 함께 모두의 바람을 향해 나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