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천추의 한을 드디어 풀었다. 이룰 것은 사실상 다 이뤘다. 남은 것은 '꽃길' 밖에 없다.
이병헌이 데뷔 25년, 7번째 도전 끝에 37회 청룡영화제 남우주연상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2001년 22회 청룡영화제에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를 통해 남우주연상 후보로 첫 노미네이트 된 것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15년 만에 이룬 쾌거다.
"청룡영화제에서 상을 받는다는 것이 이런 기분이군요" 이병헌의 한 마디에는 그가 배우로서 살아 온 25년의 감정이 모두 녹아 있었다. 험난한 연예계라 하지만 그 속에서도 여러모로 참 독보적인 캐릭터다.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인생을 산 이병헌이다. 연기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운 이병헌이고, 찍으면 대표작이라는 말을 듣는 이병헌이지만 선배들의 그림자는 짙었다. '번지점프를 하다' 외 '중독', '달콤한 인생',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 '악마를 보았다'(31회), '광해, 왕이 된 남자'로 후보에 올랐지만 경합을 펼친 선배들은 더 대단했다.
2001년 '파이란' 최민식, 2002년 '공공의 적' 설경구, 2005년 '너는 내 운명' 황정민, 2008년 '추격자' 김윤석, 2010년 '이끼' 정재영, 2012년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최민식까지 선배들의 남우주연상 수상 모습을 그저 지켜보기만 해야 했던 시간이다.
그런 그에게 '내부자들'은 인생의 전환기를 맞게 해 준 작품이라 봐도 무방하다. 재기가 불가능하다 여겨질 정도로 힘들었던 인생 최악의 시기, 이병헌은 묵묵히 촬영장 한 컨에서 인생 연기를 펼치고 있었고 본업으로, 연기력으로, 단 한 편의 영화로 보란듯이 가장 높은 자리에 다시 섰다.
2017년 이병헌의 행보는 더욱 거침없다. 당장 다가오는 12월 강동원 김우빈과 의기투합한 '마스터'가 개봉을 앞두고 있고, 공효진과 '싱글라이더' 촬영도 일찌감치 마쳤다. 또 최근에는 김윤석 박해일 박희순 고수 등이 대거 출옇나는 차기작 '남한산성' 촬영에 돌입했다. 소속사 측에 따르면 해외 작품도 끊임없이 검토 중이다.
이병헌은 수상 소감으로 "모두가 한 마음이 돼 절망적인 마음으로 촛불을 들고 있는 것을 봤다. 근데 왠지 나는 아이러니하게 그 장면을 보면서 언젠가는 저 모습이 희망의 촛불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됐다"는 말을 남겼다.
또 "25년 동안 준비하고 생각했던 소감이 굉장히 많은데 앞으로 조금씩 조금씩 쓸 수 있도록 열심히 해서 자주 이 무대에 오르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는 경험을 이병헌은 이미 맛 봤다. 그리고 배우로서 최선을 다 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청룡영화상 트로피는 무려 25년 만에 1개를 채웠지만 소처럼 일하는 행보를 보면 당장 다음해 또 받을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