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내 눈앞에 나타나. 왜 네가 자꾸 나타나…. 무적 LG 박용택! 무적 LG 박용택!"
사상 최대 150만 인파가 몰린 지난 26일 광화문 촛불 집회. 광화문으로 향하는 인파 속에서 난데없이 야구 응원가가 울려퍼졌다. 10개 구단 유니폼과 모자를 착용한 수십명의 야구 팬들은 쉬지 않고 응원가를 불렀다. 촛불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은 신나는 응원가 메들리에 어깨를 들썩였다. 따라 부르는 사람이 늘었고, 휴대전화 카메라에 응원 장면을 담는 사람도 있었다.
프로야구 10개 구단 팬들이 자발적으로 한자리에 모여 합동 촛불 집회를 열었다. 야구 팬 합동 촛불 집회는 임용수 SKYsports 캐스터의 제안에서 시작됐다. 임용수 캐스터는 지난 19일 자신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주말(26일) 촛불 집회에 함께 하실 분이 있으면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유니폼 혹은 점퍼·모자를 착용하고 시청역에서 만납시다. 야구 팬 모두가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고 밝혔다. 반응은 뜨거웠다. 그의 게시물에는 "함께 하겠다"는 댓글이 줄지어 달렸다.
약속한 시간이 다가오자 야구 팬들이 하나 둘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유니폼을 입고, 깃발을 들고 집회에 참석한 야구 팬은 약 60여 명에 달했다. 임용수 캐스터는 "귀한 시간을 내줘서 감사하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야구 팬들은 두산·LG·넥센·KIA 깃발을 선봉에 세우고, 시청역에서 광화문 광장까지 행진을 했다. 선수 응원가를 쉬지 않고 부르며 흥을 돋웠다. 기존 응원 가사를 재치있게 개사해 청와대를 향한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임용수 캐스터는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모이면 큰 힘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며 "많은 야구 팬이 함께 해주셨다. 이렇게 많이 오실 줄 예상하지 못했다. 혼자보다 둘의 힘이 강하고, 둘 보다 셋이 더 강하다. 우리의 마음과 목소리가 조금이나마 힘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 집회는 축제의 장이 되고 있다. 야구라는 공통 분모로 함께 즐기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결실을 볼 때까지 매주 토요일 집회에 참석할 예정이다. SNS 메시지로 응원을 보내주신 야구 팬들께도 감사드린다"고 덧붙였다.
초등학생 아들 강민형(10) 군과 함께 집회에 참석한 두산 팬 강희태(42) 씨는 "아들이 '비시즌에 응원가를 부를 수 있어서 즐거웠다'고 하더라. 좋은 추억을 만들었다"며 "아이에게 평화롭고 즐기는 집회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전달할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다음 주에도 집회에 참석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세월호 참사 이후 아이와 함께 야구장에 가고 광화문에 가는 것 자체가 기적 같다. 그럴 기회가 없는 단원고 아이들의 부모님께 미안하다. 아이들이 잠잘 때 숨 쉬고 있음에 감사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