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진해운 법정관리에 이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휩싸인 한진그룹이 또 다시 악재를 맞았다. 이번에는 자녀 회사에 일감을 몰아줬다는 혐의로 당국에 덜미가 잡혔다. 특히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장남인 조원태 대한항공 부사장이 고발당했다. 조 회장이 '최순실 게이트'로 검찰에 불려 다니는 상황에서 장남까지 검찰 조사를 받게 됐다.
재주는 대한항공, 돈은 세 남매가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대한항공이 계열사인 싸이버스카이와 유니컨버스에 부당한 이익을 제공한 행위를 적발했다고 27일 밝혔다. 이에 공정위는 과징금 총 14억3000만원과 대한항공 법인 및 조 부사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싸이버스카이는 대한항공 기내에서 상품 판매와 연관된 사업을 하는 회사다. 지난 2007년 12월부터 조현아·원태·현민 세 남매가 각각 싸이버스카이의 지분을 33.3%씩 나눠 가졌다. 하지만 공정위가 일감 몰아주기와 관련한 조사를 시작하자 작년 11월 대한항공에 지분을 전량 넘겼다.
세 남매는 2009년부터 대한항공이 이익을 몰아주기 시작하면서 수익을 챙겨갔다. 그 동안의 배당과 매매차익을 더하면 세 남매는 총 100억원에 가까운 수익을 챙겼을 것으로 추산된다.
대한항공은 내부 거래 과정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싸이버스카이에 부당한 경제적 이익을 제공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항공은 싸이버스카이 인터넷 웹사이트 화면에 배치되는 인터넷 광고를 자신들이 만들면서도 광고 수익을 전부 싸이버스카이가 가져가도록 했다. 대한항공은 기내면세품 공급업체들에게 지속적으로 인터넷 광고를 게재하도록 요청하고 있을 때, 싸이버스카이가 한 일은 웹페이지 상품 이미지 교체·광고료 정산 업무 등 단순 업무에 불과했다.
대한항공은 또 계약상 지급받기로 한 통신판매수수료를 이유 없이 면제하는 등의 방식으로 싸이버스카이와 조원태·현아 남매가 부당 이익을 얻도록 도왔다. 싸이버스카이를 통해 판촉물을 구매해 오던 중 2013년 5월부터 합리적 이유 없이 싸이버스카이의 판촉물 거래 마진율을 3배 가까이 올려 주기도 했다.
대한항공은 조 회장 일가가 100%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유니컨버스에도 부당한 경제상 이익을 준 것으로 드러났다.
유니컨버스는 조 회장이 5.5%, 조원태가 38.9%, 조현아·현민이 각각 27.8%씩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로, 조 부사장은 당시 유니컨버스의 대표를 겸했다.
일감 몰아주기로 총수 일가가 챙긴 배당과 매매차익은 약 220억원으로 추정된다.
대한항공은 지난 2009년 콜센터 경험이 전무한 유니컨버스에게 콜센터 운영 업무를 맡겼다. 그러면서 콜센터 시스템 구축에 들어가는 시설사용료와 유지보수비는 한푼도 받지 않았다.
공정위는 부당 이득을 제공한 대한항공에 7억15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문제가 될 것을 알면서도 이익을 받아온 싸이버스카이와 유니컨버스에 각각 1억300만원·6억1200만원을 부과했다.
조양호에 이어 아들도 검찰행
최근 악재가 겹치고 있는 한진그룹에게 조 부사장의 검찰 고발은 또 다른 악재이다.
조 부사장은 공정거래법상 총수일가 사익편취 금지 규정을 위반한 혐의로 고발됐다. 이 규정에 따르면 부당한 이익을 제공한 회사 뿐만 아니라 제공받은 회사도 제재 대상이다. 법원에서 위반했다고 판단할 경우 조 부사장은 3년 이하의 징역이나 2억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된다.
한진그룹은 '최순실 게이트'와 한진해운 법정관리 등으로 조 회장이 어려운 상황에 처한 가운데 장남인 조 부사장까지 자칫 법적인 처벌을 받을 수 있는 위기 상황을 맞았다.
조 회장은 다른 대기업과 달리 '최순실 게이트'의 피해자라는 견해가 있다. 문제가 되고 있는 미르재단에 다른 대기업보다 상대적으로 약소한 총 10억원을 출연해 최순실씨에게 밉보여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검찰이 대기업의 뇌물죄 여부를 집중 조사하고 있어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더구나 내달 5일부터 '최순실 게이트' 1차 청문회가 시작되고 조 회장 뿐 아니라 대기업 총수들이 줄줄이 증인으로 나설 예정이다.
법정관리를 밟고 있는 한진해운은 주가가 700원대로 폭락했으며 일부에서는 상장 폐지도 거론되고 있다.
애초에 조현아 전 부사장도 공정위의 검찰 고발 대상으로 거론됐지만 경영 일선에서 손을 놨다는 이유로 명단에서 빠졌다. 공정위는 "조현아 전 부사장은 2014년 말 대한항공 부사장직을 사임해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한진그룹 측은 이번 공정위 조치에 대해 "공정위 의결서가 공식 접수되면 법적 절차를 거쳐 소명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