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도 공범이다." 최근 '최순실 게이트'에 분노한 시민들이 촛불집회에서 '박근혜 퇴진'과 함께 외치는 구호이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시민들은 박근혜 대통령 뿐 아니라 최순실 일가에 돈을 퍼준 대기업에 대해서도 분노를 쏟아내고 있다. 6일 '공범'으로 지목되고 있는 대기업의 총수들이 최순실 국정농단 진상규명을 위한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한다. 총수 9명이 같은 날 청문회에 나오는 것은 역사상 처음이어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따라 엄청난 파장이 예상되는 이날 국정조사에서 총수들은 과연 동정표를 받을 수 있을까. 아니면 분노의 촛불을 횃불로 바꿀까. 회사의 명운이 총수들에게 걸렸다.
이재용 부회장에 집중 포화 예상
9명의 총수 중 집중 추궁 대상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다. 최씨 일가에 지원금이 가장 많고 쟁점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삼성은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204억원을 비롯해 최순실 일가에 따로 지원한 94억원 등을 포함해 총 298억원을 퍼주고,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국민연금이 찬성하도록 최씨 측을 통해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당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비율은 1:0.35로 삼성물산 주식을 10% 이상 보유하고 있던 국민연금에는 불리한 합병이었다. 하지만 당시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던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표를 던지면서 합병은 가결됐다.
이와 관련해 이 부회장은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위원들의 질문 공세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또 최씨의 딸 정유라씨에 대한 승마 지원도 다뤄질 전망이다. 검찰에 따르면 삼성은 지난해 9~10월 최씨 모녀가 소유한 비덱스포츠와 35억원의 지원 계약을 맺고 추가로 43억원을 지원했다.
삼성 측은 "합병과 관련해서는 객관적인 자료를 토대로 의혹을 풀 것"이라며 "최씨의 강압에 의한 부분은 솔직하게 인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SK·CJ 총수 사면 대가성 드러날까
현대차그룹은 최씨 측근인 차은택씨의 광고회사 플레이그라운드에 13억원 상당의 광고 일감을 주고 최씨 지인이 소유한 KD코퍼레이션으로부터 11억원 상당의 물품을 받은 혐의에 대해 조사를 받을 예정이다. 현대차 측은 청와대의 외압에 의해 이 같은 선택을 했다는 입장을 취할 것으로 보인다.
SK와 CJ는 최씨 측에 지원한 대가로 총수의 사면을 요구했는지 추궁당할 것으로 보인다.
SK는 미르·K스포츠재단에 낸 111억원이 최태원 회장의 특별사면을 대가로 지급한 것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
CJ도 두 재단에 출연한 13억원과 차은택씨가 주도한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의 핵심인 K-컬처밸리 사업에 투자한 1조4000억원이 이재현 회장 특사를 위한 것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
CJ는 지난 4월 손경식 회장이 박 대통령과 독대하면서 당시 구속 상태였던 이재현 회장에 대한 선처를 부탁한 정황이 나오기도 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지난해 국정감사에 이어 올해는 국정조사까지 출석하면서 벌써 두 번이나 국회에 오게 됐다.
신 회장은 면세점 추가 선정과 관련해 청와대에 요청을 했는지 추궁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또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70억원을 반환받은 경위에 대해서 질문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총수들 예행 연습까지
대기업들은 그야말로 초비상이다. 국정조사가 이뤄질 국회 본관을 찾아 현장을 살피고 총수와 함께 예행 연습까지 했다.
삼성은 미래전략실 소속 법무와 대관 업무 부서를 중심으로 비상대응팀을 꾸리고 수시로 대책 회의를 열었다. 최근에는 가상 청문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현대차와 CJ는 고령인 총수의 건강을 특별히 신경쓰고 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올해로 79세로 청문회에 참석하는 총수 중 가장 고령이다. 손경식 CJ 회장도 77세로 고령인데다 최근에는 폐 수술까지 한 상태다.
재계 관계자는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청문회를 총수들이 무리없이 잘 마칠 수 있을지 걱정된다"며 "최씨의 압박을 받은 부분은 인정하고 오해가 있는 사안은 해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총수들이 직접 대통령을 만났기 때문에 모른다고만 말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위원들이 총수들을 창피주려고 하지 말고 국정조사 취지에 맞는 질문을 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