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끌어모으는 재주 하나는 탁월하다. 말 한마디 하지 않고 가만히만 있어도 시선이 쏠리는 비주얼도 모자라 입담까지 청산유수가 따로 없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좋은 외모에 좋은 정신, 바른 외모에 바른 정신'이라는 표현은 역시 정우성에게 딱이다.
20대, 외모로 연예계를 평정한 정우성은 30대를 넘어 불혹의 나이 변하지 않은 비주얼에 조금 더 깊어진 마음가짐을 추가하면서 현재의 정우성을 완성했다.
몇 년째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 활동하면서 때론 눈물을 흘릴 만큼 여린 감성의 소유자이기도 하지만, 밀어부칠 땐 밀어부치고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땐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은 채 털어놓는 강단도 있다. 쉽게 표현하면 '뭐 하나 모자람이 없다'는 소리다.
그런 정우성이 시국으로 인해 주목받는 스타 중 한 명이 될 것이라고는 단군이래 최고 게이트가 터지기 전까지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지난달 초 런던한국영화제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사실을 처음 접하고 "제가요?"라고 되물으면서도 "신경쓰지 마세요. 자유롭게 표현하며 살아야죠"라는 촌철살인 현답을 내놨던 그는, 이후 더욱 어지러워지는 시국에 말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절대 놓치지 않고 할 말을 다 쏟아내는 모습으로 때마다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 과정에서 영화 '아수라(김성수 감독)' 속 대사 "박성배 나와"가 "박근혜 나와"라는 명대사로 탈바꿈 됐고, 부산에서 트로피를 손에 꼭 쥔 그 순간에도 작정한 듯 시국발언을 서슴지 않아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이자 영향력을 끼치는 스타로서 정체성을 확고히 했다.
정우성은 "'공심'을 잊고 '사심'으로 사익을 채우겠다는 사람이 권력 안에 있으면 굉장히 추악해지고 그걸 감추기 위해 계속해서 거짓말을 한다. 주모자가 아닌 공모자라도 어느 순간 자기도 모르게 돌아갈 수 없는, 주모자 만큼의 악행을 하는 자기를 발견하게 된다"며 "지도자, 국가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국민의 문제 의식을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일련의 상황을 지켜보고 겪으며 스스로를 되돌아 보기도 한 정우성은 "캐릭터와 영화를 통해 내가 문제의식을 고민했던 것이 언제였나라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다시 한번 하게 됐다"며 "'비트' '태양은 없다' 끝난 후 사회 제도권이 청춘에게 강요하는 교육 제도 등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졌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스타가 됐고 안정적인 상업 영화를 추구하면서 그런 문제의식들이 자연스럽게 제 안에서 소멸되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시국이 이러하다 보니 문제 의식에 대한 갈증이 있어서 그런 것들을 다룬 작품들이 몇년 사이 튀어나오는 것 같다. 나 스스로도 고민했던 일이다"며 "요즘 청춘이 열정이 없다고들 하는데 기성세대가 그렇게 길들였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인데 배우로서, 영화인으로서 선배가 할 수 있는 사회의식을 계속 제시하겠다"고 진심을 표하기도 했다.
뭘 하든 완벽한 정우성이지만 '배우' 정우성에게 굳이 부족한 점을 꼽자면 흥행에 대한 아쉬움이다. 모두가 성공할 것이라 예견했던 '아수라'마저 실패하면서 존재 자체가 상업적인 정우성은 상업영화로 흥행의 맛을 본지 꽤 됐다. 또 연기상 수상 역시 12년~13년 만의 일이라고 하니 이젠 개인의 갈망도 이룰 때가 됐다.
정우성은 "12년~13년 만에 상을 받게 됐는데 수상 소식 듣고 '왜 갑자기 내게 상을 주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또 '너는 왜 이제야 상을 받게 됐니' 하는 생각도 스스로 했다"며 "연기를 하면서 어느순간 나도 모르게 관습적인 주인공의 모습을 기대했던 것 같다. '아수라'는 내 연기 열정을 되돌린 값진 작품이다. '아수라'와 함께 남우주연상 받으니 신인연기상을 받은 기분이다"고 전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정우성이 내년 초 선보일 신작 '더 킹(한재림 감독)'은 세상의 왕이 되고 싶어하는 무소불위 권력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정우성은 세상을 쥐고 흔드는 역대급 악역으로 지난 20년간 쌓은 필모그래피에 전혀 다른 신선함을 더할 전망.
게이트에 연루된 주요 인물들을 롤모델로 삼은 것처럼 전혀 다를 바 없는 캐릭터인 만큼 실제 정우성과 영화 속 캐릭터의 갭이 의도치 않은 재미도 선사할 것으로 보인다. '아수라'로 찾은 열정과 흥행에 대한 아쉬움을 '더 킹'으로 꽃피울 것이라 확신한다.
'더 킹'은 오는 15일 제작보고회를 통해 첫 선을 보인다. 정우성·조인성·배성우·류준열 등 주요 출연진들이 자리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곧 시국에 대한 이야기가 될 수 밖에 없다. 지금껏 그리고 앞으로도 쭉 멋있을 정우성이 이 날은 또 얼마나 멋질지, 얼마나 멋진 이야기를 언급할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