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사회를 뿌리부터 뒤흔들고 있는 국정농단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뒤에는 결국 권력자들의 '갑질'이 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믿고 자신보다 약한 이들을 제멋대로 휘둘러온 '갑질의 역사'가 쌓이고 쌓여 거대한 고름 덩어리가 됐다. 뒤늦게 발견하고 고름을 짜내려니 어디서부터 손대야할 지 막막해 우왕좌왕하고 있다. 조금 더 일찍 '갑질'에 시달려온 약자들의 통곡에 귀를 기울였다면 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스포츠계 역시 예외는 아니다.
'최순실 게이트'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다시 주목 받고 있는 사건 중 하나가 바로 포스코 배드민턴단의 해체다. 포스코가 자사 계열사를 통해 창단한 배드민턴 여자 실업팀을 불과 2년 만에 '팽'해 논란이 된 사건이다.
포스코가 배드민턴 실업팀인 '포스코특수강 배드민턴단'을 창단한 건 2014년 2월의 일이다. 삼성전기 선수·트레이너 출신인 박용제 감독을 사령탑으로 창원시청 소속 여자선수 5명이 유니폼을 입고 이 팀에서 뛰었다. 하지만 창단 1년 만인 이듬해 2월 포스코특수강이 세아그룹으로 매각되면서 사정이 급변했다. 자연스레 배드민턴팀의 소속도 '세아창원특수강 배드민턴팀'으로 바뀌었다.
당시 포스코는 배드민턴팀을 함께 넘기면서 "1년간 팀을 맡아주면 포스코 계열사로 다시 인수하겠다"고 약속했고, '회장님들 간의 약속이니 걱정 말라'고 보증했다. 그러나 1년 뒤 말이 바뀌었다. 포스코는 배드민턴팀을 인수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돌아갈 곳을 잃은 배드민턴팀은 지난 3월 15일 해체된 뒤 세아창원특수강과 경남체육회의 배려 속에서 버티다가 지난 7월 1일자로 공중 분해됐다. 실업급여를 받으며 포스코의 재인수를 기다렸으나 묵묵부답이었고, 인수하겠다고 나서는 다른 기업도 없었기 때문이다.
선수단의 호소와 대한배드민턴협회의 설득 및 언론의 비판에도 포스코는 움직이지 않았고, 선수단은 졸지에 길바닥에 나앉게 됐다.
같은 해 에쓰오일 탁구단과 삼성중공업 럭비팀이 모기업의 경영난을 이유로 갑작스럽게 해체한 뒤라 파장은 더욱 컸다. 스포츠계는 포스코 배드민턴단의 해체를 두고 대기업의 '갑질' 횡포라며 분노를 금치 못했다.
배드민턴팀을 둘러싼 갑질은 이후에도 이어졌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번에는 포스코가 '갑질'의 희생자가 됐다. 멀쩡한 배드민턴팀을 해체시킨 포스코는 '최순실 게이트'의 중심에 있는 더블루K로부터 배드민턴팀 창단을 요구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K스포츠재단의 자회사격인 더블루K는 지난 2월에서 3월께 포스코 대외담당 황은연 사장을 찾아와 배드민턴팀 창단을 요구했으며, 이 과정에서 거액의 창단비를 요구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포스코는 어려운 경영 여건 등을 이유로 배드민턴팀 창단 제안을 거절했지만, 연이은 요구에 결국 펜싱팀을 대신 창단하기로 했다는 내용이다. 힘없는 배드민턴팀을 '갑질'로 해체시킨 포스코가 또 다른 '갑질'에 철퇴를 맞은 꼴이 됐다.
그러나 결국 이처럼 꼬리에 꼬리를 무는 '갑질'에 멍드는 이는 힘없는 '을'이다. 자신의 위치와 권력을 앞세워 불공정과 희생을 강요하는 '갑'들이 남아있는 한 우리 사회나 스포츠계 모두를 좀먹는 갑질 역시 끝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