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도 하고 싶고 여행도 가고 싶지만 미룰 겁니다. 2017년은 오직 축구에만 미칠 거예요."
한국 축구의 기대주 백승호(19·바르셀로나B)의 새해 목표다. 가보고 싶고, 해보고 싶은 게 많은 나이인 그가 새해 벽두부터 비장한 각오를 밝힌 이유는 오는 5월 한국에서 개막하는 2017 20세 이하(U-20) 월드컵 때문이다. 신태용(47) 감독이 이끄는 한국 대표팀은 안방에서 우승 트로피에 도전한다. 백승호는 조국에서 열리는 월드컵에서 지금까지 갈고 닦은 실력을 펼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태극마크를 달고 U-20 월드컵에서 뛰는 게 꿈입니다. 전 세계에 '이런 선수가 있다'고 알릴 거예요!"
백승호는 망설임없이 말했다. 그는 바르셀로나가 자랑하는 '라 마시아(La Masia·스페인어로 농장이란 뜻이며 바르셀로나 유소년시스템의 별칭)' 출신이다. 2009년 차범근 축구대상을 받은 백승호는 바르셀로나 유소년팀 스카우트의 눈에 띄어 2010년 2월 바르셀로나 13세 이하(U-13) 유소년팀(인판틸)에 입단했다. 현재는 바르셀로나B(2군)의 미드필더로 활약 중이다. 2015년 7월, 18세의 나이로 바르셀로나B 승격을 이룬 백승호는 2018년 6월까지 3년 프로계약을 맺었다. 입단 후 1년 마다 상위 유스팀으로 올라서며 이룬 '고속승격'이다. '축구 천재'로 불리는 이승우(19)도 백승호보다는 한 단계 낮은 바르셀로나 후베닐A(유소년 최상위 단계) 소속이다.
B팀은 바르셀로나 '스타의 산실'이다. '축구의 신' 리오넬 메시(30)를 비롯해 안드레스 이니에스타(33), 사비 에르난데스(37) 등 바르셀로나를 빛낸 수많은 스타 플레이어가 바로 B팀을 거쳐 1부 리그에 데뷔했다.
백승호의 신년 첫 과제는 신 감독의 눈도장을 받는 것이다. 그는 대한축구협회가 5일 발표한 U-20 대표팀 포르투갈 전지훈련 25인 명단에 포함됐다. 신 감독은 오는 16일부터 3주간 열리는 이번 전지훈련을 통해 옥석가리기를 할 전망이다. 백승호는 부담보다 기대감을 보였다.
"간절한 마음으로 전지훈련과 월드컵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꼭 대표팀에 필요한 선수가 되려고 노력 중이에요. 지금까지 열심히 준비한 것들을 그라운드에서 펼치고 싶어요."
본지는 지난해 11월 4일 인천의 한 음식점에서 백승호를 처음 만난 뒤 4일 전화로 한 차례 더 인터뷰했다.
유럽축구 최고의 라이벌전인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엘 클라시코(El Clasico·전통의 경기란 뜻)'를 하루 앞둔 지난달 2일(한국시간)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홈구장인 캄프 누.
한 동양 소년이 공을 잡자 리오넬 메시(30), 루이스 수아레스(30) 등 슈퍼스타들이 패스를 하라며 '팩'을 외쳤다. 잠시 주위를 둘러보던 소년은 공을 뺏으려던 네이마르(25)를 피해 동료들에게 볼을 돌렸다. 소년의 이름은 백승호.
바르셀로나는 엘 클라시코 최종훈련 중 일부를 전 세계에 생중계 한다. 세계 최고의 기량을 자랑하는 현역 1군 선수들의 모습을 팬서비스 차원에서 공개하는 동시에 바르셀로나의 미래를 선보이는 자리인 것이다. 이날 최종훈련에 참가한 바르셀로나B(총22명) 선수는 백승호와 보르하 로페즈(22)뿐이었다. 레알 마드리드의 최종훈련에는 세계 축구의 '레전드'이자 현 감독인 지네딘 지단(45)의 아들 엔조 지단(22)과 15세의 나이로 노르웨이 국가대표에 발탁된 '축구 신동' 마르틴 외데가르드(19·이상 레알 마드리드 2군)가 참가했다.
-바르셀로나 1군 승격이 코 앞이다. "그렇다. 1군 데뷔까진 이제 딱 한 단계만 남은 셈이다. 바르셀로나의 연령대별 유스팀을 거쳐서 2군까지 올라왔고 1군 훈련까지 참가했다. 바르셀로나는 내가 가장 오래 머무른 팀이자 고향과 같은 곳이다. 이 곳에서 프로에 데뷔하는 목표를 갖는 건 당연하다."
-새해 목표는 메시와 1군 무대를 누비는 것인가. "바르셀로나B에서 뛰는 선수라면 누구나 메시와 함께 뛰는 순간을 그린다. 하지만 현재 1군 합류 시기를 두고 서두르고 싶은 마음은 없다. 조급해하지 않고 차근차근 한 단계씩 밟아나가고 싶다. 지금 당장은 소속팀 바르셀로나B의 2016~2017시즌 정규리그 우승도 올해 반드시 이루고 싶다는 생각이 더 크다. 개인적으로는 출전 경기를 늘려야 한다."
-지난달 엘 클라시코 최종훈련에서 슈퍼스타들과 뛰어 본 소감은. "이전에 참가한 1군 훈련과는 공기부터 달랐다. 수많은 취재진이 몰리면서 긴장감이 남달랐다. 최대한 많이 배우자는 생각으로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봤다. 볼 터치부터 다르다. 반면 경험이 많은 1군 선수들은 큰 시합을 앞두고 여유롭게 경기를 준비하는 것 같았다.(웃음)"
-루이스 엔리케 바르셀로나 감독이나 메시가 조언도 해줬나. "엔리케 감독님은 다정다감한 편이다. 항상 먼저 다가오셔서 '이번 주 B팀에서는 어땠나'라고 물어보신다. 또 '너무 조바심 내지 말고 차분하게 배워나가자'는 말도 해 주셨다. 반면 메시는 '아우라'가 있다. 늘 수아레스, 네이마르 1군 핵심 선수들과 함께 있어서 어린 선수들이 말을 걸기 쉽지 않다. 그러다가도 '승호, 잘 하고 있어. 1군에서 꼭 같이 뛰자'고 한마디 툭 던져주는 데 별 것 아니지만 정말 큰 힘이 된다.(웃음)"
-운동할 때 독하다는 소리를 듣는 편인가. "지금은 키가 182cm 정도지만 바르셀로나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148cm로 무척 작은 편이었다. 뭐랄까. 세계 최고의 팀에서 훈련한다는 긍지 때문인지 또래와 몸싸움에서 밀리면 너무 분했다. 몸을 키우기 위해 안 해본 게 없다. 우유라면 닥치는대로 마셨고, 밥도 일부러 더 많이 먹었다. 축구를 잘 하기 위해서는 하루에 4회로 나눠 지칠 때까지 연습하기도 했다. 이 정도면 독한 편 아닌가."
-쉴 때는 뭐하나. "장난이 많은 편인데 스페인에서는 주로 '코미디 빅리그' 같은 한국 예능프로를 보며 스트레스를 푼다. 외국에 살고 있어서 그런지, '나 혼자 산다'도 재밌고요.(웃음)"
-롤모델은. "기성용, 손흥민, 황희찬 등 대표팀 형들을 보며 꿈을 키운다. 한 살 많은 희찬이 형은 벌써 대표팀에서도 뛴어 동기부여가 된다. 희찬이 형이 '너도 빨리 대표팀 오라'고 했다. 외국 선수는 아스널(잉글랜드)에서 뛰는 메수트 외질이다. 외질처럼 골도 넣고 패스도 잘하고 싶다. 물론 메시가 들으면 서운할 것 같다.(웃음)"
-주목을 받는 만큼 악플도 많다. "한국 축구팬들께서 많은 관심을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내 기사든 댓글이든 모두 읽는 편이다. 악플도 그 나름대로 자극이 된다. 예전에는 상처받았지만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가장 좋아하는 말은. "'열정'이다. 그래서 축구를 할 때도 열정을 다한다. 패스를 하나 해도 모든 것을 담으려 한다. 새해에도 열정을 다해 달릴 것이다. 2017년을 나의 해로 만들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