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선배 감독들에 비하면 지도자 생활 경력이 그리 긴 것은 아니다. 그래도 코치 시절부터 감독이 된 지금까지 15년 가까운 세월 동안 이런 일은 또 처음 겪는다.
"전지훈련 왔다가 식중독이라니, 이런 일이 일어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조진호(44) 부산 아이파크 감독은 이렇게 얘기하며 허망한 웃음을 지었다.
K리그 클래식 복귀를 위해 비시즌 담금질에 돌입한 부산은 1차 전지훈련지인 전남 순천에서 뜻밖의 홍역을 치렀다. 지난 11일 밤 몇몇 선수들이 감기 증상을 보이며 설사와 구토, 복통을 호소했다. 다음날에도 선수들의 증상이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결국 숙소 인근의 병원을 찾아 검진을 받았다. 진단 결과는 '식중독 의심' 소견이었다. 전지훈련에 참가한 선수단 38명 중 20여 명이 식중독으로 앓아눕게 된 셈이다. 전지훈련을 시작한 지 채 일주일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다.
부산으로서는 그저 황당할 수밖에 없다. 일단 구단 측은 이번 집단 식중독의 원인을 숙소에서 제공된 생굴·육회 등 날 음식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식중독이 일어난 날 저녁, 선수단이 머물고 있는 호텔에서 내놓은 식사 메뉴 중에 이들 날것이 문제가 됐다는 얘기다.
조 감독은 15일 본지와 통화에서 "지난 6일 숙소에 와서 지금까지 줄곧 숙소에서만 식사를 했고, 지난 11일 전에도 굴이나 육회가 자주 나와서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 예상을 못했다"며 "선수들 모두 맛있게 먹었는 데 운이 안좋게 맞아떨어지려니 이렇게 된 것 같다. 잘 먹고 멀쩡하던 선수들이 갑자기 식중독에 걸렸으니 황당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혀를 찼다.
이미 일은 벌어졌으니 어쩔 수 없다 해도 하루가 아쉬운 조 감독 입장에서 안타까운 건 사실이다. 클래식 승격의 막중한 임무를 안고 부임한 조 감독은 이번 1차 전지훈련에서 체력과 조직력을 다지는 데 중점을 두고 훈련을 실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식중독 사태가 벌어지면서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식중독에 걸리지 않은 일부 선수들을 중심으로 체력 훈련을 실시하긴 했지만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선수들은 참가하지 못했다. 증상이 심한 선수들은 이틀 이상 휴식을 취하고도 좀처럼 컨디션을 되찾지 못했고, 15일이 돼서야 겨우 가벼운 트레이닝을 소화했다.
지난 12일 예정돼 있던 광주 FC와 연습 경기도 취소됐다.
조 감독은 "클래식 팀들과 연습 경기를 치르고 하면서 조직력을 다지고자 했는데 아쉬운 기회가 무위로 돌아갔다"고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다고 마냥 낙담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그는 "비시즌에 이런 일이 생겨서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시즌 중에 원정을 갔다가 이런 일이 발생했다고 생각하면 끔찍하지 않은가"라고 애써 태연했다.
부산은 클래식 승격 도전이라는 중요한 목표를 갖고 올 시즌에 임하고 있다. 이 때문인지 조 감독은 "새해 초에 '한 번 거하게 (식중독으로) 액땜했다'고 생각하겠다"며 긍정적인 태도를 잃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