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외국인 선수 WAR(대체선수대비승리기여)이 가장 높았던 팀은 두산(14.31) 다음으로 NC(13.85), 넥센(11.47), KIA(10.61), LG(9.68) 순이었다. 이 다섯 팀은 모두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다. 좋은 선수를 뽑는 건 중요하다. '건강한' 선수를 뽑는 건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래서 프로야구 구단들이 외국인 선수 계약 전에 반드시 실시하는 게 있다. 메디컬 테스트다.
◇ 이렇게 진행된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야구 규약 외국인 선수 고용 규정 제 6장 선수의 의무(의학적 상태에 대한 검사)에는 이렇게 명시돼 있다. "구단은 계약 전에 구단이 지정하는 병원에서 신체검사를 요구할 수 있으며 신체검사 후 신체적 또는 정신적 결함이 발견시 계약을 무효화할 수 있다". 메디컬 테스트를 실시하는 제도적 근거다.
외국인 선수뿐 아니라 국내 FA(프리에이전트)나 신인들도 메디컬 테스트를 거친다. 기존 소속 선수들도 시즌 뒤 종합검진과 함께 MRI(자기공명영상) 촬영 등을 진행한다. 일반인들의 종합검진과는 달리 메디컬 테스트는 운동선수가 부상 없이 한 시즌을 뛸 수 있는 최적의 몸 상태 여부를 확인한다는 게 목적이다.
통상 X-ray 및 MRI 활영이 이뤄진다. 투수는 어깨와 팔, 타자는 허리나 무릎, 발목 등의 부위를 중점적으로 체크한다. 가령 팔꿈치를 굽혔다 폈다, 수술 병력이 있으면 좀 더 정밀한 검진이 이뤄진다.
외국인 선수의 경우 메디컬 테스트는 통상 미국에서 이뤄진다. 야구 이해도가 높은 의료진과 의료 장비가 갖춰진 전문 의료 기관에서 실시한다. 대표적인 곳이 팔꿈치 인대접합수술(토미존 서저리)을 처음 시행한 LA의 조브클리닉이다. 정민태, 배영수, 한기주 등이 이곳에서 토미존 서저리 수술을 받았다. 중남미 선수들의 경우 카리브해와 가까운 마이애미대학 의대 병원을 선호하기도 한다.
A구단 관계자는 "의료진이 선수 포지션과 부상 경력을 직접 물어 체크한다. 오른손 투수라면 오른 어깨와 팔꿈치를 좀 더 집중적으로 본다. 팔의 움직임과 근력 테스트도 육안으로 확인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선수가 얼굴을 찡그리면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다 눈치챈다"고 귀띔했다. 한 국내 스포츠 전문 의사는 "통증에 대한 자가 진단을 할 때 '아프다'고 솔직히 말하는 선수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의료진의 권유로 정밀 검진이 실시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3~4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검진 결과는 빠르면 당일, 늦어도 다음 날이면 나온다.
검사비는 경우에 따라 다르다. 부상 이력이 잦은 선수에게 검사비가 비싼 MRI 촬영을 몇 차례 하면 비용은 껑충 뛴다. 미국은 전 세계에서 의료비가 가장 비싼 곳이다. 다만 국내 테스트에 비해 항공료가 적게 드는 이점도 있다. 대체로 총액 500만원을 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구단은 메디컬 테스트 뒤 구단 트레이너와 최종 상의한다.
◇ 메디컬 탈락 사례는?
메디컬 테스트의 결과에 따라 계약 협상이 중단되거나 금액 규모가 떨어지곤 한다.
삼성이 2012년 영입한 미치 탈보트는 그해 14승3패 평균자책점 3.97을 기록했다. 1998년 스콧 베이커(15승) 이후 역대 구단 다승 2위였다. 그러나 통합 우승을 차지한 삼성은 탈보트와 재계약을 보류했다. 탈보트가 시즌 도중 한 차례 팔꿈치 통증을 호소한 터라 류중일 당시 감독이 '메디컬 테스트를 정밀하게 해 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실제 조브클리닉 검진 결과 이상이 발견됐다. 한 관계자는 "당시 의사가 탈보트를 보면서 약간의 표정 변화를 감지했다.
이후 선수가 진료실을 나간 뒤에 탈보트의 몸값을 물어보더니 '인대 50%가 나갔다'고 했다. 공 1개에 끊어질 수도 있다며 재계약을 만류했다"고 털어놨다. 삼성은 대신 릭 밴덴헐크(현 소프트뱅크)를 뽑았다.
이 관계자는 "실제 탈보트가 2013년 한 차례 수술을 받은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탈보트는 2013년 트리플A와 루키리그에서 총 16과 3분의 2 이닝을 던지는 데 그쳤고 2014년엔 미국 독립리그와 대만리그에서 41이닝만 던졌다.
B구단 관계자는 "2014년 지방 구단에서 뛴 우완 투수는 메디컬 테스트 단계에서 어깨 문제가 발생했다. 그래서 논 개런티 계약을 맺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결국 이 선수는 시즌 도중 부진으로 방출됐다.
◇ 메디컬 테스트의 다른 사례
선수가 보내오는 MRI 영상과 이학적 검사 소견서로 메디컬 테스트를 대체하는 케이스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 선수나 에이전트가 검사 결과를 조작할 위험성이 있다. 선호하지 않는 방법이다.
올해 삼성은 외국인 선수 세 명을 모두 교체했다. 메디컬 테스트는 모두 국내에서 진행됐다. 앤서니 레나도와 재크 페트릭(이상 투수)은 이미 받았다. 마우로 고메즈(타자)는 개인 사정으로 전지훈련 출발 전 진행할 계획이다. 삼성이 외국인 선수 메디컬 테스트를 국내에서 진행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외국인 선수 5명 중 4명이 부상으로 신음해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넌다'는 심정으로 시스템을 바꿨다. 삼성 관계자는 "위험 요소를 확실하게 짚고 계약을 완료하려 했다. 해외에서 메디컬 테스트를 해서 한 단계 거쳐 듣는 것과 국내 의사에게 직접 듣는 건 아무래도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계약서 사인도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진행했다.
구단 지정 병원인 서주미르 영상의학과의 지성우 원장은 "MRI 촬영을 비롯한 정밀 검사를 하고 구단 트레이닝 파트에서 정밀 검사와 이학적 검사 소견을 종합해 선수 상태를 평가한다"고 말했다. 선수 계약 전 선수에 대한 상태 평가를 구단이 국내에서 직접 진행함에 따라 선수들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
반면 NC는 12월 말 영입한 야수 재비어 스크럭스의 메디컬 테스트를 아직 하지 않았다. 당시 스크럭스가 신혼여행 중이어서 메디컬 테스트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 '선 계약 발표 후 메디컬 테스트'라는 선택을 했다. 1월 중 외국인 선수 영입 담당자가 미국으로 건너가 관련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NC 관계자는 "1월 메디컬 테스트에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 계약을 파기할 수 있다는 조항을 계약서에 넣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