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월드베이스볼 클래식(WBC)은 미국이 개최한 '다른 나라 잔치'였다. 1회, 2회 대회는 일본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가장 최근이었던 2013년, 세 번째 잔치의 주인공은 미국의 사촌과 같은 도미니카 공화국이었다. 미국은 2013년 도미니카에 3-1로 패한 바 있다.
미국의 앞길을 막았던 도미니카 공화국은 올해 다시 세계 최고의 자리를 넘보고 있다. 미국 다음으로 가장 많은 메이저리거를 배출한 나라답게, 도미니카 공화국 대표팀의 선수 명단에는 현역 A급 메이저리거들의 이름이 즐비하다.
▶ 투수
이전과 마찬가지로 토니 페냐(현 뉴욕 양키스 코치)가 감독을 맡은 대표팀의 마운드는 카를로스 마르티네스, 알렉스 레예스(이상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델린 베탄시스(뉴욕 양키스) 등이 지킨다. 숫자는 적지만 메이저리그에서도 엘리트 수준의 정예요원들이다.
마르티네스와 레예스는 '돌부처' 오승환의 팀 동료다. '씨마트(C-Mart)'라는 별명을 가진 마르티네스는 세인트루이스의 에이스. 선발 투수임에도 평균 시속 96.8마일(155.8km)의 빠른 공을 던진다. 마르티네스는 지난해 195.1이닝을 소화하며 16승 9패와 3.04의 평균자책점을 기록, 선배들을 제치고 확고한 팀의 1선발로 거듭났다.
알렉스 레예스는 시속 160km 강속구를 던지는 무서운 신예다. 올해 데뷔한 레예스는 오승환에게 투구법 조언을 구한 것으로도 알려져, 한국 팬들에게도 친숙하다. 올해 선발로 5경기, 구원으로 7경기를 나선 레예스의 보직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현지에서는 선발로 전망하는 의견들이 보인다.
델린 베탄시스는 양키스에서 '쿠바산 미사일' 아롤디스 채프먼의 앞을 맡는 특급 구원 투수. 최고 시속 160km의 강속구와 현역 최고 수준의 너클커브가 일품이다. 지난해 채프먼과 앤드류 밀러(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이적으로 잠시 양키스의 마무리 자리를 맡기도 했다. 구원 투수로서 기록한 2.9의 WAR(대체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는 구원 투수 중 전체 3위였다.
이 밖에 알렉스 콜로메(탬파베이 레이스), 쥬리스 파밀리아(뉴욕 메츠) 등이 예비 엔트리에 이름을 올려 참가 여부를 저울질하고 있다. 두 선수 모두 팀에서 마무리 투수를 맡고 있다. 아직은 확실한 선발 투수가 마르티네스 1명뿐이라는 것이 도미니카 대표팀의 가장 큰 고민거리다.
▶ 내야진 - 최강 신구조화
'최강 도미니카'의 이름은 타자 엔트리에서 빛난다. 참가 확정된 선수들의 이름만 봐도 상대 투수가 두려움을 느낄 정도다. 내야, 외야 가릴 것 없이 올스타 수준의 선수들이 가득하다. 2루수와 3루수 자리는 명예의 전당이 확실시되는 두 명의 살아있는 전설, 로빈슨 카노(시애틀 매리너스)와 애드리안 벨트레(텍사스 레인저스)가 낙점될 것으로 전망된다. 카노는 2015년 성적 하락을 겪었으나 지난해 0.298의 타율과 39홈런 107타점을 기록하며 완벽하게 부활했다. 어느덧 만 38세를 앞둔 벨트레 역시 지난해 3년 만에 30홈런 고지를 정복하며 회춘했다.
유격수 자리에는 37홈런을 때려낸 매니 마차도(볼티모어 오리올스)가 기다리고 있다. 마차도는 설명이 필요 없는 볼티모어의 간판스타. 팀에서는 3루수를 맡고 있지만, 지난해에는 유격수를 보기도 했다. 마이너리그에서 원래 유격수 수업을 받았던 만큼 수비에는 문제가 없다. 마차도의 뒤에는 4회 올스타 선정에 빛나는 호세 레예스(뉴욕 메츠)가 있다.
1루수로는 핸리 라미레스(보스턴 레드삭스)가 전망된다. 라미레스는 유격수, 좌익수에서 1루수로 전향하며 수비 부담을 크게 줄였다. 덕분에 19홈런과 0.717의 OPS에 그쳤던 성적을 지난해 30홈런과 0.866의 OPS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1루 수비 실력이 바닥을 친다는 점이 불안 요소지만, 겉으로 보이는 실책 숫자는 4개로 적은 편이었다.
한편 포수 자리에서는 53경기에서 20홈런을 친 신인왕 2위 개리 산체스(뉴욕 양키스), 얼마 전 볼티모어로 이적한 베테랑 웰링턴 카스티요가 경쟁한다. 내야의 다른 네 자리보다는 이름값이 떨어지지만, 산체스의 실력은 작년 후반기 모든 메이저리그 관계자들을 경악하게 했다. 마이너리그에서 이미 산체스의 잠재력은 크게 명성을 떨친 바 있다. 기대해봐도 좋을 것이다.
▶ 외야진 - 크루즈 미사일과 젊은 '해적'
외야진의 면면도 화려하다. '크루즈 미사일' 넬슨 크루즈(시애틀 매리너스)를 중심으로, 피츠버그의 외야에 떠오른 두 명의 신형 엔진 그레고리 폴랑코와 스탈링 마르테가 함께 한다. 이대호와 1년을 함께한 크루즈는 자타가 공인하는 메이저리그 최고 강타자 중 한 명.
2014년 볼티모어에서 40홈런, 2015년과 2016년 시애틀에서 44홈런-43홈런을 치며 3년 연속 40홈런 이상을 기록했다. 볼티모어의 홈구장 캠든 야즈는 대표적인 타자 친화 구장이지만, 시애틀의 홈구장 세이프코 필드는 투수 친화 구장으로 유명하다. 더 넓은 구장에서 만 36세의 나이로 40홈런을 친 힘은 상대 투수에게 공포 그 자체다.
마르테와 폴랑코는 피츠버그의 '해적 선장' 앤드류 매커친의 좌우를 보좌하고 있다. 마르테는 47도루를 기록한 빠른 발이 강점이다. 홈런 개수는 9개로 적지만 빠른 발과 3할 타율을 기록한 정교함으로 승부하는 스타일. 반면 폴랑코는 22홈런 17도루를 기록한 호타준족 스타일이다. 팀 내 유망주 1위에 꼽힐 정도로 대단한 잠재력을 지녔지만, 아직 과거 기대에는 조금 못 미치고 있다. 대선배들이 함께하는 WBC가 각성의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 강점과 약점 - 강력한 타선과 수비, 마운드 높이는 글쎄
도미니카 대표팀의 야수진은 WBC에 참가하는 16개국 중 최고 수준이다. 크루즈, 카노, 마차도, 벨트레 등 홈런 타자가 즐비한 타선의 파괴력은 견줄 데가 없다. 수비면에서도 물샐 틈이 거의 없다. 내외야에 이름을 올린 선수들이 받은 골드글러브 개수를 합하면 11개나 된다.
야수진과 비교해 두터움이 덜한 마운드는 상대적 약점으로 꼽힌다. 알렉스 레예스를 선발 투수로 본다면 카를로스 마르티네스와 함께 원투 펀치 조합을 구상할 수 있다. 그러나 구원 투수진의 두께는 얇은 편이다. 지난해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에서는 단기전 구원 투수 활용의 중요성이 강조됐다. 지난 대회에서도 도미니카는 상대적으로 약한 투수진을 데리고도 우승했다. 하지만 쓸 수 있는 카드는 많을수록 좋다. 아쉽게도 참가가 확정된 구원 투수는 델린 베탄시스 1명뿐이다.
다행히 뉴욕 메츠의 마무리 쥬리스 파밀리아, 탬파베이 레이스의 마무리 알렉스 콜로메가 적극적으로 대표팀 합류를 원하고 있다. 두 선수는 작년 발표된 도미니카 대표팀 예비 엔트리에 이름을 올린 바 있다. 파밀리아는 현재 모국 도미니카의 겨울 리그에서 선수로 뛰며 컨디션을 조율하고 있다. 지난해 51세이브를 기록한 파밀리아, 37세이브를 주워 담은 콜로메의 합류는 도미니카 대표팀에게 천군만마와도 같다.
C조에 속한 도미니카 공화국은 3월 9일(미국 동부 시각) 캐나다 대표팀과의 조별 예선 첫 경기를 시작으로 미국, 콜롬비아와 8강 진출을 다툰다. 지금까지 알려진 대로라면 C조 안에서는 미국과 함께 가장 강력한 선수단을 보유하고 있다. 단기전의 결과는 항상 알 수 없다지만 8강 진출이 가장 유력하다.
박기태(야구공작소) 야구 콘텐트, 리서치, 담론을 나누러 모인 사람들. 야구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공유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