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8일(한국시간) '반(反)이민'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전 세계가 혼란과 분노에 빠졌다. 테러 위험국으로 지정한 중동 및 아프리카 7개국 국민의 미국 비자 발급과 입국을 일시적으로 금지한다는 내용의 행정명령이 하루아침에 발효되면서 각국 공항은 그야말로 혼돈 상태다. 수백여 명이 미국 공항에 억류되고 외국 공항에서는 비행기 탑승을 취소하는 사람들이 급격히 늘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29일 보도를 통해 "행정명령이 발효된지 첫 23시간 동안 미국에 도착한 뒤 입국하지 못하고 억류 상태에 있는 사람, 출발지나 환승지에서 미국행 비행기 탑승을 거부당한 사람이 375명이다. 이 중에는 미국 영주권자도 포함돼 있다"고 보도했다. 행정명령이 발효되기 직전 미국행 비행기에 탑승한 승객조차 미국 땅에 내리자마자 억류자 신세가 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입국 금지 국가로 지정된 7개 국가 정부는 미국에 대한 격렬한 항의와 분노를 쏟아 내고 있지만 트럼프 정부는 강경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에 "유럽 전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봐라. 세계가 정말 끔찍하리만치 엉망진창이다. 지금 당장 우리나라는 강력한 국경과 극단적 심사가 필요하다"며 행정명령을 취소할 뜻이 없음을 밝혔다. 켈리엔 콘웨이 미국 백악관 선임 고문 역시 이번 행정명령에 따른 비자 발급 중단과 난민 억류 등의 사태에 대해 "안보를 위해 치러야 할 작은 대가"라고 주장해 반이민 행정명령으로 인한 폭풍은 당분간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행정명령은 국제·정치적 영역뿐 아니라 스포츠계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당장 NBA가 골치 아픈 사태에 직면했다.
2016 NBA 드래프트 10순위로 밀워키 벅스의 유니폼을 입은 쏜 메이커(20), LA 레이커스의 포워드 루올 뎅(32)이 수단 태생의 이중국적자기 때문이다. 또한 NBA 드래프트 지명을 위해 미국 각지의 고등학교, 대학교에서 유학 중인 수단 국적의 어린 선수들도 위기를 맞게 됐다.
특히 밀워키의 경우 캐나다팀인 토론토 랩터스와 같은 동부 콘퍼런스에 묶여 있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토론토 원정 경기를 위해 캐나다로 출국할 경우 경기가 끝나고 복귀할 때 메이커의 재입국이 거부당할 우려가 있어서다. 다행히 메이커는 지난달 27일 열린 정규 리그 마지막 원정 경기(3차전)를 마치고 간발의 차로 미국으로 돌아왔지만, 만약 밀워키가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을 때 토론토와 맞붙게 된다면 메이커의 출국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
WSJ도 "수단 난민 출신인 메이커는 행정명령이 발효되기 직전인 지난달 27일 밤 캐나다에서 아슬아슬하게 미국에 입국할 수 있었던데 반해 클리블랜드 병원에서 레지던트로 일하는 수단 출신 수하 아부샤마는 지난달 28일 오전 뉴욕 JFK 국제공항에 도착했지만 입국 금지 조치로 출발국인 사우디아라비아로 추방당했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밀워키 구단은 NBA 사무국에 행정명령의 소급 범위에 대해 문의를 넣었고, 사무국은 이민국에 확인을 요청한 상황이다.
문제는 트럼프 행정부도 이번 행정명령의 기준에 대해 오락가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토안보부는 이날 "영주권자도 입국 금지 대상"이라고 밝혔으나 다음 날인 1월 29일 라인스 프리버스 백악관 비서실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영주권자는 대상이 아니다"라고 주장했고, 국무부는 "이중국적 외국인도 금지 대상"이라고 얘기해 서로 해석이 엇갈리는 모습이다.
또 다른 문제는 반이민 행정명령이 시작에 불과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백악관 고위 관계자는 지난달 27일 CNN을 통해 "7개 국가는 단지 '시작점'에 불과하며 앞으로 더 많은 국가가 트럼프의 반이민 행정명령 국가로 지정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했다. 현재 반이민 행정명령 해당 국가는 이라크와 이란, 소말리아, 수단, 시리아, 리비아, 예멘 7개국이지만 앞으로 더 많은 국가가 '미국 입국 금지' 처분을 당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중국적 흑인 선수의 비율이 압도적인 NBA에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가장 먼저 직격타를 맞은 건 NBA지만 다른 종목 역시 이번 행정명령에 곤혹을 치르고 있다.
레슬링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미국 레슬링대표팀은 다음 달 8일 이란에서 열리는 월드컵 대회에 참가할 예정이었지만 이란이 미국의 입국 금지 조치에 반발해 미국인의 이란 입국도 제한하기로 결정하면서 출전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또한 오는 5월 뉴욕, 6월 로스앤젤레스(LA)에서 열리는 레슬링 대회에 이란 선수단을 초청하려던 미국 측의 계획도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축구에서는 더 다급한 상황도 발생하고 있다. 이란 축구 프로리그에서 뛰고 있는 미국 선수들이 현재 두바이에서 오도 가도 못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