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설 연휴 지상파 3사에서 쏟아 낸 파일럿 프로그램만 10여 개. 모두가 '제2의 마리텔' '제2의 복면가왕'을 꿈꾸지만 방송국별로 많아야 1개 정도만 정규 편성된다.
톱스타 권상우를 앞세워 여행을 갔고 황신혜는 노년이 적적한 어머니를 위해 소개팅을 했다. 트와이스 모모는 초등학생에게 혼나며 한글 교육을 받았다. 이렇듯 다양한 파일럿이 쏟아졌지만 전체적인 시청률(TNMS 전국 기준)은 암울하다. 최고시청률은 MBC '발칙한 동거'가 8.9%다. 두 자릿수도 나오지 않으며 모든 파일럿이 체면을 구겼다. 그럼에도 설 연휴 내내 포털 사이트 검색어에 오르내리며 화제성은 끌어모았다. 설 연휴 빛바래고 빛을 발한 프로그램은 무엇이 있는지 시청률과 기자 평점으로 따져 봤다.
김진석·황소영·박정선 기자
MBC '발칙한 동거'
방영일: 1월 27·28일 오후 5시55분 시청률: 8.9% 기자 평점: ●●●●○
시청률과 재미를 모두 잡았다. 다양한 연령대가 함께 보기에 부담 없는 프로그램이었다. 멤버 조합 역시 신선해 각각 보는 재미가 있었다. 집주인 블락비 피오와 방주인 김신영·홍진영은 누나와 남동생의 모습을 보여 주며 장난기 넘치는 모습을, 집주인 우주소녀와 방주인 오세득은 훈훈한 가족애를, 집주인 한은정과 방주인 김구라는 서로 티격태격하면서 미운 정을 키워 가는 모습으로 설날 안방극장을 사로잡았다. 프로그램 말미에 속마음을 가감 없이 보여 줘 반전도 선사했다. 캐스팅부터 프로그램 컨셉트까지 신선했다는 평가 속에 정규로 편성되어도 충분히 가능성 있는 프로그램으로 손꼽혔다.
SBS '초등학쌤'
방영일: 1월 27일 오후 5시50분 시청률: 5.1% 기자 평점: ●●●●○
아이돌과 아이들이라는 황금 조합이 시너지를 냈다. 한국에서 활동 중인 외국인 아이돌이 초등학생에게 한글을 배우는 포맷. 강남·헨리·엠버·모모 등이 한글 수강생으로 변신했다. 이미 출연자만으로 엉뚱한 면이 많아 재미있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들과 만나 웃음은 배가된다. '쪽박'을 맞추는 문제에서 헨리는 촉박으로 착각해 "시간이 빠르다"고 했다. 강남은 좁은 방으로 헷갈려 "방이 쪽박 해. 완전 쪽박"이라고 동작과 함께 소리를 외쳤다. 과거 '상상플러스'서 우리의 옛말을 맞추며 다 같이 좋아하던 모습이 남아 있듯 '초등학쌤'도 조금만 손보면 정규 편성이 무난해 보인다. 또 아이돌뿐 아니라 파란 눈의 외국인도 많으니.
MBC '오빠생각'
방영일: 1월 29·30일 오후 11시15분 시청률: 3.3% 기자 평점: ●●●◐○
시청률은 생각보다 낮았지만 프로그램이 가지고 있는 차별화 전략은 여타 파일럿 사이에서 미친 존재감을 자랑했다. 팬들을 위해 영업 영상을 제작하는 모습이 요즘 트렌드에 딱 맞아떨어졌다. SNS를 통해 스타와 팬이 쌍방향으로 소통하는 시대에 적합한 예능으로 다양한 아이디어가 터져 나왔다. 주인공인 윤균상과 채수빈의 호감도를 높이는 데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고 두 사람을 홍보하기 위해 애쓰는 MC들의 활약도 돋보였다는 평. 물오른 예능감을 자랑하는 양세형과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매력남 탁재훈과 솔비가 웃음을 전해 주기에 충분했다. 정규로 편성되어도 손색없었다.
SBS '희극지왕'
방영일: 1월 28일 오후 4시5분 시청률: 4.4% 기자 평점: ●●○○○
'황제' 이경규를 내세워 지상파 및 케이블서 활동하는 코미디언들이 한데 모인다는 취지는 좋았지만 개그는 시대를 역행했다. 3년부터 30년까지 15인의 코미디언이 모여 계급장을 떼고 무대에서 경합한다는 설정이었다. 라인업도 박미선·윤정수·양세형·김영철·신봉선 등 '한 개그'하는 이들이지만 그들이 보여 준 건 실소도 아까웠다. 그러니 '그들만의 잔치'라는 비난이 잇따랐다. 언제적 '김치 싸대기'를 들고나와 보여 주는 모습에선 할 말을 잃을 정도. 지상파 3사 공채를 허문다는 취지는 살리고 많은 보수 공사를 해야 그나마 집 나갔던 웃음도 돌아오지 않을까 싶다.
KBS 2TV '신드롬맨'
방영일: 1월 30일 오후 5시50분 시청률: 3.4% 기자 평점: ●●○○○
욕심이 과했던 걸까. 관찰 예능에 심리학을 곁들여 공감과 웃음을 잡으려 했던 '신드롬맨'은 논란을 남긴 채 막을 내렸다. 스타의 사생활을 관찰하며 사소한 일상에서 심리학적 요인을 발견, "나만 그런 거 아니지?"라는 공감을 얻어 내는 것이 '신드롬맨'의 목표.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든 최민수의 독특한 일상에 공감 아닌 힐난만 이어졌다. 로그아웃 신드롬이나 애국 신드롬 등 평범한 일상에 끼워맞추기식 심리학 분석만 늘어놓았다는 평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관찰 예능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감행했다는 점은 높이 살 만하다.
KBS 2TV '걸그룹대첩 가문의 영광'
방영일: 1월 27일 오후 6시 시청률: 3.9% 기자 평점: ●◐○○○
출연 라인업은 화려하다. 에이핑크·EXID·레드벨벳·여자친구 등 대세 걸그룹을 모두 모았고, 양세형과 민경훈 등 한창 주가 높은 MC까지 섭외했다. 그러나 결과물은 초라했다. '명절에 또 아이돌'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선 참신한 구성이 필수이지만, '걸그룹대첩 가문의 영광'은 지금껏 봐 왔던 많은 노래방 예능을 마구 섞어 놓은 모습이었다. SBS '도전천곡'만큼 전 세대를 아우르지도 못하면서, tvN '골든탬버린'만큼 참신하지도 못했다. 결과적으로 신선하지도 않았으며, 웃음과 감동 중 한 마리 토끼도 잡지 못했다. 시청률마저 저조. 추석을 포함해 명절용 일회성으로도 다시 보고 싶지 않은 포맷이니 정규 편성행 기차는 이미 역을 지나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