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축구연맹(축구연맹)이 지금 시도하고 있는 제11대 총재 선거는 이렇게 정의할 수 있다. 선거라는 허울 좋은 껍데기를 씌워 놓은 추대다.
축구연맹은 2014년 추대 방식에서 '총재 선거제'를 도입했다. 그리고 지난달 16일 사상 첫 선거가 펼쳐졌고, 단독 입후보한 신문선(59) 명지대 교수가 과반 획득에 실패(23표 중 찬성 5표·반대 17표·무효 1표)하며 낙선했다.
이 선거로 축구연맹의 '치부'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후보는 신 교수 한 명뿐이었다. 이런 상황은 만년 적자에 경쟁력을 잃은 K리그의 현실을 보여 준다. 기업인들에게 부탁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러자 대안도 없으면서 자신들의 구미에 맞지 않는 이를 철저히 배척하며 기득권을 놓지 않았다. 또 선거 세부 규정을 만들지 않았다. 재선거를 언제 치를지도 정확히 모른다. 총재 선거를 도입한 뒤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규정은 없었다. 그들이 얼마나 안일하게 선거를 준비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더욱 화나는 일은 그들이 내놓은 해결책이다. '과거로의 회귀'다.
축구연맹은 지난 정기총회에서 선거 규정을 바꿨다. '총재 선거에서 당선자가 나오지 않을 경우 총회를 통해 적임자를 추대한다'는 조항이 핵심이다. 기존 정관에는 이럴 경우 새로운 총재가 나올 때까지 현 총재가 업무를 연장한다. 그리고 다시 선거를 치러야 한다. 이 같은 '추대 규정'은 자신들과 맞는 사람을 '모신다'는 의미다.
이뿐 아니다. 또 다른 황당한 조항은 기탁금(후보 등록 때 납부할 금액) 제도의 시행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들과 맞지 않는 후보자가 출마하지 못하도록 하는 일종의 장치다. 후보자 난립을 막겠다는 것인데 복수의 후보자가 나서지 않은 상황에서 이 장치를 마련한 저의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출마의 벽을 높인 것이다.
이처럼 눈에 보이는 '꼼수'에도 축구연맹은 당당하다. 한 관계자는 "리그 개막이 얼마 남지 않았다. 계속 선거만 할 수 없지 않느냐. 시간을 앞당기기 위해 규정을 바꿨다"고 역설했다. 또 "기탁금도 후보자 출마를 막기 위한 것이 아니다. 첫 선거부터 도입하려 준비했고 지금 적용시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당한 축구연맹은 기탁금 금액과 기탁금 반환 득표수 등을 논의한 뒤 3일 이사회에서 확정할 예정이다.
이사회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총재 선거가 시행된다. 다음 선거는 오는 27일과 28일이 될 가능성이 크다. 빠르면 오는 6일부터 총재 후보 등록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축구연맹의 시나리오는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출마의 벽을 높여 놨기에 후보자는 나오지 않는다. 만약 후보자가 나오더라도 저번 선거처럼 압도적 표차로 떨어뜨리면 된다. 그러는 사이 대기업 기업인들을 잘 설득해 거추장스러운 선거 과정을 배제한 채 추대를 할 것이다. 자신들이 원하는 후보가 새로운 총재가 된다. 이런 시나리오대로 된다면 축구연맹은 진정 개혁을 포기했음을 공표하는 것과 같다.
K리그 클래식(1부리그) 개막을 한 달 앞둔 상황에서 총재의 부재는 아쉬운 일이다. 하지만 당장의 아쉬움을 채우기 위해 룰을 바꾸고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맞지 않다. 지금 더욱 중요한 일은 급하게 총재를 뽑는 것보다 앞으로 총재 선거가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는 것이다. 총재 선거는 이번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매번 이렇게 한다면 선거의 의미는 사라진다.
권오갑(66) 총재가 다시 추대될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이는 K리그 팬들을 무시하는 처사다. 11대 선거에서 불출마를 선언한 권 총재다. 이미 총재 자리에서 마음이 떠났다. 선거는 치르기 싫고 추대를 해 준다면 받아 주겠다는 말이 된다. 사실 권 총재는 다시 추대될 만한 업적도 일궈 내지 못했다. 임기 첫해인 2013년부터 4년 동안 K리그는 꾸준히 하락세였다. 전북 현대 심판 매수 사건도 터졌다. 이때 권 총재는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위기의 K리그가 도약하기 위해서는 변화와 개혁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중국, 중동 등 막대한 투자를 하는 리그에 경쟁력은 밀리고, J리그에 비해 마케팅적인 강점도 한참 뒤지는 상황이다. 역대 최대 위기라고 우려하고 있다.
그런데도 축구연맹이 안정을 택한다며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비슷한 총재를 앉히겠다는 것은 변화를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외부인 진입을 막고 그들의 관습과 기득권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다. 지금 변해야 할 건 선거 규정이 아니라 축구연맹의 의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