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전문가 A씨가 한탄하며 내뱉은 말이다. 그의 말대로 전북 현대의 심판 매수 사태가 K리그를 흔들고 있다. 그러나 지금 최상위 단체인 한국프로축구연맹(이하 축구연맹)은 책임을 회피한 채 전북 뒤로 꼭꼭 숨어 버렸다.
전북은 2013년 스카우트 심판 매수 사건으로 지난 1월 18일 아시아축구연맹(AFC) 출전관리기구(Entry Control Body)로부터 2017 AFC 챔피언스리그(ACL) 자격 발탁 징계를 받았다. 전북은 부랴부랴 같은 달 28일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항소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CAS는 지난 3일 전북의 항소를 기각했다.
국제적 망신이었다. 전북뿐 아니라 K리그 전체의 명예도 실추됐다.
이 때문에 모든 비난의 화살이 전북으로 향했다. 당연히 전북 사태의 1차적 책임은 범죄를 저지른 전북에 있다. 축구연맹 또한 자유로울 수 없다. 전북 사태를 이렇게 키운 데는 축구연맹의 행태에 있다. 그런데도 축구연맹은 한발 물러나 '관망'하는 자세다. 한 축구인의 얘기처럼 "무책임"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축구연맹의 '원죄'는 크게 세 가지다.
A씨는 "첫째는 구단 관리 및 심판 관리 소홀의 과오를 저질렀다. 둘째는 전북에 승점 9점 삭감과 제재금 1억원이라는 '솜방망이 징계'로 AFC 및 CAS의 역풍을 맞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전문가 B씨는 "축구연맹이 K리그에 심판을 매수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준 것이나 다름없다. 도덕성에 심각한 타격을 줬다"고 주장했다.
축구연맹은 이처럼 아주 중대한 과오(죄)를 범했다. 그런데 문제는 사죄와 반성, 책임지려는 모습이 없다. 지금까지 어떤 입장도 내놓지 않았다. 언제나 그랬듯 '책임 회피' 전술이다.
과연 이번에도 그 전술이 통할까.
전문가들은 고개를 저었다. 그들은 "도덕성 추락과 제 편 감싸기로 국제적 수모를 당한 지금 축구연맹이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최상위 단체의 자격이 없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라며 "K리그 팬들과 구성원들의 인내심도 한계에 다다랐다. 전북 뒤로 숨을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와 진심으로 사과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수뇌부 사퇴, 잘못된 관례에 대한 사과,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 등 축구연맹이 앞으로 나와 해야 할 일이 많다.
"전북은 단장이 사임했다. 전북과 같은 죄를 지은 축구연맹 역시 그 정도 위치에 있는 사람이 책임을 져야 자연스럽지 않겠는가."
K리그전문가 A씨가 강조한 방법이다. 일단 상징적으로 책임지는 인물이 필요하다. 축구연맹 수뇌부 중 누군가는 이번 사태에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A씨는 "지금껏 축구연맹에 무슨 사건이 터졌을 때 옷을 벗은 이를 본 기억이 없다. 자신들은 모르쇠로 일관하며 '꼬리 자르기'에 바빴다"고 일갈했다.
다른 일각에서는 "수뇌부 사퇴로 끝날 일이 아니다. 겉 가지를 쳤으니 다음은 뿌리다. 사태의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우선 심판 관리 소홀에 대한 사죄와 철저한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놔야 한다. 전북 스카우트 파문에 동조한 심판은 축구연맹 소속이다. 스카우트 개인 일탈이라는 전북의 말을 믿은 것은 축구연맹 역시 몇몇 심판 개인의 비리 행위로 치부했다는 뜻이 된다. 이런 자세를 유지한다면 상황이 개선될 리 없다.
B씨는 "지금보다 더욱 완벽하고 정확한 심판 배정 및 감시 시스템을 연구해 발표해야 한다. K리그 구성원들이 다시 신뢰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축구연맹이 져야 할 책임이다. 도덕성을 되찾는 것보다 급한 일은 없다"고 해결책을 제시했다.
전북에 경징계를 내린 잘못을 '시인'하는 것도 피할 수 없다. 그동안 축구연맹은 "전북에 무거운 징계를 내렸다"고 강조해 왔다. 이런 고집을 버려야 할 때다.
A씨는 "축구연맹이 잘못된 전례를 이어 가 전북 사태를 키웠다. 전북에 중징계를 내렸다면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다. AFC와 CAS에 망신당하는 일도 없었다"며 "잘못된 판단으로 경징계를 내렸다는 것을 시인하고 사죄하면서 잘못된 관례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팬들의 격한 반발에도 축구연맹이 경징계를 내린 이유는 있었다. 경남 FC 때문이다. 2015년 구단 사장 등 구단이 개입한 심판 매수 사건을 저지른 경남에 축구연맹은 승점 10점 감점에 제재금 7000만원의 징계를 내렸다. 객관적으로 보면 전북보다 죄질이 무겁다. 경남 징계를 기준으로 삼았으니 전북에 경징계를 내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A씨는 "경남의 징계에 발목 잡힌 것이다. 전북에 중징계를 내린다면 경남 징계가 잘못됐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며 "그래서 축구연맹은 눈을 감고 전북에 경징계를 내렸다. 앞으로 유사 사례가 발생한다면 징계 수위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제 잘못된 전례를 끊는 용기가 필요하다.
"경남과 전북 징계가 잘못됐다고 시인하는 것이 먼저다. 그다음은 약속이다. 이런 사건이 또 터졌을 때는 중징계를 내리겠다고 K리그 구성원들에게 확실히 약속해야 한다. 지금의 기준과 다르게 징계를 결정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 줘야 한다." A씨가 내놓은 방안이다.
축구연맹이 책임지는 모습은 언제쯤 볼 수 있을까. 그들의 책임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사실을 간과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