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C는 야구의 국제화를 모토로 만들어졌다. 월드컵처럼 단일 종목 최고 수준의 대회를 지향했다. 2002 한일월드컵을 기점으로 시들해진 한국 야구의 인기도 이 대회를 변곡점으로 다시 상승했다. 최고의 선수들이 대표팀에 발탁됐다. 박찬호(당시 샌디에이고)를 비롯해 김병현, 김선우, 최희섭 등 미국 무대에서 뛴 선수들이 대거 포함됐고, 일본 무대에서 한국 야구의 위상을 뽐낸 이승엽이 1루를 지켰다.
이진영, 이범호, 김태균, 오승환 등 당시 한국 야구의 미래라 불리던 20대 중반 선수들도 힘을 보탰다. 이범호는 이 대회에서 주전 3루수를 꿰찼다. 기존 주전 김동주가 예선 첫 경기 대만전에서 주루 플레이 도중 부상당해 기회를 얻었다. 대회 성적은 부진했다. 타율 0.176에 그쳤다. 하지만 그는 전년도 KBO 리그에서 26홈런을 기록하며 장타력을 증명했다. 6번 타순에 나서며 타선의 무게감이 유지되는 데 기여했다. 이진영은 수차례 호수비를 펼치며 '국민 우익수'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데뷔 시즌(2005년) 삼성의 마무리 투수가 된 오승환도 네 경기에 등판해 경험을 쌓았다.
2009년 2회 WBC는 유독 젊은 선수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특히 마운드에서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박찬호 등 해외파가 빠진 자리에 류현진, 김광현, 윤석민 등 3년 사이 KBO 리그 정상급 선수로 성장한 투수들이 자리했다. 이전 대회에 참가했던 선수는 일곱 명뿐이었다. 이대호, 추신수, 김태균, 정근우 등 현재 한국 야구를 이끌고 있는 1982년생 선수들이 주축으로 자리를 잡기도 했다. 이용규, 김현수 등 25세 미만 외야수들도 주전으로 올라섰다. 2008 베이징올림픽의 금메달 주역인 이들이 그 기운을 이어 대회 준우승을 이끌었다.
1라운드에서 탈락하며 실패한 대회로 평가받는 2013년 3회 대회에서도 WBC 대표팀에 첫 발탁 돼 경험을 쌓은 선수들이 있었다. 손아섭, 김상수 등이 이 대회에서 처음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었다. 첫 경험을 했던 두 선수는 이듬해 인천 아시안게임 대표팀에도 승선해 금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신예 선수가 발탁된 첫 대회부터 바로 두각을 보이긴 어렵다. 하지만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 대회에서 주축 선수로 거듭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본 대표팀도 마에다 겐타(LA 다저스), 다르빗슈 유(텍사스), 다나카 마사히로(뉴욕 양키스) 등 메이저리거 다수가 엔트리에서 빠졌다. 2015 프리미어 12에서 한국 대표팀을 괴롭힌 자국 리그 최고의 선수 오타니 쇼헤이도 부상으로 불참한다. 하지만 야마다 데츠토(25·야쿠르트), 스즈키 세이야(23·히로시마) 등 전반적으로 20대 선수들을 다수 포함시키며 2020 도쿄올림픽을 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