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 카터(31)는 지난 시즌 내셔널리그 홈런왕이다. 밀워키 소속으로 160경기에 출전하면서 홈런 41개를 때려내 놀란 아레나도(콜로라도)와 함께 공동 1위에 올랐다. 시즌 직후 FA 자격도 얻었다. 그러나 시장은 얼어붙었다.
카터는 타율이 0.222에 그쳤다. 644번 타석에 들어서 삼진이 206개에 달했다. 2013년(212개)에 이어 두 번째로 메이저리그 최다 삼진 선수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장타율(0.500)과 출루율(0.321)도 큰 차이가 났다. 홈런이 많은 대신 정확도가 떨어졌다.
결국 시즌 뒤 구단이 연봉조정신청을 거부하며 논텐더로 방출했다. 밀워키는 카터의 빈 자리를 NC 외국인 타자 출신인 에릭 테임즈로 채웠다. 다른 팀에서도 좀처럼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메이저리그가 아닌 일본 프로야구로 진출할 수도 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결국 카터는 8일(한국시간) 뉴욕 양키스와 1년 300만 달러(약 34억4000만원)라는 헐값에 사인했다. 먼 과거도 아닌 바로 직전 시즌 홈런왕의 몸값으로는 믿기지 않는 대우다. '삼진 많은 홈런 타자'를 향한 싸늘한 시선을 실감케 했다.
최근 메이저리그는 한국과 달리 투고타저 현상이다. 불펜 투수와 멀티 포지션 선수의 가치가 점점 상승하고 있다. 반면 정확성이 떨어지는 거포는 저평가되는 추세다. 인플레이 타구로 이어지지 않는 삼진은 가장 나쁜 점수를 받는 항목이다. 스몰볼을 추구하는 캔자스시티, 샌프란시스코, 클리블랜드 등의 성공은 이 추세를 강화시켰다.
지난 4일 미네소타에서 양도 선수로 지명된 박병호(31) 역시 같은 이유로 고전하고 있다. 박병호는 지난해 62경기에서 12홈런을 쳤지만 타율이 2할에 미치지 못했다. 244타석에서 삼진 80개를 당했다.
그는 한국에서 타율과 출루율이 좋은 홈런 타자였다. 메이저리그 진출 직전인 2015년에는 타율 0.343을 기록하면서 홈런 53개를 치고 146타점을 올렸다. 삼진이 161개로 이전 시즌들보다 늘어났지만, 출루율은 0.436으로 나쁘지 않았다. 메이저리그에서는 반대였다. 파워와 정확성의 격차가 커졌다. 처음 상대하는 빅리그 투수들의 빠른 공 적응에 애를 먹었다.
박병호 입장에서는 양도 지명 뒤 10일 안에 새 소속팀을 찾는 게 가장 좋다. 불발되면 마이너리그로 내려가야 한다. 현지 언론에서는 텍사스, 오클랜드, 시카고 화이트삭스, 탬파베이 등이 영입 후보로 거론된다. 아직 소식은 없다. 그 사이 폭스스포츠가 박병호의 방출을 예상했다가 마이너리그 강등으로 정정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물론 박병호의 가치가 완전히 저평가되는 것은 아니다. ESPN의 미네아폴리스 지역 라디오 네트워크는 여전히 "박병호가 시즌 첫 달 동안 팀 내 최고 타자였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제대로 맞기만 하면 무조건 넘어가는 박병호의 파워는 풀타임으로 출장하지 않아도 홈런 15~20개를 칠 수 있는 밑바탕"이라는 강조도 했다.
박병호와 미네소타의 잔여 계약은 3년간 925만 달러다. 빅리그 두 번째 시즌을 앞두고 위기를 맞은 박병호의 행선지는 어디가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