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등지에서 막바지 전지훈련과 연습 경기,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일정을 준비 중인 클래식(1부리그) 소속 각 팀들은 이제 어느 정도 선수단의 틀을 갖춘 상태다. 이때 팀 전열을 가다듬기 위한 핵심적인 존재는 역시 '주장'이다. 누가 리더가 되느냐에 따라 선수단 분위기가 결정되고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구단들이 연말과 연초만 되면 코칭스태프, 팀 고참급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신중하게 캡틴을 선임하는 이유기도 하다.
한준희 KBS 해설위원은 "주장이라는 존재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주장이 어떤 통솔력을 보여 주느냐에 따라 감독도 영향력을 미칠 수 없는 위기의 순간에 팀을 구할 수 있다"며 그 중요성을 설명했다.
일간스포츠는 12개 팀이 뽑은 각 구단의 주장들을 살펴보고 팀이 선택한 배경과 숨겨진 이야기에 대해 톺아봤다. ◇ 미드필드와 수비수가 최상종가
올 시즌 K리그는 '토종' 출신의 미드필더와 수비수 주장 천하다.
각각 여섯 명으로 정확하게 절반씩 양분하고 있다. 다시 말해 2017년 클래식 무대엔 골키퍼나 공격수, 외국인 주장이 단 한 명도 없다는 뜻이다. 황지수(36·포항)와 염기훈(34·수원)·신형민(31·전북)·김성환(31·울산)·김성준(29·상주)·김도혁(25·인천) 등이 미드필더 출신으로 주장 완장을 찼다.
한 위원은 "현대 축구로 올수록 미드필더에게 주장을 맡기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미드필더는 그라운드에서 공격수와 수비수 사이에 접촉이 가장 많고 경기의 중심을 잡는 포지션이다. 그만큼 전술 이해도가 높고, 벤치에서 원하는 바를 전달할 수도 있다.
'헌신'의 아이콘 수비수 역시 주장감으로 인기가 높다.
올 시즌 K리그에서 수비수 출신 캡틴은 곽태휘(36·서울)와 최효진(34·전남)·이종민(34·광주)·오반석(29·제주)·백종환(32·강원)·박태홍(26·대구) 등이 있다. 수비수는 그라운드 뒤편에서 선수들의 움직임을 전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어서 경기 상황 판단이 용이하다. 자신이 돋보이는 포지션이 아니라 조용히 공격수와 미드필더들을 백업하는 역할에서 나오는 특유의 헌신성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물론 과거에 골키퍼나 공격수, 외국인 주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라이언킹'이란 애칭으로 불리는 전북 현대의 간판급 스트라이커 이동국(38)은 2015년까지 주장을 맡다가 이후 골키퍼 권순태(33·가시마 앤틀러스)에게 자리를 넘겼다. 그러나 11년 동안 전북 유니폼을 입었던 권순태는 이번 시즌에 앞서 일본 J리그로 이적했다. 이로써 골키퍼 출신 캡틴 명백도 끊겼다.
스페인 국적의 외국인 선수 오스마르(29·서울)는 지난해까지 유일한 용병 출신 주장이었지만, 올해는 구단의 뜻에 따라 곽태휘가 주장을 맡게 됐다. 언어 소통의 장벽과 팀 분위기 전환 차원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사진=프로축구연맹 제공 ◇ 맏형과 상징성도 중요한 포인트
포항과 수원은 수년 동안 오직 한 명의 선수에게만 리더 역할을 줬다. 황지수와 염기훈이 주인공이다.
특히 황지수는 2012시즌 중반 주장이 된 뒤 올 시즌까지 6년째 완장을 차고 있다. 사실 황지수는 주장직을 고사할 생각이었다. 올해만큼은 후배들에게 물려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서다. 그러나 지난 시즌 최순호(55) 감독을 신임 사령탑으로 맞이한 포항은 팀 안정화를 위해 다시 한 번 황지수에게 주장을 맡겼다. 황지수는 "6년째 주장을 맡은 비결 같은 건 없다. 부담도 없다"며 "그저 감독님께서 '어려운 시기에 한 번 더 해 달라'고 요청하셨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염기훈은 올해까지 4년 연속 수원의 캡틴으로 활약 중이다. 시원시원한 성격과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선수단을 포용력 있게 아우른다는 것이 서정원(47) 수원 감독의 생각이다. 염기훈은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4년 연속 주장을 맡게 된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한다. 올해는 K리그 클래식 트로피를 가져오는 게 목표다. 수원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 주겠다"며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이번 비시즌 '돌풍 영입'으로 주목받은 강원은 주장직을 백종환(32)에게 그대로 맡겼다. 정조국(33)과 이근호(31) 등 내로라하는 유명 선수들을 대거 영입한 점을 떠올리면 다소 의외의 선택이다. 하지만 강원은 올해 지나치게 많은 선수를 교체했다. 이로 인해 조직력과 선수단 간 조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흘러나왔다. 최윤겸(55) 강원 감독도 이를 고민했던 것 같다. 그래서 강원을 잘 알고 기존 선수들과 새로 영입된 인물들을 잘 연결할 수 있는 백종환에게 2년 연속 캡틴 자리를 줬다는 후문이다. 최 감독은 "올해 새로운 선수들이 많이 들어왔다. 백종환이 선수들과 두루두루 친분이 있고 선수단을 하나로 뭉치게 할 최고의 적임자"라고 밝혔다.
곽태휘는 지난해 여름 약 9년 만에 친정팀인 서울로 복귀했다. 오랜 해외 생활을 경험했지만, 서울의 프랜차이즈 스타라는 상징성이 있다. 지난 시즌 중반 선임된 황선홍(49) 서울 감독은 평소 솔선수범의 자세를 보이며 코칭스태프가 바라는 점을 선수단에 잘 연결해 줄 수 있는 곽태휘를 부임 뒤 첫 주장으로 뽑았다. 곽태휘는 "리더가 먼저 몸으로 보여 주고 운동장에서 행동으로 실천하면 후배들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돼 있다"고 말했다.
한 위원은 "정말 중요한 매치가 있을 때 감독은 벤치 밖에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수밖에 없다. 한계가 있다는 뜻"이라며 "그러나 주장은 직접 필드에서 뛰면서 선수들을 하나로 모을 수 있다. 전반전에 두 골을 내줬어도 후반전에서 심기일전해 팀을 이기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주장"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