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 A조의 한국 최대 난적으론 네덜란드가 꼽힌다.
네덜란드의 전력은 2013년 한국에 ‘타이중 쇼크’를 안겼을 때보다 더욱 강력해졌다. 카리브해의 해외 영토인 퀴라소, 아루바 출신의 현역 메이저리거 야수가 다수 합류했다. 투수진은 상대적으로 약하지만 KBO 리그 타자들에게 익숙한 릭 밴덴헐크(소프트뱅크)가 있다.
네덜란드 전력 분석은 한국전 등판 가능성이 점쳐지는 밴덴헐크에게 맞춰져 있다. 이미 KBO 리그를 ‘정복’했던 에이스기에 당연한 반응이다. 하지만 상대 득점을 막는 것도 중요하다. 가장 경계해야 할 타자는 보스턴 레드삭스의 주전 유격수 잰더 보가츠다.
아루바에서 태어난 보가츠는 열여덟 살이던 2011년에 이미 보스턴의 넘버2 유망주로 꼽히며 두각을 드러냈다. 2013년엔 스무 살의 나이로 트리플 A에서 타율 0.284, OPS(출루율+장타율) 0.822를 기록했다. '괴물' 같은 성장 속도였다. 결국 2013년 8월 빅리그 데뷔에 성공했다. 이해 시즌을 앞두고 WBC에 출전하기도 했다.
보가츠는 빅리그 2년 차인 2014년 OPS 0.659라는 기대 이하의 성적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2015년 곧장 본 실력을 선보이며 팀의 주전 유격수로 자리 잡았다. 포지션 최고 타자에게 주는 실버슬러거 상도 따냇다. 2016년엔 더 발전했다. 홈런 21개를 때려 냈고, OPS는 0.802로 올랐다. 2년 연속 실버슬러거 수상과 올스타 출전의 영예도 안았다.
지금 보가츠는 명실공히 아메리칸리그(AL) 최고의 유격수로 꼽힌다. 만 스물넷의 나이로 일군 성과다. 그는 아직도 성장 중이다.
OPS 0.802는 그렇게 대단하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보가츠의 포지션은 유격수다. 유격수는 중견수, 포수와 함께 타격 기대치가 가장 낮은 포지션이다. 지난해 AL에서 보가츠보다 높은 OPS를 기록한 유격수는 카를로스 코레아(휴스턴·0.811) 단 한 명이었다. 체력이 떨어지기 전인 전반기엔 보가츠가 1위(0.863)였다. 시즌 개막 전 열리는 WBC에서 보가츠는 한국 대표팀의 경계 대상 1호 타자다.
명문 보스턴의 주전 유격수지만 WBC에는 네덜란드 대표팀 3루수로 출전할 전망이다. 메이저리그 최고 유격수 수비를 자랑하는 안드렐톤 시몬스(LA 에인절스)가 유격수를 맡았기 때문이다. 보가츠는 네덜란드 대표팀의 헨슬리 뮬렌 감독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3루수 출전을 자청했다. 2014년까지 53경기에 3루수로 출장한 적이 있어 큰 문제는 없다. 네덜란드는 1922년부터 야구 리그를 시작한 나라다. 자국 리그가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대표팀을 향한 존중심이 있다. 이 점도 네덜란드를 무시할 수 없게 만든다.
체력적인 부담이 덜한 3루수를 맡으면 보가츠는 타격에 더 집중할 수 있다. 유격수로 뛰던 선수가 3루로 이동한 뒤 타격 성적이 좋아진 사례는 과거에서도 심심치 않게 찾을 수 있다. 2013년 WBC 한국전에서 보가츠는 2타수 무안타 1볼넷에 그쳤다. 지금은 더 무서운 선수다. 대표팀 투수들은 보가츠를 어떻게 상대해야 할까.
좋은 타자들이 대개 그렇듯, 보가츠는 볼카운트가 유리한 상황에서 더 좋은 타격을 했다. 볼이 스트라이크보다 많은 카운트에서 타율 0.312, OPS 0.937을 기록했다. 초구 구사에 신중해야 한다. 초구 상대 타율은 무려 0.435다. 하지만 초구부터 적극적으로 휘두르는 편은 아니다. 메이저리그 평균 초구 스윙률은 28%. 보가츠는 18%다. 칠 공은 치고 나쁜 공은 버린다. 볼카운트를 유리하게 잡고 투수를 공략하는 스타일이다. 초구를 정확한 제구로 던져야 하는 상대다.
구종별로는 직구 계통에 강했다. 변화구에는 다소 취약했다. 많은 메이저리그 타자들이 공유하는 특징이다. 다만, 지난해 스플리터(65구 상대 타율 0.133)와 왼손 투수의 체인지업(95구 상대 타율 0.211)에 약했던 점이 특기할 만하다. 대표팀 왼손 투수 중에선 장원준이 체인지업에 능하다. 과거 손민한이 알렉스 로드리게스를 체인지업만으로 3구 삼진으로 돌려세운 것처럼, 한국 대표팀은 서구권 타자를 떨어지는 공으로 공략해 톡톡히 재미를 본 경험이 많다. 메이저리그에서 보가츠의 이런 '약점'은 비밀이 아니다. 그럼에도 좋은 성적을 냈다. 스트라이크존으로 들어오는 공에도 '아니다' 싶으면 배트를 내지 않는다. 하지만 몰린 공에는 가차 없이 응징을 한다. 전형적인 ‘좋은 타자’의 특징이다.
사실 이런 타자를 상대로는 정면 승부를 피하는 게 좋다. 네덜란드 대표팀의 중심타자로는 보가츠와 2루수 조나단 스콥(볼티모어 오리올스)이 꼽힌다. 외야수 블라디미르 발렌틴도 중심타자 후보다. 네덜란드 야수진은 내야는 강하지만 외야가 약하다. 상하위 전력 차가 크다. 필요하다면, 보가츠는 피해 가는 게 정답인지도 모른다.
박기태(야구공작소)
야구 콘텐트, 리서치, 담론을 나누러 모인 사람들. 야구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공유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