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불문. 논란의 주인공이 됐던 배우들이 속속 스크린 컴백을 추진 중이다. 상업적인 드라마·영화를 선택하기에는 눈치가 보이는 상황에서 이들이 발판으로 삼은 작품은 바로 '저예산' 영화다. 초심과 노림수 사이에서 이들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은 여전히 차갑다.
25일엔 유부남 배우로서는 치명적인 성(性) 스캔들 파문에 휩싸였던 엄태웅의 복귀 소식이 전해졌다. 선택한 복귀작은 영화 '포크레인(이주형 감독)'. 엄태웅 소속사 키이스트 측은 "엄태웅이 '포크레인' 주연으로 낙점됐다"며 "현재 촬영 중이며 개봉 시기는 미정"이라고 밝혔다. 엄태웅의 컴백 타진은 자숙 6개월 만이다.
이에 앞서 이진욱은 영화 '호랑이 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이광국 감독)' 합류를 확정짓고 현재 촬영에 한창이다. 대선배 고현정과 호흡을 맞춘다. 일간스포츠는 이진욱의 촬영 현장을 단독 포착한 바 있다. 이진욱은 시종일관 얼굴에 미소를 띈 채 스태프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어느정도 여유를 찾은 듯한 모습을 보였다.
왜 '저예산' 영화인가
엄태웅·이진욱이 택한 작품은 흥행보다는 작품성으로 평가받을 가능성이 농후한 저예산 영화라는 공통점이 있다.
물론 그저 제작비가 적게 투입 돼 저예산 영화라고 불리는 작품은 아니다. 감독과 제작사의 면면이 화려하다. 이광국 감독은 홍상수 감독의 '하하하'·'잘 알지도 못 하면서' 등 작품 조연출로 활동하며 영화를 배웠고, 이주형 감독은 김기덕 필름 사단이다. 해외에서도 유명한 '이름값' 높은 감독들이 과거와 현재 든든하게 얽혀있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이들의 성공적 복귀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쌓아놓은 모든 것이 무너진 만큼 사실상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따져봐야 할 것도 많다. 은퇴는 할 수 없으니 어떻게든 다시 일을 시작하긴 해야 하는데 최대한 조용히, 대중의 비난을 그나마 덜 받는 선에서, 이미지 회복까지 일궈내야 한다.
선택의 폭은 당연히 좁고 진입장벽은 낮을 수록 좋다. 그렇다면 자본과는 조금 멀어져야 마땅하다. 몇 십 억, 몇 백 억이 투자되는 작품이 불미스러운 사건에 휩싸인 배우들을 캐스팅 하지도 않겠지만, 과감하게 기용한다고 하더라도 배우 뿐만 아니라 작품에 대한 신뢰 하락은 불가피하다.
때문에 배우는, 받는 시나리오가 이전보다 적어진 상태에서 최고의 효과를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저예산 영화만큼 좋은 기회도 없다는 설명이다.
충무로 사정에 정통한 한 제작사 관계자는 일간스포츠에 "매 회, 매 주 평가 받아야 하는 드라마는 물의를 빚은 배우들을 캐스팅 하는 것이 영화보다 더 부담스러울 수 있다. 영화의 진입장벽이 낮은 것은 아니지만 드라마에 비해서는 선택과 기회의 폭이 넓은 것이 사실이다"며 "그리고 영화는 촬영기간이라는 시간을 더 벌 수 있다. 개봉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진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한참 후의 일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어 "그 중에서도 저예산 영화는 시나리오가 굉장히 뛰어나지 않으면 톱 배우들을 캐스팅하기 힘들다. 일단 그들의 몸값을 맞춰 줄 자본이 부족하다"며 "하지만 주목도를 높이려면 어느 정도 인지도 있는 배우가 필요한 것도 맞다"고 분석했다.
또 "배우는 첫 컴백·첫 복귀라는 긴장감과 책임감이 이미 막중한 상황에서 상업작품 주인공으로 흥행에 대한 부담감까지는 떨쳐낼 수 있어 좋고, 작품은 일단 주목을 받을 수 있어 좋다"며 "저예산 영화 특유의 '날것' 그대로의 분위기를 내는데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여러모로 서로가 윈윈할 수 있는 꽤 좋은 조건이 아닐 수 없다"고 덧붙였다.
기-승-전-'연기력' 승부수
일각에서는 어떠한 특정 이미지를 위한 '노림수' 아니냐는 반응도 보인다. "초심을 찾기 위해 노력했고, 진정성 넘치게 연기했다"는 말과 함께 연기파 이미지를 덧씌우기에도 안성맞춤이다. 때문에 선택이라는 관문을 넘었다면 결국 승부수는 '연기력'으로 띄워야 한다.
이들이 벤치마킹 할 만한 대표 롤모델은 이병헌·김민희다. 연예계를 발칵 뒤집어 놓을 만한 사건을 일으켰지만 역대급 연기력으로 인정받는 아이러니한 결과를 나타냈다. 사건·사고의 경종에 따라 누군가는 '어떻게 같은 선상에 놓을 수 있냐'고 반박할 수도 있지만 일반적인 대중이 바라보는 이미지는 사실상 똑같다. 바꾸는 것은 본인들의 몫이다.
말이 필요없는 연기파 배우이자 흥행킹 이병헌은 '내부자들' '마스터'를 줄줄이 흥행 시키는가 하면, 할리우드에서도 꾸준히 활동하며 한국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시상식 무대에 서는 기염을 토했다. 홍상수 감독과의 불륜 스캔들로 여전히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김민희는 활동을 중단한지 8개월 만에 제67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이병헌과 마찬가지로 한국 배우 최초 여우주연상을 수상, 베니스 강수연, 칸 전도연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대외적으로 국위선양의 주인공이 됐다.
한 관계자는 "음주 파문에 휩싸였던 윤제문은 영화도 아닌 연극으로 먼저 복귀해 4월 스크린으로 컴백한다. 이진욱·엄태웅도 연기에 대한 초심을 되찾고 현장 적응 등의 일환으로 스케일이 조금 작은 작품을 복귀작으로 택한 것이 아닐까 싶다. 배우로서는 꽤 영리한 선택이다"며 "하지만 두 사람은 한창 활동을 할 때도 충무로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보인 배우들은 아니다. 오히려 브라운관에 강한 스타들이었다. 때문에 그저 그런 연기가 아니라 대중의 인식이 '배우'라는 직업에 초점을 맞춰질 수 있을 정도의 연기를 펼쳐야 할 것이다"고 귀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