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강남 파티오나인 웨딩홀에서 열린 2017 K리그 클래식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아이돌 걸그룹 '러블리즈'가 올 시즌 새로운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러블리즈는 현재 홍보대사로 활동 중인 가수 박재정(22)과 함께 K리그를 홍보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됐다.
이날 러블리즈는 K리그 클래식(1부리그) 12개 구단 감독 및 선수, 관계자들과 팬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홍보대사 위촉장을 받고 올 한 해 동안 K리그를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각오를 전했다.
러블리즈는 "멤버 모두가 어릴적부터 축구장을 다녔던 기억이 있었고, 2002년 월드컵을 인상 깊게 본 추억이 있다"며 "앞으로 홍보대사로서 경기장을 누비며 K리그를 널리 알리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러블리즈는 이 자리에서 위촉장을 전달한 황선홍(49·FC 서울) 감독을 어릴 때부터 좋아했다는 '고백'의 말도 남겨 팬들의 환호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명함뿐인 홍보대사'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러블리즈가 K리그에 얼마나 애정을 품고 있으며, 또 적극적으로 홍보 활동을 펼칠 수 있을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우려다. 기우라고 하기에는 홍보대사라는 직함 자체가 워낙 그렇다. 축구뿐 아니라 다른 종목, 단체 활동에 있어서도 홍보대사는 이름과 얼굴을 빌려주는 일종의 '재능기부'이자 '명예직'에 불과하다.
좀 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월급'도 안 주면서 홍보대사 활동을 열심히 해 달라고 하기도 어렵다는 뜻이다. 물론 계약 안에는 위촉비에 따라 일정 횟수 이상 참석한다는 내용이 포함되기는 한다. ▲프로축구연맹 제공 ◇ 박재정, 성공적 홍보대사
그런 의미에서 박재정은 대단히 성공적인 선례가 아닐 수 없다.
2016시즌부터 K리그 홍보대사로 활동해 온 박재정은 평소부터 '축덕(축구+오타쿠의 한글식 표현인 오덕후의 합성어)'이라 불릴 만큼 축구와 K리그에 대한 적극적인 애정을 표현해 왔다.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자신이 모아 온 축구 유니폼을 자랑하고 수원 삼성의 응원가를 부르는 모습에 K리그 팬들은 큰 감동을 받았다.
박재정은 홍보대사로 임명된 뒤에도 '축구 사랑'을 표현하는 데 거침이 없었다. 직접 경기장을 찾아다니며 팬들과 소통했고, 포털 사이트에 팬의 관점에서 느낀 칼럼을 기고하는 등 그야말로 '덕후'다운 모습을 한껏 뽐냈다. 클래식과 챌린지(2부리그) 22개 모든 경기장의 출입이 가능한 AD카드를 가장 열심히 활용한 홍보대사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팬들의 마음을 알아주는 '축구팬' 박재정의 적극적인 행보에 팬들은 그를 '개념 홍보대사'로 부르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우심방에는 노래의 피가, 좌심방에는 축구의 피가 흐른다"는 그의 인터뷰에 팬들은 환호했다.
박재정은 그동안 '홍보대사'가 가지고 있던 이미지 자체를 크게 바꿔 놓았다. 그는 한국프로축구연맹은 물론이고 팬들조차 큰 기대와 관심이 없었던 '홍보대사'라는 직함에 가치를 더했다. 'TV에서 보던 연예인이 K리그 홍보대사가 돼 우리팀 경기장에 찾아온다'는 이 간단한 일이 얼마나 많은 축구팬들을 기쁘게 했는지 보여 준 좋은 예인 셈이다.
▲J리그 1대 `여자 매니저` 아다치 리카. ◇ J리그의 새 문화 '여자 매니저'
일본 J리그 역시 비슷한 고민을 해 왔다. J리그는 K리그보다 출범이 10년 가까이 늦지만 일본 특유의 지역색과 내수 시장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구조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승강제 도입 이후 관중 감소 문제에 부딪혔고, 일본 내에서 압도적인 인기를 자랑하는 프로야구에 밀리면서 보다 적극적인 홍보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한 명이라도 더 많은 팬을 경기장에 불러들여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 J리그는 2007년부터 2010년까지 'J리그 일레븐 밀리언 프로젝트(1100만 관중 모집)'를 시작했다. SNS와 블로그를 통해 팬들이 직접 J리그 홍보에 참여할 수 있도록 'J리그 특명 PR부'를 창설했고, 2010년에는 'J리그 여자 매니저'를 새로 만들어 하나의 문화로 정착시키고 있다.
K리그 홍보대사와 비슷한 역할이지만 J리그 여자 매니저가 하는 일은 매우 많다. 매주 J리그가 열리는 경기장에 직접 찾아가고 J리그 주요 행사에 참석해 매니저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또 자신의 SNS를 통해서도 J리그를 홍보하고 팬들과 소통해야 하며, J리그 관련 콘텐트를 만드는 데도 참여한다. 말 그대로 J리그의 얼굴이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J리그 여자 매니저의 경우 일정 문제 때문에 유명 연예인을 섭외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신인 연예인을 중심으로 선정하는데 아직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연예인이 J리그 여자 매니저로 활동하면서 팬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어 드라마나 방송에 나오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1대 아다치 리카(2010년~2014년), 2대 사토 미키(2015년~) 등은 모두 팬들 사이에서는 '축구 여신'으로 통하며 많은 인기를 얻었다.
J리그 여자 매니저의 등장 이후 나타난 긍정적인 변화 중 하나는 여성 팬들의 증가다. 2015년 성남 FC의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경기를 취재하러 일본 오사카에 갔을 때다. 세레소 오사카의 경기장이 있는 나가이 스타디움 앞에서 만난 여성 팬들은 "그전까지 축구는 남자 팬들이 많아서 여자들끼리 가기 어려웠는데, 여자 매니저를 보면서 우리도 축구장에 갈 용기를 얻었다"고 귀띔했다.
물론 J리그와 K리그는 기본적인 환경이 다른 만큼 무조건 벤치마킹을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J리그 여자 매니저에게 요구되는 프로 정신처럼, 그리고 박재정이 보여 준 좋은 선례처럼 K리그 홍보대사의 역할도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