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일본 미야자키 소켄구장. 김태룡(58) 두산 단장은 한화와의 연습 경기를 지켜보면서 비어져 나오는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새 선수가 등장할 때마다 칭찬과 감탄사를 쏟아내느라 입에 침이 말랐다. 주위에서 "어찌 나오는 선수마다 다 '물건'이라고 하느냐"고 핀잔을 줘도 굴하지 않았다. "저 친구는 미래의 4번타자 감이다", "저 선수는 애초에 차세대 주전 유격수로 뽑았다", "마운드에서 저렇게 여유 넘치는 신인 선수는 찾아 보기 힘들다"고 거듭 강조를 하고 또 했다. KBO리그 최강팀의 단장다운 자부심이 듬뿍 묻어났다.
김 단장은 야구계에서 입지전적인 인물로 통한다. 대학 시절 부상으로 꿈을 접었던 비운의 야구 선수 출신. 그러나 은퇴 후 프런트 말단부터 시작해 프로야구 단장 자리까지 올랐다. 지난해에는 전무이사로 승진했고, 두산이 한국시리즈를 2연패하면서 성과가 더 빛났다. 김 단장의 성공 신화는 올해 프로야구에 과반이 넘는 선수 출신 단장들이 등장하는 밑바탕이 됐다.
김 단장은 인터뷰 요청에 "앞에 나서지 않고 뒤에서 묵묵히 일하고 싶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그냥 물러서기에는 김 단장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다. 결국 두산 선수단의 미야자키 숙소 로비에서 김 단장과 마주 앉았다. 사복 재킷 차림이던 김 단장은 사진을 찍겠다는 말에 급히 두산 구단 점퍼를 찾았다. "야구단 단장으로서 구단 옷을 입고 있는 게 맞다"고 했다. '김태룡'이라는 사람보다 '두산'이라는 팀 이름이 앞서야 한다는 의미였다.
- 한국시리즈 2연패 후 첫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기대 반, 걱정 반이다. 지난해 통합 우승까지 해서 모두 3연패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다행히 지난 겨울 외국인 선수 재계약과 FA 선수 계약을 순조롭게 잘 마무리했다. 통합 우승 멤버를 그대로 잘 지켜주는 게 프런트의 일이다. 다만 아무래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선수를 8명이나 보낸 부분이 마음에 걸린다. 국가대표 선수들과 남아 있는 선수들이 호흡을 맞출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 선수들이 한국시리즈를 2연패하면서 많이 성장했고, 자신감도 많이 붙었다. 현장에서 잘 극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 성공한 선수 출신 단장의 표본이 됐다.
"여기까지 올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난 프로도 아닌 아마 선수 출신이다. '내가 프런트로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늘 있었다. 그때마다 그냥 내 일에 최선을 다하자는 다짐만 했다. 직접 야구를 해봤으니 '어떻게 하면 더 좋은 팀, 강한 팀이 될까' 하는 고민을 꾸준히 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주위에서 조금씩 인정도 해주고, 도움도 많이 주기 시작했다."
- 고비도 있었을 것이다.
"1994년 OB(두산의 전신) 선수단 집단 이탈 사건 때였다. 당시 내가 1군 매니저였다. 전주에서 쌍방울전이 끝나고 선수들이 다같이 항명에 나섰다. 설득하려고 많이 노력했지만, 상황을 수습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매니저로서 사태에 책임을 져야겠다는 마음으로 사직서를 제출했는데, 구단이 반려했다. 또 운영부장까지 올라오고 몇 년이 지났을 때도 '이제 내가 후배들을 위해 물러날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고민이 생겼다. 2009년 쯤이었다. 그 시기에 구단에서 이사라는 직함을 주면서 팀을 계속 관리하게 해줬다. 그리고 2년 뒤 단장이 됐다. 지금까지도 그 부분에 감사하고 있다."
- 그동안 팬들에게 입에 담기 어려운 비난도 많이 받았다.
"속이 상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잘못을 하면 욕은 당연히 먹어야 한다. 야구단 단장이 받아들여야 할 숙명이다. 전임 감독들을 교체하면서 '성적이 안 좋으면 단장이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던 것도, 우리 팀을 더 잘 만들어 나가겠다는 자신감과 확신을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내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더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쭉 현장에서만 있었고, 누구보다 우리 선수들 구성이나 팀 내부 상황을 잘 안다. 언젠가는 이 멤버로 우승을 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은 계속 갖고 있었다."
- 그 기대를 확신으로 바꾼 결정적 계기가 있다면.
"베테랑 FA 선수들을 여러 명 다른 팀으로 떠나 보내면서 김승영 사장님과 얘기를 했다. '아프지만, 이 시간을 계기로 팀 세대 교체를 제대로 한 번 해보자'는 마음이 사장님과 일치했다. 그 결심을 하고 1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했다. 팀을 재편성한 책임자로서 사장님도, 나도 뿌듯함을 많이 느꼈다. 1990년 7월 두산에 입사해 여러 가지 사건들이 많았지만, 한 팀을 최고의 전력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는 포기하지 않았다. 팀이 우승을 하니 소원을 성취한 기분이었다."
- 매니저, 운영팀장, 그리고 단장으로서 네 번의 우승을 했다. 어떤 우승이 가장 기억에 남나.
"아무래도 2015년에 경험한 21년 만의 우승이다. 앞선 우승들도 무척 기뻤지만, 그때는 내가 그 기쁨을 만끽할 경황이 없었다. 2015년은 1년 간격으로 감독을 교체하는 아픔을 이겨내야 했고, 장원준이라는 거물 FA 투수를 보강하면서 확실한 목표를 향해 달려갔던 시즌이다. 단장은 팀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라서 그런 과정 끝에 나온 결과에 더 큰 보람을 느낀 것 같다."
김 단장은 학창 시절 촉망 받던 야구선수였다. 부산 동성중 시절 김경문 NC 감독, 양상문 LG 감독과 함께 야구를 했다. 부산고 3학년 때인 1978년에는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타격왕에도 올랐다. 그러나 동아대 2학년 때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다 어깨를 크게 다쳐 야구를 그만뒀다. 1983년부터 7년간 롯데 스카우트로 일했고, 1991년부터 두산의 전신 OB에서 선수단 매니저 일을 시작했다. 운영팀에서 차근차근 일을 배우고 역량을 쌓았다.
지금 김 단장의 직위는 전무이사. 2011년 8월 단장 선임 이후 현장 경험과 소통 능력을 앞세워 성공적으로 팀 운영을 지휘했다. 지난해 말 사퇴한 민경삼 전 SK 단장과 함께 장수하면서 선수 출신 단장의 모범 사례를 보여줬다. 김 단장의 재임 기간 동안 두산 야구의 '화수분'은 마르지 않고 열렸다. 2015년 한국시리즈 우승과 2016년 통합 우승은 그간의 노력을 총망라한 성과였다. 그래도 김 단장은 거듭 "내 공이 아니다"라고 고개를 저었다.
- 올해 선수 출신 단장 수가 6명으로 늘었다. 김 단장과 민 전 단장의 공이 크다는 게 야구계 평가다.
"우리보다 야구 역사가 깊은 일본에선 그동안 감독 출신 인사를 단장으로 올린 팀이 종종 나왔다. 성공 사례도 있고 실패 사례도 있었지만, 나는 늘 '한국도 프로야구 감독 출신이 단장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민 전 단장과도 초기에 '다른 야구인도 앞으로 단장 자리에 오를 수 있도록 우리가 좋은 밑거름이 되어 보자'는 얘기도 해봤다. 선수를 했다고 꼭 야구만 하라는 법은 없다. 선수 출신 단장도 충분히 팀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이런 분위기는 현장에서도 환영할 것이다."
- 후발 주자들에게 조언할 부분이 있나.
"나라고 해서 많은 일이 하루 아침에 잘 된 게 아니다. 숱한 실패나 시행 착오를 겪으면서 여기까지 왔다. 그래서 '조언'보다는 '응원'을 하고 싶다. 야구인들은 그야말로 '야구 기술자'들 아닌가. 아무래도 선수를 보는 눈이 더 나을 것이고, 선수단의 전체적인 맥도 빨리 짚을 수 있는 것 같다. 이런 부분이 장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 재임 기간 동안 '화수분 야구'의 기틀이 잡혔다.
"그건 내 공이 아니다. 2군 전용 훈련장인 경기도 이천 베어스파크가 화수분의 원천이다. 처음으로 2군 전용 훈련장을 만든 게 바로 우리였다. 박정원 구단주께서 (이전 2군 훈련장인) 베어스필드를 보러 오셨다가 '선수들이 더 편안하게 운동할 수 있는 마당을 만들어 주자'며 베어스파크를 짓게 하셨다. 2014년 7월에 문을 연 뒤 2015년과 2016년에 2년 연속 우승을 했다. 그만큼 '환경'이 중요하다. 베어스파크는 일본 구단에서도 견학을 올 정도로 시설이 잘 돼 있다. 지난해만 해도 한신, 요코하마, 소프트뱅크에서 다녀갔다. '화수분'은 그냥 생기는 게 아니다. 선수들이 편안하게 운동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는 게 먼저다. 그 위에 코칭스태프와 프런트의 노력이 뒷받침됐다."
- 8월이면 단장이 된지 만 6년이 된다.
"한 팀에서 25년을 보냈다. 팀의 역사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항상 머리에 넣고 살아온 것 같다. 사람이니까 100% 성공은 하지 못했다. 실수도 하게 된다. 대신 실패하는 과정에서 무언가를 배우고 싶었다. '다음에는 이런 실수를 하지 말아야지' 하는 깨달음을 얻으면서 가고 싶었다. 1년 간격으로 감독이 바뀌는 아픈 시기를 지나 지금 김태형이라는 감독을 모시게 됐다. 이것도 하나의 과정이자 경험이라고 여기고 싶다."
-앞으로의 포부가 있나.
"매니저로 일할 때부터 늘 '어떻게 하면 우리 선수들이 큰 사고 없이, 물의를 일으키지 않고 야구를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했다. 대한민국 서울을 연고로 하는 팀으로서, 정말 '명문'이 됐으면 좋겠다고 항상 생각했다. 앞으로는 그동안 나왔던 불미스러운 사건이나 사고가 다시는 없길 바라고 있다. 구단도 선수들에게 철저하게 교육을 시킬 것이고, 선수들도 점점 높아지는 몸값에 걸맞게 진짜 프로가 됐으면 좋겠다. 야구 잘하는 구단을 넘어 모든 면에서 명문 구단으로 거듭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리고 은퇴 후에는 프로야구 선수를 꿈꾸는 아마추어야구 선수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 밑바닥부터 위로 올라간 경험을 비롯해 프로야구단에 수십 년 몸 담은 이야기들을 들려주면서 조언도 해주고 싶다."
- 올해는 두산에게 어떤 시즌이 될까.
"한 마디로 '타이틀 방어'에 나선다. 나머지 9개 구단의 도전을 받는 챔피언 팀의 입장에서 지금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다. 단장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도움을 주고 싶다. 무엇보다 팬들에게도 꼭 최고의 팀이 됐으면 좋겠다. 2연패를 하면서 우리 팬들의 열정과 가치를 다시 한 번 깊이 느꼈다.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선수단 지원에 묵묵히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을 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