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결정에 연예인들은 각자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모두들 '오래 걸렸고 마침내 봄이 왔다'는 식의 글을 썼다.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국내외 어디서든 마음을 모았다. 문화계 블랙리스트로 인해 눈에 보이지 않았던 벽이 높았던 영화계는 이번 일로 한결 자유로워진 분위기다. 방송가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특집 방송을 위해 예능 프로그램을 줄줄이 결방했고 풍자를 기본으로 하는 개그 프로그램은 포맷 변경도 고려하고 있다.
"너도나도 한목소리"
이승환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적었다. 유아인은 인스타그램에 '2017년 3월 10일 대한민국'이라는 글과 함께 탄핵 결정 방송 화면을 찍어 올렸다. 문정희는 '2017년 3월 10일 탄핵 인용. 봄날 헌법 수호 대한민국. 오늘을 기억할 것이다. 모두 수고하셨다. 이제부터가 중요할 것 같다. 짜릿한 오늘'이라며 환영했다. 공효진은 '이 멀리에서도'라며 대만에서 스마트폰으로 탄핵 인용 뉴스를 보는 사진을 올렸다. '역적' 촬영으로 바쁜 윤균상은 '봄이 온다면 봄이 왔구나 따뜻한 봄이'라고, 이기우는 '참 오래 걸렸다. 빛을 따라왔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국민의 힘이다'고 했다. 김의성은 '체크아웃은 통상 12시까지 아닌가'라며 박 대통령이 청와대 관저서 빨리 나가길 원하는 듯 우회적인 글을 올렸다.
윤종신은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헤어롤을 머리에 꽂은 채 출근하는 사진을 올리며 '아침에 이 모습이 얼마나 짠하고 뭉클했는지. 재판관님들 그동안 너무 고생하셨고. 우리 모두를 위한 이 아름다운 실수를 잊지 못할 겁니다'라고 적었다.
촛불 집회 최다 참여 연예인으로 알려진 김지훈은 '때마침 날씨도 봄 내음이 물씬. 그 햇살을 밝힌 건 다름 아닌 촛불'이라며 '그 와중에 내 지인들은 왜 나한테 수고했다는 문자를'이라고 남겼다.
시선 집중 영화계 블랙리스트
영화계도 '만세' 분위기다. 빗장이 열렸고 다시 한 번 르네상스 시대가 펼쳐지길 기대하고 있다. 굳이 이름을 나열하지 않아도 웬만한 유명 감독·배우 등 영화인들은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포함돼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배우로서 영화를 만들었을 뿐인데 자신도 모르는 새, 블랙리스트라는 허무맹랑한 자료의 명단에 올랐다.
누군가의 관리 대상이 됐고, 눈에 보이지 않는 외압을 당해야 했다. 옳은 행위임에도 때로는 치욕스러움을 느껴야 했던 그 시간을 묵묵히 견뎌 낸 영화인들은 변함없이 주어진 일을 해냈고, 목소리를 더 높였다. 해외 무대 인사 중 자신이 블랙리스트 명단에 올랐다는 것을 알게 된 정우성은 이후 "박근혜 나와!"라는 명언을 남겼고, 류승완 감독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빼앗아 가려는 것은 큰 죄다. 문화계에 벌어진 사태를 지나치면 사회 전반적으로도 국가가 개인을 통제하고 억압하려는 일이 벌어질 것이다. 제대로 된 처벌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탄핵 인용과 함께 충무로는 '자유의 몸'이 됐다. 실제 탄핵 정국에 돌입하자마자 영화계는 발 빠르게 정권 교체, 대선 시기를 노린 작품들을 줄줄이 크랭크인시켰다.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고, 심기를 건드릴 만한 영화를 만들었다고 압수 수색 당하는 상황도 일어나지 않을 터. 이에 따른 다양한 영화의 등장이 해외 영화제 초청과 새로운 거장의 탄생으로 연결될지도 관심사다. 단 한 번도 지상파에서 방영된 적 없는 영화 '변호인'을 안방에서 시청할 수 있는 날도 머지않았다.
방송가도 풍자 스탠바이
지난 대선 정치 풍자 프로그램의 1등이라 불리던 tvN 'SNL 코리아'는 어느 순간부터 풍자가 사라졌다. '여의도 텔레토비'는 높은 수위의 풍자로 화제를 모았지만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후 폐지됐다. 청와대 외압이 있던 것 아니냐는 시선이 많았지만 똑 부러진 대답은 없었다. 대통령이 파면되는 시점과 맞물려 'SNL 코리아' 9번째 시즌도 25일 첫 방송 된다. 더 이상의 외압이 없는 만큼 물 만난 고기의 풍자를 기대해 본다. 'SNL'에 출연하는 김민교는 '지난 시즌 찍었으나 못 나갔던. 성호야 준비해라. 난 준비 완료다'며 정성호의 사진을 공개했다. 정성호는 '겨울왕국'의 엘사로 분한 채 박근혜 전 대통령 성대모사를 할 때 취하는 팔 감싸 안기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줄곧 정치 풍자를 하면서도 '기회주의적이다'고 비난받아 온 KBS 2TV '개그콘서트'에 거는 기대도 상당하다. '개그콘서트'는 지난해부터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에 강도 높은 풍자를 이어 오고 있다. 이에 대중은 정권이 끝나갈 무렵 이슈에 묻어가 시청률을 올리기 위한 얄팍한 수라고 손사래 친 바 있으나 꾸준함은 통했고 최근 시청자들에게도 어느 정도 인정받는 분위기다. 탄핵 인용은 금요일에 결정됐고, '개그콘서트'는 매주 수요일 녹화다. 다가올 '개그콘서트'에서 어떤 재기 발랄한 풍자 개그가 나올지 모두가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