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타도" 영화는 자유를 외쳤지만 현 시국과는 분명 별개다. '보통사람' 시사회는 '어쩌다 보니' 오해에 대해 해명하는 장이 됐다. 하지만 간절히 바랐던 현실의 큰 산을 넘어서일까. 분위기는 유쾌함 그 자체였다.
15일 서울 왕십리 CGV에서는 영화 '보통사람(김봉한 감독)' 언론시사회가 열렸다. 이 날 행사에는 김봉한 감독을 비롯해 주연배우 손현주 장혁 김상호 조달환 지승현이 참석해 영화를 처음으로 공개한 소감을 전했다.
'보통사람'은 1980년대, 보통의 삶을 살아가던 강력계 형사 성진(손현주)이 나라가 주목하는 연쇄 살인사건에 휘말리며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게 되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역대급 게이트와 국정농단 파문이 불거지면서 현직 대통령이 탄핵되는 역사의 현장을 살고 있는 2017년. '보통사람'은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한국을 배경으로 하지만, 일정 장면은 엊그제 뉴스에서 본 내용을 답습하는 듯한 기시감을 들게 만든다.
때문에 시사회 직후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는 이와 관련된 질문이 쏟아질 수 밖에 없었다. 영화가 처음으로 기획된 것은 2~3년 전. 현 시국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시기 제작이 논의됐던 만큼 '보통사람' 측도 어이없긴 마찬가지다.
바꿔 말하자면 입는 옷, 가게 간판, 길거리, 자동차 등 직접적으로 눈에 보이는 것이나 어떤 물질적인 것들은 바뀌고 발전했을지언정 정치와 사람은 30년 전이나 현재나 특별하게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시절 자유를 외치고 민주주의를 부르짖은 보통사람들에게 여러모로 미안해지는 대목이다.
손현주X장혁 시대가 만든 괴물 혹은 보통사람 김봉한 감독은 "손현주 선배님께서 2년 넘게 이 작품을 기다려 주시면서 제작을 할 수 있었다. 시의성에 맞춰 들어가지는 않았다"며 "솔직히 말하면 투자도 잘 안 됐다. 현주 선배님이 계셨기 때문에 죽을똥 살똥 제작비를 마련해 찍었다. 그 팩트 만큼은 오해 하시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형사=공무원'이라는 소신을 갖고 열심히 범인을 잡아 국가에 충성하는 80년대 가장 보통의 형사 성진을 연기한 손현주는 "정확히는 75년도 이야기를 다루려 했지만 내부 논의 끝에 80년도로 넘어갔다. 80년도 역시 격동기다. 88년 올림픽 직전까지 그려진다"고 설명했다.
손현주는 "내 캐릭터를 말하자면 '80년도의 아버지가 2017년도의 아버지와 다른 부분이 있을까'라는 것에 주목했다. 그닥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 때나 지금이나 아버지가 가정을 지키고 아내를 지키고 아이를 지키려는 마음은 똑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지만 성진은 잘못된 판단을 한다. 결국 그의 판단은 잘못됐다. 다만 만약 나에게 '아내 아이가 있는데 영화와 같은 환경에 처해지면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이냐' 묻는다면 대단히 고민이 많이 될 것 같다. 어쩔 수 없다"고 밝혔다.
손현주가 보통의 사람을 대변했다면, 장혁은 현 시국 사건에 연루된 특정 누군가를 곧바로 떠올리게 만드는 인물 규남을 연기했다. 규남은 국가를 위해 물불 안 가리는 냉혈한, 최연소 안기부 실장이자 손현주에게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건네 그의 삶을 송두리째 흔드는 장본인이다.이를 의식한 듯 장혁은 "먼저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은 배역은 미워하되 배우는 미워해 주시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선수쳐 언급해 웃음을 자아냈다.
그는 "느린 말투나 극중 보여지는 연기는 어떤 의도를 갖고 했던 것은 아니다. 누군가를 따라하지도 않았다. 감정을 갖고 연기에 임한 신은 두 신 밖에 없다. 나머지는 감정을 뺀 상태에서 가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대부분 그냥 의무적인 이야기를 하듯 툭툭 던졌다"고 설명했다.
시대적 배경에 대해서도 "막상 그 시절을 살고 있을 땐 정치적인 이슈에 대해 잘 몰랐다. 최루탄 냄새를 가까이 맡을 수 있는 거리에 있지도 않았다. 그래서 가장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바나나다. 바나나 하나 먹기 위해 이런 저런 것을 다 할 수 있었던 시기로 기억한다"고 회상했다.
장혁은 "나에게 80년도는 그런 느낌이다. '손에 손잡고'를 외치던 시절이라 손을 잡고 다니라고 하길래 손을 잡고 올림픽을 하고 그랬던 것 같다"며 "그 시대로 돌아가 그 시절의 인물을 연기해야 했기 때문에 당시 책도 찾아봤지만 일부러 그 때를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지는 않았다. 그럴 필요는 없었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
이에 김봉한 감독은 "미루어 짐작하실 수는 있다. 판단은 관객 분들이 하시는 것이니까. 다만 무언가 일치한다면 그건 정말 우연이다"며 "장혁 배우 역시 누군가가 생각난다면 연기를 너무 잘해줬다는 이유밖에 없다. 내가 주문했던 것은 '웃으면서 연기하면 어떻겠냐'는 단 하나였는데 그것이 또 어떻게 맞아 떨어졌다"고 해명 아닌 해명을 덧붙였다.
김상호·조달환·지승현·라미란·오연아…명품조연 맹활약 '보통사람'에는 손현주·장혁 외에도 상식없는 시대를 안타까워하며 진실을 찾아 헤매는 기자 김상호(재진), 가난해도 정직하게 살고 싶은 성진 아내 라미란(정숙), 대한민국을 뒤흔들 사건을 기획하는 안기부 차장 정만식, 그리고 어리바리 신참 형사 지승현(동규) 등 존재감 넘치는 조연들도 맹활약 한다.
특히 가장 눈에 띄고, 또 눈에 밟히는 배우는 장혁이 던진 떡밥을 물로 판을 벌이는 손현주에 의해 희생을 강요 당하는 조달환(김태성)이다. 등장하는 내내 단 한 번도 멀쩡한 비주얼을 보여주지 못하는 조달환은 약 20kg을 폭풍감량하는 육체적인 노력까지 감행하며 작품과 캐릭터를 살려내는데 성공했다.
기자간담회에서 조달환은 74kg에서 66kg으로 체중감량을 했다고 말했지만, 확인 결과 그 보다 10kg이 더 적은 56kg까지 감량했다는 후문이다. 조달환은 "'다이어트가 이렇게 힘든 것이구나'라는 것을 뼈져리게 느꼈다. 실제로 빈혈도 생겨 연기를 할 때 캐릭터를 잊은 적이 있다. 헛 것도 보이더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눈물 차올라" 보통의 배우들이 만든 '전율'눈물을 흘린 것은 관객 뿐만이 아니다. 배우들도 영화를 관람하며 눈물을 쏟았다. 배우들은 이를 숨기지 않았고, '우연찮게' 맞아 떨어진 현 시국, 30년전 굵직한 사건을 다룬 '보통사람'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명확하게 논했다.
김봉한 감독은 "영화를 잘 만들었어야 하는데 변명하고 싶어져 말이 많아졌다. 우리 배우 분들 너무 수고 많으셨고, 어려운 제작 환경이었고 힘들었지만 잘 버텨냈다는 뿌듯함은 있다"며 "배우 분들과 스태프들의 땀냄새가 관객들에게 전달됐으면 하는 자그마한 바람이 있다"고 진심을 표했다.
장혁은 "영화를 처음 보다 보니까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차올랐다. 이 영화가, 그리고 '보통사람'이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 것을 한번쯤은 생각해 볼 수 있는 영화로 다가갔으면 좋겠다"고 읊조렸다.
조달환은 "솔직히 힘들어서 피하고 싶었다. 한 달 동안 외국 나가서 정처없이 걷다 왔다. '에이, 보지 말자. 결국 안 변하니까. 가족이나 편하고 나 즐거운게 제일 좋은거지'라는 마음이었다. 근데 시국을 보며, 영화를 보며 반성하게 됐다. 엄청 울었다. 소수 힘이 모여 큰 힘이 된다는 것도 알았다"며 "봄인데, 새싹같은 정서와 함께 모든 것이 깨끗하게 와 닿는 한 해, 미래가 펼쳐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지승현 역시 "영화 말미 울고있는 내 자신을 보면서 '좋은 영화가 한 편 나오지 않았나'라고 생각했다. 울었던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 보니까 많은 정치적인 이야기들이 오갔지만 결국 아버지 이야기였기 때문인 것 같다. 87년도에 나는 7살이었고 지금 37살이 됐다. 그 때의 내 아버지, 우리들의 아버지가 떠올랐다. 모두 같은 마음 아니었을까. 관객 분들도 공감하실 것이라 믿는다"고 속내를 드러냈다.